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평론가
장주영 /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평론가

우리에게 완벽한 진실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 순간 내 머릿속 감정만 기록해 기억으로 남겨, 그걸 진실이라고 믿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한 개인에 의해 주관적으로 해석되고 순간적으로 기록된 사건이, 진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왜곡되고 단편적인 기억일 수 있다. 시간이 증명한다.

일요일 아침, 경북 영주에 혼자 사시는 친정엄마로부터 사진 한 장이 전송됐다. 40년 전 필자가 유치원 졸업식을 마치고 기념으로 남긴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뽀글 파마 양갈래 머리에, 진분홍 옷고름 초록 한복을 입고, 오른손은 꽃다발을 들고, 왼 손은 풍선을 매단 실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쥐고 있는 독사진이었다.

그런데, 표정이 이렇게 시무룩할 수가.

7살이었던 그날을 기억한다. 꽃다발을 한 손에 쥐기에는 억세고 무겁고 따갑고 길다는 것과, 유치원 졸업식장에 오직 나만 한복을 입었다는 부끄러움이었다. 게다가 괴로웠던 것은, 버스를 타려는데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버스요금을 내지 말라는 엄마의 말, 한복 안에 입은 흰색 타이즈가 자꾸 줄어들어 허벅지 사이에 올라오다 말아서 걷기 힘들었다는 것, 운전기사가 국민학생이라며 혼내면 어쩌지... 하는 무서움. 뽀드득, 뽀드득 흰 눈을 밟으며, 겨울 날씨 시리던 발가락.

 

40년 전 장주영 / 필자 제공
40년 전 장주영 / 필자 제공

40년이 흘러 망각 속에 묻힌 그날이었는데, 사진 속 나의 표정을 보며 다 생각났다. 그러나 사진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지난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기 시작했다. 엄마는 귀여운 딸을 미용실에 데려가 파마도 해주고, 가죽 신발에 예쁜 비단 한복을 사입히고, 졸업식 당일, 앞가르마를 정성껏 타 양갈래로 머리를 묶어주시고, 남들처럼 커다란 꽃다발에 둥실둥실 풍선까지 양 손 가득 안겨준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졸업식에 입힐 겨울 양장이 딱히 없었을 것이고, 한복이 그나마 제일 나았을 것이다. 갈색 신발은 나를 관통해, 연년생인 남동생에게 바로 물려 신기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 먹으면, 쑥쑥 잘 크는 딸에게 분홍색 대신 갈색 신발을 신겼을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남겨주신 젊은 엄마가 사진 반대편 너머로 보였다. 그리고 그 소중한 추억을 오늘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지금의 엄마가 보였다.

“엄마, 사랑해요.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에게 인사 메시지를 전송하자,

“뭐 그런 말을? 사실 너 없으면 못사니까, 살 자신이 없어서 키운 거란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 키운 것이고, 널 위해 키운 것은 둘째란다. 결국 한 몸이라는 뜻과 같아...”

“엄마, 많이 고맙습니다...”

“이제 말하는데, 지금 그 학교에 있는 거 얼마나 다행이니. 초등학교, 인문계고등학교는 네 학교 아니라서 천만다행! 초등학교, 인문고, 학부모 횡포가 심해. 소식들을 때마다 꼴불견이다. 난 입 아파 설명 다 못하지만, 네 학교, 난 속으로 좋았다. 다소 고통 있겠지만, 지금 학교가 의미 있다. 나에겐 지금의 네가 흐뭇해. 훌륭하다. 즐겁게 해.”

“엄마, 맞는 말씀이세요. 저 지금 최고 행복해요.”

“엄마가 인생 70 넘게 살아보니 ‘자유, 행복, 건강’ 그것 외엔 없어. 현재. 바로 오늘이 미래란다. 지금 生이 지옥이면 다음 生도 지옥인 거야.”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했던가?

내 기억 속에 간직해온 부정적 감각은 헛된 것이었다. 7살 아이의 감정이 오늘날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작고 여린 고사리 손으로 쥐기엔 벅찼던 꽃다발 때문에, 나란히 들었던 풍선의 가벼움을 느끼지 못했고, 나만 튀게 입은 한복 때문에, 꽃도 풍선도 기념사진도, 그 순간 아무 행복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성을 들인 엄마 마음도 몰랐다.

미숙한 한순간의 감각과 감정 때문에, 귀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행복을 놓쳤던 것이다.

오늘의 성숙한 시선은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렇다면 부정을 남길 것인가? 긍정을 남길 것인가? 엄마가 말한 ‘자유, 건강, 행복’은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딸을 키우며, 고되고 힘들 때마다 ‘너 때문에...’라며 자기 인생이 없었다고 원망하기도 했던 엄마에게, 딸은 이제야 그 마음을 알아주며 ‘감사하다’는 말을 했고, 그 말에 엄마는 “'나'를 위해 널 키운 거지, 너 때문에 키운 게 아니다.”라는 다른 각도의 심경을 고백하니, 엄마도 75년을 사시며 새로운 진실을 발견한 모양이다.

우연히 꺼낸 두툼하고 먼지 앉은 백과사전 안에서, 잊었던 오만 원권을 발견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고단수 엄마가 일부러 사진을 보냈나? 이번 추석에 꼭 찾아봬야겠다. 직장 다니며, 자식 셋을 키우는 바쁜 딸에게 오지 말라며, 엄마는 초연해졌지만, 나를 '당신의 한 몸'으로 여겼던 엄마에게 달려가 꼭 안겨야겠다. 뜻밖에 날아온 사진, 40년 만의 큰 선물에 감사하며, 휴일이 행복으로 적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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