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여행 중의 ‘여행’이 소중한 까닭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여행 중의 ‘여행’이 소중한 까닭
  • 김래호 작가
  • 승인 2020.07.2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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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땅을 치며 울고불고, 박장대소 웃음보가 터져도 해는 뜨고 지는 법. 지속적인 코로나 19의 팬데믹 속에 2020년도 불쑥 7말 8초 이르렀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국내는 물론 해외로 떠나는 휴가철에 관한 뉴스가 홍수인데 올해는 잠잠합니다. 시국이 그래도 잠시 여기를 떠나, 거기에서 ‘지금’을 바라보면 다소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인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남도를 여행지로 정하고 2박 3일 다녀왔습니다. 전남의 목포와 강진, 해남을 잇는 여정이었는데 15년 만에 찾은 다산초당이 특별했습니다.

가슴에 품고 있었던 구학丘壑이 / 반평생 맘에 서려 얽혀 있었지 / 문득 불끈 펼쳐볼 마음먹고서 / 제 분수 따져볼 겨를 없었네 ... 궁하고 주림이 내 분수거니 / 청복은 하늘만이 주시는 걸세 / 쇠북끈 제아무리 좀이 먹어도 / 큰 쇠북은 두드림을 기다린다네 – 정약용 5언 160구「다산초당중수기」부분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은 1801년「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그해 11월 유배되었습니다. 강진읍내를 떠돌던 다산은 1803년 제자 황상(1788-1870)의 물음에 장문의「제황상유인첩」을 써주게 됩니다. 밟는 길이 평탄하니 유인幽人이라야 곧고 길하다-『주역』의 이 경구가 무척 좋습니다. 유인이란 대체 어떤 사람인지요?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자세하게 가르쳐주십시오... 천주학을 신봉한다는 죄로 좌천을 거듭하고, 몇 차례 옥살이와 유배를 치른 다산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조용한 곳에 숨은 사람’의 거처를 적시했던 것입니다.

땅을 고를 때에는 모름지기 산 좋고 물 맑은 곳을 얻어야 한다. ... 나침반이 정남향을 가르키는 방향으로 서넛 칸 띳집을 얽는다. 순창의 설화지로 도배를 하고, 서가에 1천 3, 4백 권을 책을 꽂고, 책상 위에는 논어 한 권을 펴놓고, 곁에는 모과나무로 만든 탁자를 놓는다. ... 뜰 앞에는 석류와 치자, 백목련, 국화 48종을 심는다. 역시 대나무 홈통으로 산의 샘물을 받는 작은 연못을 만들고 연꽃과 붕어를 기른다. 그 물이 적시는 채마밭도 조성해 아욱과 배추, 파와 마늘을 파종한다.

더덜없이 현재 다산초당의 설계도와 조경 지침입니다. 정약용선생은 1809년 봄 그러니까 40여 년 품었던 그 은둔지를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임금의 총애를 받아 출세 가도를 질주하는 열복熱福보다 깊은 산속에서 산승이나 우객과 교류하며 조야의 물정을 멀리하는 삶, 하늘이 내리는 그 청복淸福을 추구하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18년의 유배가 풀리고 경기도 양주로 몸과 저서는 돌아왔지만 75세로 한뉘를 마치는 날까지 그곳을 잊지 못했습니다. 흔히들 ‘삶은 하나의 여정’이라고 말합니다. 이 짧거나 긴 저마다의 길 위에서 사람들은 숱한 경험을 통해 한평생을 완성해 나갑니다. 짜장 75년의 다산 여정 중에 강진 유배가 없었다면 ‘수만 권의 서고’가 집적되었을까요? 황상은 ‘다산의 일들은 만 줄기 눈물 / 장건의 은하수 길 뗏목이라네’ 라며 스승의 영면을 깊이 애도했지요.

