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수목원, 풍혈지서 희귀·북방계 식물 1,200여 종 서식 확인…탐방객 증가로 훼손 우려
기후위기 시대, 멸종 위기 식물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인간의 관심 때문에 오히려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을 내뿜는 신비의 땅 '풍혈지'가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지만, 무분별한 탐방객의 발길에 신음하며 역설적인 위기에 처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국내 주요 풍혈지에 대한 생태 연구 결과, 이곳이 기후변화에 맞서 생물다양성을 지킬 핵심 거점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풍혈지는 땅속 바위틈에서 여름철에도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오는 독특한 지형이다. 덕분에 일반 산림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특산식물과 북방계 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천연 냉장고' 역할을 한다.
실제로 국립수목원 조사 결과, 풍혈지에는 월귤, 흰인가목 등 희귀식물 82종과 병꽃나무, 백운산원추리 같은 특산식물 61종을 포함해 총 1,204종의 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인 밀양 얼름골은 외부 온도가 30도를 넘나들 때도 내부 온도는 20도 이상 차이를 보이며, 멸종위기종인 '꼬리말발도리' 등이 자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신비로운 가치가 알려지면서 풍혈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위협에 직면했다.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며 늘어난 탐방객들의 발길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탐방로가 붕괴되고, 무분별한 출입과 식물 채취로 인해 식물 군락이 실제로 감소한 사례가 보고됐다. 특히 의성, 진안, 정선 등지의 풍혈지에서는 이미 생태계 퇴보가 나타나고 있어 보전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국립수목원은 출입 제한 및 보호구역 설정, 정밀 모니터링 강화 등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풍혈지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추진하는 등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립수목원 임영석 원장은 “풍혈지는 기후변화에서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는 중요한 생태적 피난처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라며 “지속적인 연구와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미래세대를 위한 산림자원을 보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