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 뉴스티앤티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 뉴스티앤티

내 고등학교 동기동창 가운데 가톨릭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한 김석회 교수는 여름밤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그 무덥고도 후덥지근한 여름을! 모기하며 각종 잡 벌레들이 달려드는 여름을 특별히도 좋아했던 것이다. 대답은 간단했다. 여름밤의 밤낚시를 죽도록 좋아하고 즐겼던 그였기 때문이다. 한여름 밤에 즐기는 밤낚시야말로 그 누구도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고 했다.

더구나 밤에 낚시하러 떠날 때의 마음은 돈키호테 그 자체라고 했다. 밤낚시를 계획하는 날이면 며칠 전부터 그 설렘에 밤잠을 설치는 게 일쑤였다고 한다. 밤낚시 준비를 하기 위해서 미리 낚싯대하며 낚싯줄과 낚시 바늘을 챙기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올 지경으로 자신을 황홀경 속에 빠트리곤 했다는 것이다.

낚시는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기를 잡는 일은 인간이 생계를 잇기 위하여 시작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강태공이나 윤선도처럼 세월을 즐기기 위해서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낚시 도구도 구석기 시대는 동물의 뼈, 나무뿌리로 만든 바늘형태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알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에 이미 낚시 미늘이 만들어졌고 낚싯줄, 낚싯대 등 모든 도구가 점차 개량되어 낚시 미끼를 보다 멀리 정확하게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김 교수가 낚시를 즐기던 60년대만 하더라도 웅덩이 물을 퍼내고 잡거나 역대풀을 짓이겨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역대풀의 독소 때문에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을 손으로 잡던 기억이 난다.

공자(孔子)께서는 조이물망(釣而不網)이라 하여 '군자는 낚시를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물고기의 씨를 말리는 일은 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중국에서는 낚시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대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중국에 강태공이 있다면 노르웨이에는 헤밍웨이가 있다는 것도 우리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데다 지형적인 특성상 크고 작은 저수지가 많아 낚시장르 또한 다양하다.

낚시는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낚시라 하면 릴낚시, 대낚시, 견지낚시 등을 연상하게 되는데 고대 인류의 낚시는 즐기는 낚시가 아닌 생존하기 위한 생계유지 차원에서의 창, 몽둥이 등을 이용한 가장 기초적인 낚시가 행해졌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웅덩이의 물을 퍼내고 물고기를 잡았을 것이고 간단한 모양의 그물도 사용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우리나라 낚시에 대하여 살펴보면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에서 출토된 선사시대의 유물들에서 낚시에 이용됨직한 돌찔개살, 뼈찔개살, 묶음낚시, 작살 등이 출토되었고,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에 보면 마한 지역에서 명주실을 뽑아 낚싯줄로 이용했다고 나와있으며, 조선시대에도 여러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낚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스포츠나 레저로 분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낚시 인구는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덕분에 경제가 발전되고, 문화가 다양해짐에 따라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서양식 낚시인 루어나 플라이낚시 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견지낚시나 씨은어 낚시와 같은 전통적인 낚시장르는 점차 쇠퇴해 가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조선 시대 윤선도 이야기로 끝맺자.

 

윤선도도 낚시를 즐겼던 것이다. 그것도 바다 낚시를.

 

앞개울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 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썰물 거의 끝나고 밀물 밀려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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