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교서 일본어 가르치는 스즈키 여사와의 대화

임준수 / 중앙일보 전 편집국장 대리

임준수 / 중앙일보 전 편집국장 대리
임준수 / 중앙일보 전 편집국장 대리

지난 4개월 동안 일본어를 열심히 가르쳐 주신 선생님 한 분과 단 둘이서 종강 파티겸 사은회를 가졌다. 졸업도 안한 처지에 굳이 사은회라 한 것은 내가 다닌 교육기관이 졸업장을 주지않는 곳인 데다가 내가 모시기로 작정한 은사(?)님은 흔히 볼 수있는 보통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의 60년 만에 가져보는 '쫑 파티'에 모신 분은 30년 연하의 일본 여성이다. 여러사람 틈에 끼어 공부한 일반 수강생의 입장이지만 종강하는 마당에 "아리가도 고자이마시다(감사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사를 끝낼 수 없는 분이었다. 교육받은 기간이 한 학기에 불과했지만 이 분처럼 열심히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내 생전에 일찍이 없었다.

스즈키 아케미(鈴木明美) 선생님을 고양시 일산에 있는 한 샤부샤브 집의 저녁 식탁에 모셨다. 스즈키 아케미(鈴木明美) 선생님은 덕양노인복지관에서 '원어민 일본어' 강좌를 가르치고 계셨다. 단정한 옷 차림에 옥이 구르듯 낭낭한  목소리는 언제나 친근미를 일으킨다.

"임상, 샤브샤브라는 일본 이름의 유래를 아세요?"

선생님에게는 음식점도 가르치는 장소로서 예외가 아니었다

"고기를 써는 소리에서 나왔다고 해요. 이 음식을 처음 개발한 요리사가 고기를 얇게  썰 때 들은 칼질 소리를 다른 요리사가 의성화하여 붙인 이름이랍니다."

말인즉 한국 같았으면 '사각 사각'으로 붙여졌을 거라는 이야기다.   

 

스즈키 선생님(우)을 모시고 / 필자 제공
스즈키 선생님(우)을 모시고 / 필자 제공

내가 스즈키 선생님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명색이 일본학과 졸업반(방통대 2학년)인데, 만화책 읽기는 커녕 간단한 대면 인사도 못하니 과외수업이라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찾은 교실이 노인복지관에서 개설한 일본어교육 과정이었다. 주1회(50분강의) 4개월 학습비가 단돈 3만원. 거기에다 최고의 일본어 선생님을 만났으니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없다. 

스즈키 선생님은 열강을 할 뿐아니라 강의 준비와 개별지도도 철저했다. 카톡방을 개설하여 수시로 수강생들과 소통하는가 하는가 하면, 짧은 강의시간을 쪼개어 개인별로 차등 지도를 한다. 이를테면 나같은 꼴찌급 수강생에게는 아주 쉬운 질문으로 벙어리 망신을 면하게 해주신다. 개강 2주도 안돼 20여 명의 수강생 이름을 달달 외우는 선생님은 예고없이 결석하면 어디 아프냐고 문자를 보낸다.

두 시간 넘게 1대1 쫑 파티를 하면서 처음으로 스즈키 선생님의 신상을 알게 되었다. 생판 모르는 한국 남자와 결혼한 통일교 신도라는 점이 그 핵심이다. 일본 여성으로 25년, 한국인 아내로 25년을 산 이 분의 반세기는 드라마 한 편으로는 모자랄 정도로 고난과 도전으로 점철돼 있었다. 

-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실 수 있나요?

"우리 부부는 더 불행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 결혼했어요. 얼굴도 모를 뿐 아니라 언어도 안 통하고 살아온 환경도 달랐으니까요. 지난 25년은 그 캄캄한 벽을 뚫어온 세월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우리 부부 관계는 더 좋아질 것입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한뒤부터 관계가 나빠지는 부부가 태반인 현실을 생각하면 그 보다는 훨씬 발전적이지 않나요?"

-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말도 못하게 반대가 심했지요.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상처입은 기간이 짧지만 엄마에게는 너무 오랫동안 고통을 드렸어요. 그래도 손주가 세명이 생긴 뒤부터는 마음을 돌려 이제는 한국인 사위를 좋아하십니다."

결혼과 가정의 행복을 이야기하던 선생님은 부모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어두어 지며 목이 메이더니 끝내는 눈물을 보였다. 아차! 잘못 물었다 싶었으나 내친 김에 한국인 시부모와의 관계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시아버님이 나를 미워했어요. 당신의 아버님께서 일제의 징용으로 끌려가신 후 행방불명됐다며 일본은 물론, 일본 국적을 가진 나까지 증오했어요. 나는 어떻게든지 시아버님의 마음을 돌려놓아야겠다고 마음 먹고 일본에 가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시할아버지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태국의 한 밀림에서 강제노역 중 사망하셨다는 기록을 발견하여 시아버님을 모시고 태국에 가서 진혼제를 지내드렸습니다. 그후 마음이 바뀐 아버님은 이제 딸보다 나를 더 좋아하십니다. 지금도 아버님을 만나면 안마부터 해드려요."

대화 중 여고생인 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혼자서 저녁을 먹는 중인데 비가 오니 빨리 귀가하라는 독촉 전화란다. 단란한 가정 분위기가 느껴지는 모녀간의 통화였다. 건설 공사를 하는 남편과 축구선수인 큰 아들은 외지에 나가 있다는데, 대학생인 작은 아들은 데이트 중인 모양이다.

- 다른 기독교계에서 이단시 하는 통일교를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또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표정을 고치며 세계평화와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는 통일교 설명에 열을 올렸다. 되도록이면 쉬운 일본말로 식탁을 교육장으로 삼던 선생님이 자신의 지론을 펴게 되자 본격적인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25년을 살아도 한국말은 역시 외국어인 모양이다. 그래도 핸드폰으로 사전을 찾아서 한국어로 부연 설명하는 친절을 잊지 않았다. 

"나는 성경이나 교리같은 어려운 신앙 과제는 잘 몰라요. 그냥 느낌으로 통일교를 좋아할 뿐입니다. 내가 결혼상대로 한국인을 택한 것은 지난날 한국인을 너무 괴롭혔던 일본인의 한 후예로서 속죄하려는 뜻이었어요. 한국인 남편에게 잘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주면 한국이 행복해지고 그것이 곧 세계평화로 이어진다는 단순논리가 나의 신앙일 뿐입니다"   

집에 도착하니 스즈키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임상, 오늘 고마웠어요
샤브샤브가 너무 맛있었습니다"

스즈키 선생님과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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