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잃어버린 맛과 멋, 벗 찾는 명절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잃어버린 맛과 멋, 벗 찾는 명절
  • 김래호 작가
  • 승인 2019.01.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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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 ... //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 백석(1912-1996) 시 ‘여우난골族’ 부분

1920년대 북방의 설 무렵-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의 백씨 일가는 산길과 논둑길을 지나 본가로 향한다. 매서운 삭풍에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춤춘다. 소년 백기행은 행여나 설빔이 더렵혀질까 조심하는데 집개는 질척거리며 뛰어다닌다. 이인은 명절 제수용품을 어깨에 메고 머리에 선물보따리를 이었다. 저 멀리 동쪽 바다 백두대간의 산줄기는 흐릿하고 물푸레나무 설피의 자국은 깊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곰 같은 수원백씨’ 피붙이를 찾아가는 마음은 가볍기 그지없다.

명절은 ‘이름을 갖는 마디’로 명일이라고도 부른다. 뜨고 지는 해와 달의 나날이 매양 같게 보이지만 기실 다르다. 사람은 보름마다 드는 양력의 24절기 좇아 땅의 살림을 건사한다. 그러다가 하늘의 양수가 겹치는 음력의 중일명절을 맞는다. 그러니까 1이 두 번이면 설이고, 3이면 삼짇날, 5가 단오, 7이 칠석이고, 9가 중양절인 것이다. 여기에 초하루와 보름의 삭망명절도 쇠는데 정월 대보름, 6월의 유두, 7월의 백중, 8월의 한가위처럼 특별한 날이다.

어린 백석은 왜 하루가 밤과 낮의 24시간이고, 일주일이 7일이고, 한 해가 365일인지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24번의 절후가 무엇인지, 육합- 천지 사방과 아래 위 그 우주의 끝이 있는지 없는지 궁리하지 못했다. 더불어 진정 고향의 맛과 멋, 벗이 어떤 의미인지 미처 깨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일제에 쫓겨 타국에서 떠돌면서 맞는 쓸쓸한 명절에야 그곳을 떠올렸다. 부모님의 몸과 마음 꼭 절반씩 빌려 온 고향 말이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 대보름 명절인데 / 나는 멀리서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 ... //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연만 / 나는 오늘 때 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 혼자 외로이 앉어 이젓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을 것이다 – 백석 시 ‘두보나 이백같이’ 부분

두보나 이백은 물론 후대의 소동파나 강진의 정약용, 시베리아의 도스토예프스키, 크레타 섬의 카잔차키스, 드레스덴의 커트 보니것 모두 출생지를 떠나 타향에서 떠돌았다. 그 타관에서 겪는 고통과 설움의 나달이 그들의 영혼을 심화시켰고, 회두리에 ‘고향’의 참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그들에게 고향은 몸과 마음의 사람으로 처음 온 땅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이치와 이법의 본새를 갖추던 곳이다.

삼재-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하늘과 땅, 사람이다. 이는 하늘의 시간과 땅의 공간에 인간이 살아가는 곧 삼간이다. 여기에서 삼간이나 삼재의 기원 문제는 인류의 영원한 미완의 과제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다. 지구는 스스로 돌면서 밤낮을, 해를 크게 돌아 1년을 만든다. 여기에 지구를 도는 달은 수천 년 동안 얼굴만 보여줄 뿐 절대 뒤통수를 보여주지 않았다. 지난 3일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그 달의 뒷면에 착륙해 사진을 보내왔다.

창어嫦娥는 달 속에 산다는 전설 속의 선녀로 우리가 부르는 항아, 상아의 중국식 표기이다. 아무튼 유사 이래 보지 못하던 달나라의 후방에도 항아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 만은 분명해졌다. 그해보다 꼭 50년 전인 1969년 7월 20일- 미국 아폴로 11호 이글호가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안착하고, 역사적인 인류의 발자국을 남겼다. 그보다 4년 전인 1965년에는 고 백남준이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달의 변화를 12대의 TV로 형상화했다. 그 작품의 제목이 바로 ‘달은 가장 오래된 TV’이다.

올해 1월 29일은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의 13주기이다. 그는 ‘정주 유목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시간을 지휘하는 예술가’로 새로운 인류문화의 장을 열었다. 매개와 소통의 뉴미디어를 이용한 작품들은 같은 시간에 여러 공간, 하나의 공간에 여러 다른 시간이 공존하는 가능성을 모색했다. 잘 알려진 대로 1958년 독일 뮌헨대학 유학시절 존 케이지(1912-1992)와의 만남은 백남준 예술의 새로운 기원을 여는 충격이었다.

4분 33초- 1952년 발표된 존 케이지의 피아노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악보에는 그 어떤 음표나 쉼표도 없이 ‘TACET’만 표기되어 있다. 그러니까 셈여림표가 아닌 그저 ‘연주하지 말고 쉬어라’는 것이다. 타셋은 심포니 악보에서 부분적으로 특정 악기의 연주를 쉬라는 기호이다. 때문에 이 ‘4분 33초’는 음이 없는 연주이다.

백남준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내 삶은 1958년 8월 저녁 다름슈타트에서 시작되었어. 그를 만나기 전 해인 19567년이 내게는 기원전 B.C 1년이 되는 거지.” 그는 ‘존 케이지에의 경의’(1959년),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1960년)을 헌정하고 평생 스승으로 여겼다. 훗날 그저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라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퍼포먼스를 통해 ‘액션 뮤직’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존 케이지는 하나의 악보 그 자체에서 완결되는 음악을 거부했다. 백남준 역시 아름답게 가공되는 소리에 ‘소음’까지 포월한 음악으로 확장했다. 우리는 현실에 살아가지 만들어진 음악 가운데에서만 살지 않기 때문이다. 미적 허구의 세계보다는 부대끼며 사는 일상의 그것이 더 멋지고 돈후함을 선언한 것이다. 무수히 반복되는 일상 자체가 예술이 되는 삶을 바란 선구자들이다.

대음희성 대제불할- 일찍이《도덕경》의 노자는 이 여덟 자로 참된 사람 한 살이를 석명했다.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과 공간의 우주- 저마다의 몸과 마음으로 얼마나 크고, 넓은 ‘소리’와 ‘초지’를 듣고, 확보하며 사느냐가 문제라는 뜻이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바로 상처가 없다는 것이다. 상흔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미래가 존재한다. 타향의 상처는 온전한 희망의 고향에서만 치유된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의 원전 그 저본의 고향을 잃은 것이다.

고향의 땅 기운과 살붙이들의 따뜻한 정 흠뻑 받는 설 명절 나시길 비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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