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치명적 감염병, 국제 대응 약화 속 국내 대비 시험대에

콩고민주공화국 남부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병이 다시 발생했다. WHO는 지난 9월 4일 해당 보건구역에서 의심 환자를 확인하고 즉시 발병을 공식 선언했다. 이후 불과 열흘 사이 의심·확진 사례가 80건 가까이 보고됐고, 30명 안팎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의료진도 희생됐다는 점은 현장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아프리카의 악몽
에볼라는 1976년 첫 보고 이후 40여 차례 유행을 반복해왔다. 특히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를 휩쓴 대규모 확산은 국제 사회에 충격을 남겼다. 당시 1만1천 명이 넘는 인명이 희생됐고, 취약한 보건 인프라와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확산을 가속화했다.
민주콩고 역시 2018~2020년 동부 지역에서 발생한 유행으로 2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 현지 보건체계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WHO와 각국이 장기간 개입해야 했다. 이번 사태는 이러한 교훈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백신과 치료제, 현실의 제약
현재 현장에는 ‘에르베보(Ervebo)’ 백신이 공급되고 있다. WHO는 첫 단계로 400회분을 긴급 투입했고, 곧 수만 회분이 추가 도착할 예정이다. 접촉자와 의료진을 우선 대상으로 한 ‘링 백신 전략’이 핵심이다. 또 항체치료제 MAb114도 공급되고 있다. 그러나 도로 사정이 열악하고 분쟁이 잦은 지역 특성상 물자 이동과 접종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을 우려한다. 코로나19 이후 보건 재원이 다른 분야에 분산되면서, 에볼라 같은 풍토병 대응이 후순위로 밀렸다는 지적이다.
치사율이 높은 이유
에볼라는 환자의 혈액과 체액에 직접 노출될 때 전파되며, 잠복기가 짧아 대응이 어렵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치사율이 80%까지 치솟는다. 발열, 피로, 복통과 같은 흔한 증상으로 시작되지만, 곧 구토·설사와 원인불명 출혈이 이어져 신속한 진단 없이는 다른 질환과 구분하기 힘들다.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의료시설 접근성이 낮아 환자들이 격리 치료를 받기 전에 이미 지역사회로 퍼지는 경우가 많다. 사망자의 장례 과정에서 전염되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
한국, 안전지대일까
현재까지 국내에서 에볼라가 발생한 사례는 없다. 그러나 정부는 위험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1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해 공항·항만 검역을 강화하고, 해외 입국자에 대한 건강상태 질문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또 의심 환자가 신고될 경우, 지정 병원에 격리·치료하도록 지침을 갖췄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한계를 지적한다. 첫째, 국내 치료 병상은 수십 병상 수준에 불과하다. 대규모 환자 발생 시 대응 여력이 충분치 않다. 둘째, 의료진 교육과 훈련이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실제 현장 대응 경험은 제한적이다. 셋째, 백신 비축은 국제 공조에 의존하는 구조라, 공급망 차질이 발생할 경우 즉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교차 감염병 대응과 제도적 보완
코로나19 이후 ‘해외 감염병은 언제든 국내에 유입될 수 있다’는 교훈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사회적 관심은 단기간에 식기 쉽다. 감염병 대응은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강조된다. 국제기구와의 공조, 신속검사 기술 도입, 치료제 비축, 군·경찰 의료체계 활용 등 다층적 대응 전략이 논의돼야 한다.
국내 감염내과 전문의들은 “에볼라는 국내 유입 가능성이 낮지만, ‘낮다’는 표현이 곧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위험 지역에 머무른 여행객의 사후 관리, 의료진의 초기 대응 역량, 체계적인 백신 공급망이 뒷받침돼야만 한국이 안전지대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