애제자 조선의 황상과 생몰이 겹치는 독일의 쇼펜하우어(1788-1869)는 ‘하루는 작은 일생’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사람은 어쩌면 매일 죽는 연습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죽음보다 얕은 선잠인 양 반복되는 나날들. 그런 하루들이 쌓여 종당에 사람 한살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겠죠. 그런 정언을 본뜬다면 “인생은 긴 여행, 한 차례의 여행은 짧은 인생”이라는 말도 온당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쇼펜하우어의『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보겠습니다. “자기의 경험은 일종의 본문이고, 성찰과 지식은 그 주석이라고 볼 수 있다. 경험이 적고 성찰과 지식이 많은 것은 각 페이지에 본문은 두어 줄 뿐인데 주석은 마흔 줄이나 되는 책과 같은 것이다.” 이에 기대면 진정 다산선생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나 큰 쇠종의 ‘본문’을 남기신 분으로 후학과 후손들의 주석 크게 울려주길 기다리고 계신 어른이십니다. 평생 독신으로 아트만 진아라고 이름붙인 삽살개와 살았던 쇼펜하우어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단어들이 모여 문장이 만들어지고, 문장들이 한 쪽을 채우고, 그 쪽들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 이동은 하나의 여정이 되고 책의 쪽들은 탈 것, 즉 이동수단이 된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 우리는 그 쪽들을 가만히 꼭 쥐고 있다. 그렇게 손동작과 여행 사이에 긴장이 존재한다. 인간이 하늘을 날기 오래 전부터, 이 여정은 하늘을 나는 것과 비슷했다. 맨 처음 호머를 읽었던 사람들은 트로이로 날아갔다. - 제프 다이어『존 버거 사진의 이해』앙드레 케르테스의『읽기에 관하여』

영국 출신으로 미술비평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인 존 버거(1926-2017). 그는 중년 이후에는 프랑스 동부 알프스 산록의 농촌마을로 이주해 농사를 지으며 사진평론을 통해 통섭consilience의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1996년 헝가리 태생의 미국 사진가 앙드레 케르테스(1894-1985)의 사진집에 대한 총평은 유명합니다.

“읽기는 얼마나 휘발성이 높은 행위인지!” 그는 독서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사진 60장을 통해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확장했습니다. 이제 막 중력을 벗어났거나, 곧 벗어나려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자신을 지상에 묶어두는 것은 그 페이지 밖에 없다는 듯 책을 부여잡고 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다른 이들이 읽을 만한 ‘본문’을 남기기도 합니다.

모든 개인의 삶은, 말하자면, 이야기다. 기실, 삶이 이야기가 될 때, 개인은 그가 “삶”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내러티브의 본능은 선별하고 정돈하고 억제하고 강조하고 그 갈 길이 특정한 형태가 되도록 술수를 부린다- “현실”이 아니고, 더불어 분명 “진실”도 아닌, 무정형이 되도록, 현실 전체를 표현하는 것은 예술의 능력 너머에, 심지어 욕망 밖에 있다. 사실, 마음속으로 흐름을 제한할 수 없는 무능력이 바로 광기의 정의 중 하나다. - 퍼트리샤 햄플『불루 아라베스크』「카메라오브스쿠라」

앙리 마티스.「어항 앞의 여인」. 캔버스에 유채. 81.3✕100.5cm. 1921-23.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사에 극도로 무지했던 사람”이었던 그녀는 그 작품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복숭아빛 테이블 위에서 턱을 괴고, 메모장 옆의 유영하는 몇 마리의 물고기가 담긴 어항을 바라보는 단발머리의 여인- 영문학을 전공하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던 햄플은 그림 속 젊은 ‘작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 것입니다.

물고기 모양과 크기 같은 가늘게 정돈된 눈썹 아래 어느 오달리스크의 눈- 그녀의 시선은 터키 궁전 밀실의 후궁 신분이지만 벽장식의 아라베스크 무늬처럼 무한한 세계로 떠나 무언가를 상상하는 중이었죠. 햄플은 그 그림엽서를 사서 책상 앞에 놓고 몇 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하렘의 여인들을 해방시킨 마티스를, 그의 눈을, 그의 영혼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여로를 담은 저서의 부제를 “한 점의 그림으로 시작된 영혼의 여행”으로 정했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루니에(1924-2016)의 묘비로 이번 ‘밑줄 이야기’를 매조지 할까 합니다. 그는 76세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이가 되는 2000년이 자신이 영면하기에 더없이 좋은 해라고 말하고 자찬명을 지었습니다.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백 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부디 전대미문의 COVID –19의 2020년에 여름철 여행을 통해 뉴노멀- 새로운 일상의 계획을 수립하고, 다져보시길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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