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평론가

장주영 /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평론가
장주영 /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평론가

'은여울 사진 예술가회 제11회 사진전'이 대전서구문화원에서 10. 3.~ 9. 까지 50여 점의 ‘야생화’ 작품들로 활짝 열렸다. '은여울 사진 예술가회'는 대전대학교 평생교육원 신은수 교수의 가르침을 받아 만들어진 단체다. 작년은 무아지경(無我地境)에 이르는 ‘정자(亭子)’의 아름다움을 전시했다면, 올해는 ‘야생화(野生花)’가 주제다. 이번 전시는 강용석, 김달원, 김선진, 안승균, 오미숙, 오승석, 윤종태, 이충열, 정인수, 조미희, 조성자, 한서진, 신은수 작가가 참여했다.

대청 호반 위의 달맞이꽃(안승균作)은 달을 떠나보내고, 빛이 가장 아름답다는 새벽녘을 맞이한다.

 

새벽녘의 대청호 달맞이꽃 (안승균作) ​/ 필자 제공
새벽녘의 대청호 달맞이꽃 (안승균作) ​/ 필자 제공

그들은 카메라 안에 가장 아름다운 새벽빛을 담기 위해, 잠을 물리치고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하루를 열었다. 사진작가가 순간을 담기 위해 공들인 시간은, 화가들이 화폭 앞에서 붓과 씨름 한 시간과 맞먹는다. 출사의 궤적이 창조의 역사가 돼, 작품에서 성장과 발전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세상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렌즈 안에 감각을 녹여 나만의 구도를 잡고, 실존하는 빛과 그림자로 형태에 특별함을 연출한다. ‘사진’이란, ‘흐르는 시간 속에 소멸하는 찰나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원으로 멈춘 감동’인 것이다.

​인내와 사랑을 머금은 영원한 행복, 한겨울 대둔산에 피어난 황금빛 복수초(조미희作)를 보며 경이로움을 느낀다. 

 

한겨울에 피어난 대둔산 복수초 (조미희作) / 필자 제공
한겨울에 피어난 대둔산 복수초 (조미희作) / 필자 제공

야생화 'wildflower, 野生花'는 들꽃이다. 야화(野花)라고도 한다. 야생에서 스스로 피어난 꽃으로 인간이 생육에 개입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약 5,000종이 있다고 한다. 꽃잎은 연약하지만 물이 오르면 봉우리를 힘차게 열어젖히고, 바람에 흔들림이 있으나 어김없이 제 모양을 드러내며, 아무 데나 피지 않으나 한번 피면 완벽히 홀로서기를 하여 스스로 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금낭화(김선진作)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는 꽃말로 순종과 겸손을 의미함에도 기품 있고 당당하다. 삼국시대 왕실의 금귀걸이는 금낭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기품있는 모습의 금낭화 (김선진作)
기품있는 모습의 금낭화 (김선진作)

꽃 자체가 존재감을 주며, 자존감의 황제(皇帝)다. 꽃의 보편성을 깨는 특이하고 독보적인 모양새는 저마다 개성 있고, 고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스스로 자신이 예쁜지 못났는지 그 누구와도 견주거나 비교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피어나 절정에 달한 꽃의 자태는 어찌나 요염하고 당당한지, ‘너만의 모습’이 곧 ‘미(美)의 기준’이 돼버리고 만다. 공들이지 않아도 피고야 마는 자연산 꽃, 야화(野花). 첫인상은 정말 수수한 풋소녀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조건이 맞아야 뿌리내리고, 기다림 끝에 꽃을 보여주는 도도한 절개는 볼수록 매력 있는 기품 있는 귀족 여인이었다. 꾸밈에 요란한 기교는 부리지 않으나 지극히 예술적이고, 소박한 생얼굴인데도 화려함이 풍기는 오묘함은 야생화 이름처럼 야(野, wild)하고 야(冶, sexy)했다.

숭고한 사랑으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에델바이스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솜다리꽃이다.(김달원作)

 

숭고한 사랑, 소중한 추억 에델바이스 '솜다리꽃' (김달원作)
숭고한 사랑, 소중한 추억 에델바이스 '솜다리꽃' (김달원作)

들꽃은 자연에 존재하되, 이웃을 괴롭히거나 훼방 놓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오직 우주의 시간만을 소중히 기억하고 약속을 정확히 지켜 순간이 다가오면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흔적 없이 져버리고 마는 꽃. 전체 속의 하나로 아상(我想)에 대한 집착 없이 시공과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며, 공존할 줄 아는 보리심을 가진 존재였다.

야화(野花)여! 수많은 들풀 속에 묻혀있었는가? 이제 너를 쳐다보는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무명의 들꽃이 아니다. 그대는 누군가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애달프게 하는 불꽃같은 존재인 것이다.

 

야화여,

거침없는 들판 위에서 말없이 피어있는 그대여

침묵으로 공존하는 그대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여신

그 모습 잊을 수 없다

불꽃처럼 타다가 사그라들까 아련한 마음

손대면 안 되는데 품에 안고 싶다

집에 가져가 소유하고 싶구나

놔두고 오기엔 미련이 남아

사랑의 감정 담아 사진에 포근히 담는다.

존재로 사로잡는 그대야 말로

진정한 승리의 여신

나머지 시간 '은여울 사진 예술가회' 전시에 달려가 매혹의 세계, 야화(野花)의 찬란한 향연에 물들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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