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복 칼럼니스트

2019, 6, 11 (화) 맑음

오늘 따라 표정이 밝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오후 4시 반이면 난 내 아내 오성자를 데리러 인동에 있는 국제주간보호센터에 간다. 이곳 주간보호센터는 요양보호사며 두 분 원장께서 친절했고 밴드를 활용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생활 모습을 밴드를 통하여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동안 아내를 데리러 오던 사회복지사께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갔기에 그곳으로 따라갈까 하였다. 그분은 신앙인으로서 함께 가는동안 찬송가도 부르며 기분을 맞춰주기에 내 아내는 그 복지사분을 무척 따랐고 나도 그분의 친절을 믿고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옮기질 못했다. 새로 오신 사회복지사가 또 친절히 잘 해주기 때문이다.

이곳 주간보호 센터는 우윳빛 유리 바탕에 투명한 유리로 줄이 있어서 줄로 된 투명한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난 아내를 데리러 가면 초인종을 누르며 안을 들여다본다. 어떤 때는 내 아내 오성자가 초인종 소리를 듣고 얼굴을 돌려 문 쪽을 보다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들어오는 나를 보며 달려와 품에 안기기도 하고 얼굴이며 입에 수없이 뽀뽀를 해준다. 난 이때가 참으로 행복하다. 치매 4급인 아내가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는 것, 이 반가워하는 아내의 모습이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도 초인종을 누르며 안을 살폈다. 아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초인종소리를 듣고 안에서 동료 환우들과 놀다 초인종 소리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달려 나오는 아내의 표정이 그렇게 밝았다.

두 팔을 벌렸다. 내 아내 오성자는 서슴없이 내 품에 안기어 깔깔거리며 얼굴을 비벼대고 얼굴이며 입술에 뽀뽀를 해대기 시작했다. 자기를 지켜주는 남편과 몇 시간 동안 헤어져 있다가 만나는 안도감에서 오는 행복감, 그 행복감을 아내는 느끼고 있는 것이고 나는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난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산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지난 5월 중순 감기 몸살로 심하게 앓은 일이 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콜록거리고 있노라면 내 아내 오성자가 내가 자는 방에 들어와 근심스러운 듯이 내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기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치매 4급이라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의 심한 콜록거림은 염려가 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차를 타고 오는데도 찬송가를 불렀다. 그렇게 밝은 마음으로 집에까지 왔다. 난 이 기분을 지속시키려고 몇 푼의 돈을 운동복 주머니에 넣고 아내도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힌 뒤 현관문을 나섰다.

갑천 변을 걸을까 하다가 아파트 곁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돼 있었다. 이런 저런 운동기구로 옮겨 다니며 운동을 했다. 이곳엔 그네도 있었다. 아내가 먼저 그네에 앉아 발로 밀어 그네를 움직였다. 나도 그 옆 그네에 앉아 아내를 따라했다. 그런데 아내 만큼 공중에 날아오르지는 못했다. 아내는 깔깔거리며 좋아라 웃어댔다.

내 아내 오성자는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볼링이며, 배드민턴이며 수영을 잘했다. 그래서 친선게임을 한다고 동호인들과 함께 외국에까지 20여 차례나 다녔던 사람이다. 그래서 운동신경이 나보다 더 발달해서 그네를 잘 타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그네 놀이에 빠져 있다가 우리 내외는 밝은 마음으로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 주변 길을 걸었다. 골목슈퍼도 있고, 세탁소며 슈퍼마켓도 있고, 올망졸망한 음식점들도 있고 커피 전문점도 있었다. 발길이 멈춰졌다. 이곳에 들어가 기분 좀 내고 싶었다. 골목 안에 있는 커피 전문점. 안에 들어서니 중년 여인이 맞아주었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 우리 내외와 여주인뿐이다.

생강차를 시키고 나오는 동안 얼굴을 마주보며 행복해 했다. 누군가는 마주 보는 것보다는 둘이 한곳을 바라보는 것이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 하는데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보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더구나 웃다가 시선이라도 마주치면 서로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댈 때 느끼는 행복감이란 젊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참 사랑이요, 참 행복인 것이다.

아내를 위해 무슨 반찬을 만들까? 어디로 바람을 쏘이러 갈까 생각하는 것도 행복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시간 맞춰 약 먹이는 것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내 병간호 하며 수발드는 5년 동안 짜증 한 번 낸 일이 없다. 아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그가 울며 욕설을 해대면 끌어안고 울었다. 끌어안고 울며 행복해하는 것. 아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내의 숨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행복하게 살라고 오성자를 나에게 주셨고 이런 병에 걸리게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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