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질서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욕구와 능력의 한계와 질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유일한 인생인데 수십 년을 한없이 먹고, 한없이 입다가 끝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바이러스는 미물이지만 우리에게 인간과 이웃과 자연이 함께 지복을 누리는 ‘좋은 삶’, 그걸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최재천 장하준 최재봉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정관용(2020)『코로나 사피엔스』포스트 코로나(4)「새로운 체제」홍기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8개월째 신규 확진자를 발생시키는 가운데 국내의 사망자가 300명을 넘어섰다. 세계적으로는 218개 나라에서 2천만 명 이상이 전염되 731,019명(8월 10일 기준)이 절명하고 말았다. 가히 코로나 19가 지구촌의 팬데믹을 넘어 패닉 상태에 빠뜨리고 있다. 현재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과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인 홍기빈박사는 “자본주의 문명을 떠받치던 4개의 기둥(지구화. 도시화, 금융화, 생태)이 모두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폴라니(1886-1964)는 헝가리 출신의 경제사상가로 1944년 서구의 시장체계를 분석한『거대한 전환』을 출간해 경제민주주의 운동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학자이다. 그는 세계적 금융위기는 거듭 반복되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분석하며 이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했다. 홍기빈소장은 유럽에서는 2020년의 ‘COVID 19’를 중세 14세기 흑사병과 비교하면서 폴라니의 경제사상에 새삼 주목하고 있다고 전한다. 요약하면 ”사람과 화폐, 자연을 상품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국가와 시장, 사회가 조화를 이루는 다원적 경제질서를 새롭게 구축“ 해야 한다는 주창이다.

여기에서 자본주의적 ‘상품’ 문제에 천착한 카를 마르크스(1818-1883)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상품을 ‘사회적 상형문자’로 규정하고, 사용과 교환, 잉여의 ‘세 가치’를 통해 인간의 ‘소외’를 제기했다. 그렇다. 무엇보다 상품이 되려면 사용 자체 이상의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복잡한 담론이 아니라 한국적 병폐인 부동산의 흐름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예를 들어 동일한 평수라도 서울 강남의 ‘똘똘한 한 채’ 아파트와 지방 소도시의 그것과 가격이 같을 수 없다. 단지 주거지로서의 사용을 넘어 사회적 관계의 ‘문자’로서 아파트가 하나의 물신物神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코로나-19와 임대차보호법을 둘러싼 논쟁, 그리고 기록적인 여름철 장마- 2020년 경자년을 관통하는 이런 이상 현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집’이다. 자가격리와 무증상 감염, 사회적 명령 등 전대미문의 전염병은 존재로서의 집을 새롭게 인식시켰다. 여기에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화폐 즉 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을회관 지붕과 사찰로 떼 지어 도망친 소를 보면서 지구의 생태적인 혼돈을 목도한 것이다. 편언절옥 하자면 나와 너, 우리 그 집의 반란이다.

우리가 해당 장소를 특정 활동을 하는 환경으로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축환경은 ‘사람이 어떤 장소에 존재하게’ 만드는 데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 이들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살펴봐야 할 공간이 있다. 바로 집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쉽게 내면적이면서 사적인 경험, 사회 집단화, 물리적 구조물, 패턴화된 행동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연계할 수 있다. 건축환경에 대한 경험이 체화된 자아 안에 존재하고 체화된 자아가 자연 세계의 물리법칙과 생태계 안에 존재한다면, 인간은 당연히 사회 세계에도 존재할 수 있다. 집은 인간의 사회 세계에서 가장 작으면서도 기본적인 제도인 가족제도에 기반한다. 집은 궂은 날씨와 반갑지 않은 생물과 무생물 불청객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 세라 W. 골드헤이건(2017) 『공간 혁명- 행복한 삶을 위한 공간심리학』제5장「우리는 ‘공간’ 안에서 행복한가」

미르체아 엘리아데(1907-1986)는 집이 ‘실재의 중심’에 세워졌다고 정언했다. 전통사회에서 의미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실재였고, 그 세상 밖에는 위협적인 혼돈이 존재했다. 골드헤이건의 지적처럼 ‘보호’받는 그 실재를 마련하지 못하면 무존재와 비실재 속에서 불안감에 떨기 마련이다. 그런 집은 지상에서의 모든 여행의 시작과 끝이고, 절망 속에 희망을 품는 행동을 심화시키는 곳이었다. 그런데 문득 집이 낯설어지면서 언제인가 ‘교환’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사람들은 집에서 점차 ‘소외’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이제 사람 자체도 ‘상품’으로 사용보다 교환, 목적보다 수단의 물건으로 뒤틀려버렸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적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문명과 국가, 개인만이 다른 문명 또는 다른 문화와 공존할 수 있겠죠. 공존력을 갖춰야 가장 안전한 개체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는 국가나 문화는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서 크게 당하고, 역으로 침략받을 가능성이 커지기도 하고요. 그러니 우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경쟁력이자 무기가 공존력이고 적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 최재천 장하준 최재봉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정관용(2020)『코로나 사피엔스』포스트 코로나(6)「행복의 척도」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교수는 적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은 바로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가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사회적인 타인의 기준에서 강요받는 욕망이 아니라 저마다 자신의 미학적 경험과 감탄이 만들어 내는 실제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결론이다. 묶어보면 코로나바이러스감염-19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자가격리와 비대면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사람들은 서서히 자신만의 뉴 노멀new normal-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새로운 기준이나 표준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는 그렇게 떠들어 온 웰빙, 휘게와 오캄의 소확행, 미니멀 라이프의 본령이다.

저택에 사치를 부리면 귀신이 엿보고, 먹고 마시는 데 사치를 부리면 신체에 해를 끼치며, 그릇이나 의복에 사치를 부리면 고아한 품위를 망가뜨린다. 오로지 문방도구에 사치를 부리는 것만은 호사를 부리면 부릴수록 고아하다. 귀신도 너그러이 눈감아줄 일이요, 신체도 편안하고 깨끗하다. - 유만주『흠영欽英』1780년 6월 15일 일기

유만주(1755-1788)는 연암 박지원과 조선 후기 당대의 문장가로 쌍벽을 다투던 유한준(1732-1811)의 외아들이다. 그는 21살 되던 해인 1775년 정월 초하루부터 1787년 12월 14일까지 13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글을 배운 이후 지난해까지 3,700여 날 남짓을 살아왔는데 내 일을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이 한 몸의 역사인 일기를 적지 않았던 것이다.“ 사건, 대화, 문장, 생각의 네 가지 세목으로 쓴 일기- 유한준은 하나뿐인 자식이 3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아들의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독려해 24책의 방대한 일기문집을 편찬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한다면 ”존재는 언어의 집“이라는 명제도 지극히 온당하다. 『걷기의 인문학』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집은 모든 별에서 나온 시선이 교차하는 점“이라고 풀었다. 놀랍지 않은 사실이지만 하늘의 별과 인간의 물질적 구성 요소가 매우 동일하다고 한다. 시원을 알 수 없는 우주의 어느 날 일시에 터진 빅 뱅의 일습이니 그럴 것 아니겠는가? 별을 보며 실존의 나날을 기록한 아들- 아버지 유한준 역시 별을 보며 문집을 만들었으리라! 이번 밑줄 이야기를 매조지 하려는데 불현듯 루카치가 말결 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지금, 여기 코로나 19의 시대적 삶은 별이 빛나던 시대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는 그 조각들이 박혀 있을 터. 반복되는 무질서 속에 그 별을 찾는다면 훗날의 사람들이 그 질서의 별빛을 보며 걸으리라, 별이 된 우리가 보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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