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48인으로 3·1운동을 이끈 민족 지도자

김세환 대표 사진 / 독립기념관 제공
김세환 대표 사진 / 독립기념관 제공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세환을 2020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김세환은 1889년 11월 18일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였고, 교회에서 선교활동과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는 애국지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을 형성하였다.

1906년 한성외국어학교를 거쳐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09년 말 경 귀국하였으며,. 귀국 후 수원상업강습소의 직조감독관으로 부임해 교장과 교감을 겸임하여 근무하다가, 1913년 밀러 선교사의 요청을 받아 삼일여학교의 교사 겸 학감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학교 건물 벽에 우리나라 지도를 조각하여 붙이는 등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 시기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훗날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성장하였다.

 

1918년 수원학생친목회 화성팀 기념사진(가운데 흰 옷을 입은 사람이 김세환) / 독립기념관 제공
1918년 수원학생친목회 화성팀 기념사진(가운데 흰 옷을 입은 사람이 김세환) / 독립기념관 제공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세환은 미국 윌슨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를 듣고 이를 독립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박희도를 통해 3·1운동의 계획을 들은 김세환은 순회위원을 맡아 수원과 충청 일대 3·1운동을 기획, 준비 모임을 주도하였다.

3월 13일 일본 경찰에 체포된 김세환은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재판을 받으며 법정에서도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당당하게 역설하였다. 

출감한 후 1923년 조선민립대학설립기성회 발기회에 수원지역 대표로 참여하였으며 신간회 수원지회 지회장, 수원체육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수원지역의 민족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 활동하였다. 1941년 수원상업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에 힘쓰다가 1945년 9월 26일 서거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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