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대전시청서 300여 명 운집

"전세사기는 정부가 촉발시킨 사회적 재난"…'선구제 후 구상' 촉구

대전시 피해지원 예산 1500만원, 대부분 식비·사무용품비

대전지역 전세사기 피해액이 3500억 이상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피해자들이 지난 5일 은하수네거리에서 대전시청 남문광장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며 정부와 대전시를 규탄했다. (사진=피해자들이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집결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 뉴스티앤티)
대전지역 전세사기 피해액이 3500억 이상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피해자들이 지난 5일 은하수네거리에서 대전시청 남문광장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며 정부와 대전시를 규탄했다. (사진=피해자들이 대전시청 남문광장에 집결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 뉴스티앤티)

대전지역 전세사기 피해액이 3500억 이상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피해자들이 지난 5일 은하수네거리에서 대전시청 남문광장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며 정부와 대전시를 규탄했다.

특히 이들은 전세사기는 부실한 행정시스템이 촉발시킨 ‘사회적 재난’이라며 정부의 '과실 인정'과 ‘선구제 후 구상’을 촉구했다.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전세 사기범들은 ▲임차인의 선순위 보증금 열람 제한 ▲전입신고·근저당의 등기 등록 시차 ▲전입신고 가능한 비거주 형태 건축물 등 미비한 법률 및 정부시스템을 악용해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편취했다.

하지만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를 개인 간 사적 거래로 치부하고 국가적 배상이나 구제를 거부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대전 은하수네거리에서 대전시청 남문광장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 뉴스티앤티
피해자들이 대전 은하수네거리에서 대전시청 남문광장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 뉴스티앤티

실제로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지난 4월 국회 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사회적 재난'이라고 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며 국가 대납에 따른 피해자 보증금 반환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날 대책위는 대전시도 터무니없이 적은 지원 예산을 편성하는 등 생색내기식 대책으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천시가 전세사기 피해 지원 예산을 11억 원 편성한 것에 비해 대전시는 고작 1500만 원밖에 책정하지 않는 등 보여주기식 행정에만 급급하다는 것.

또 1500만 원의 예산에는 복사기 대여료 160만 원, 사무용품 구입비 300만 원, 식비 530만 원 등이 책정돼 대전시가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책위 관계자들이 극단적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 7명에 대한 묵념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피해자 7명의 자리를 대신해 신발을 벗어놨다. / 뉴스티앤티
대책위 관계자들이 극단적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 7명에 대한 묵념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피해자 7명의 자리를 대신해 신발을 벗어놨다. / 뉴스티앤티

이날 본인을 대전지역 피해자 아버지라고 소개한 A 씨는 "부모님이 물려준 조그만 땅으로 마련한 대금,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피 같은 돈과 대출을 통해 부푼 맘으로 계약을 진행했으나 전세사기를 당했다"며 "현재 아이는 정신이 무너진 상태로 하루하루 출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혹여 자식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까 매일 불안한 맘으로 2시간 거리를 오가며 살피고 있다"며 "청년들은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보배들인데 인생의 첫발을 빚부터 시작해 어른으로, 인생의 선배로서 미안하고 어찌 위로를 해야 할지 먹먹하다"고 한탄했다.

 

피해자가 전세사기 특별법 보완과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촉구하는 대표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티앤티
피해자가 전세사기 특별법 보완과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촉구하는 대표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티앤티

올 2월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다는 20대 피해자 B 씨는 "그간 왜 알아채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저희 건물의 등기부는 지금까지도 매우 깨끗하다"며 "거주하면서 2~3개월 단위로 건물, 토지 등기부 등본을 떼 꾸준히 확인했으나 임대인, 중개사, 중개보조인 모두가 서류를 조작하며 사기 행각에 합세해 속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내년 초 예쁜 아기를 가지고 같은 해 4월 집 계약이 만료되면 전세금으로 넣어둔 목돈을 보태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려 했으나 이제 모든 것이 사라졌다"며 "아기 계획은 꿈도 못 꿀 남의 이야기가 됐고 그저 평범한 삶을 동경하는 처절한 신세로 전락했다"고 탄식했다.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영선 대책위 자문 변호사, 김선재 진보당 대전시당 부위원장,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팀장 등이 집회에 참석해 피해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현, 이영선, 김선재, 설재균 / 뉴스티앤티)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영선 대책위 자문 변호사, 김선재 진보당 대전시당 부위원장,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팀장 등이 집회에 참석해 피해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현, 이영선, 김선재, 설재균 / 뉴스티앤티)

타지에서 건너와 결혼을 준비 중이었다는 피해자 C 씨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지내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살다가 매월 나가는 월세를 아껴 좀 더 저축하고 싶은 마음에 자력으로 모은 보증금 3000만 원을 발판 삼아 전세를 알아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출금 1억 원을 포함해 총 1억 3000만 원으로 전세 계약을 했지만 계약 만료 4개월 전인 지난달 10월 초 현재 거주하고 있는 빌라가 전세 사기 건물이라는 소식을 들었다"며 "보증금을 빼 결혼자금에 보태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 비용조차 없어 결혼은 무기한 연기됐다"고 털어놨다.

 

대전시청 남문광장에 피해자들이 집회를 전개하고 있다. 이날 주최측 추산 300여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대전시청 남문광장에 피해자들이 집회를 전개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주최측 추산 300여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 뉴스티앤티

또 "불과 올 초까지만 해도 결혼 준비를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현재는 피해자 인정을 받기 위해 그리고 전세보증금을 일부라도 돌려받으려고 집회로, 경찰서로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있다"며 "지금 거주하는 빌라에서 언제 쫒겨나진 않을까 막막한 현실을 비관하며 하루하루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전세 사기는 한 사람의 미래와 희망을 통째로 뺏는 정신적인 살인 행위다. 허점과 한계가 많은 지금의 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유명무실한 상태"라며 "더 이상 피해자가 늘지 않도록 특별법 보완대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책위가 지난 11월까지 집계한 대전지역 전세사기 피해규모는 332채(건물), 3290가구, 3500억 이상(금액)이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