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건승, 건필의 한 해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건승, 건필의 한 해
  • 김래호 작가
  • 승인 2019.01.11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당신은 존재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 그 중심에서 자신의 진정한 집을 발견한다. 오늘날의 세계는 조각나 있다. 하나의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붙잡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는 공동체에 대한 갈망, 소속감에 대한 갈망이 존재한다. 이는 바로 집에 대한 갈망이다. 당신의 글은 이런 갈망을 다루어 스스로 삶과 주변의 세상에 빛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 - 수전 티베르기앵《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제12강 ‘집으로 향하는 글쓰기’

서로 복을 빌어주고 덕담을 건네는 정초-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 대신 휴대폰 문자와 SNS를 통한 신년인사가 차고 넘친다. 쉴 사이 없이 울려대는 알림소리에 정신이 없다. 하지만 그 누군가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 여기고 답문을 보내주었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들의 웹이나 카톡방을 이용한 무차별 전송은 좀 불쾌하지만 말이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승, 건필 하세요!”

건승과 건필- 나의 새해 소원 역시 별 탈 없이 건강하고, 글을 굳건하게 잘 쓰는 것이다. 건필은 당나라 두보의 시 ‘희위육절’의 6수 중 첫 수에서 유래했는데 릉운건필凌雲健筆이다. 구름 위로 치솟듯 시문의 격이 호탕하고 간결해 힘찬 것을 말한다. 어디 이런 경지의 글이 하루 이틀에 써지겠는가?

조선의 마지막 문장가로 칭송받던 영재 이건창은 “글이 잘 되었는지는 오직 나의 마음이 스스로 나의 글을 질정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많이 쓰는 것은 많이 고치는 것만 못하다.”며 “하루에 한 번 고쳐서 일 년에 몇 편을 짓고, 또 몇 편 중에서 산삭하여 남겨두기를 10년 하면 책 한 권이 될 것이다.”고 부언했다. 나는 어렵고 힘든 글쓰기가 막히는 날이면 도서관에 처박혀 책을 읽는다.

체계적인 글쓰기는 나로 하여금 인류의 현 상황이 아닌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한다. 모든 것이 씌여졌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폐기처분되어 버리거나 환영으로 돌변해 버린다. 아마 나이와 두려움이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인류 - 유일한 종족- 는 소멸해 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쓸모없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런 모습으로 말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단편소설《바벨의 도서관》

‘바벨’은 히브리어로 혼돈을 의미하는데 보르헤스의 ‘도서관’은 곧 ‘혼돈으로서의 세계’를 의미한다. 우주의 운행 질서 그 코스모스를 인류는 영원히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보르헤스는 “‘도서관’은 끝이 없다” 단언하며 ‘무한’ 개념을 제시한다.

세계에 한계가 있다면 저 아득한 곳에서 책장들이 끝나듯 단절과 구획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한 역시 한계가 없다면 가능한 책의 수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망각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궁리 끝에 다음과 같이 매조지 한다. “‘도서관’은 한계가 없지만 주기적”이다.

만약 어떤 영원한 순례자가 어느 방향에서 시작했건 간에 도서관을 가로질렀다고 하자. 몇 세기 후에 그는 똑 같은 무질서(이 무질서도 반복되면 질서가 되리라, 신적인 질서) 속에서 똑 같은 책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리라. 나는 고독 속에서 이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가슴이 설레고 있다. - 《바벨의 도서관》끝 단락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의 묘비명은 이렇다.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다. 단지 1931년부터 1990년 사이에 이 행성 지구를 방문하다.” 인류는 매 시대마다 고통과 환희를 남기고 영원한 순례자로 다시 길 떠난다. 그렇게 여정의 기록은 문자로 남겨지고, 도서관으로 집적되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보다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지만 공유자산인 이를테면 언어와 지식 도덕과 규범, 문학과 예술 등이 없다면 동물에 지나지 않으리라. 보르헤스 식으로 개인의 고독이 설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은 사람과 자연에게서만 배운다. 자연이 놀라울 정도로 상호 통합적이며 순환의 시너지, 지속적인 정보와 에너지의 교환 속에서 존재한다. 사람들 역시 호혜적인 교류와 소통 속에 변화를 수용하고, 지식과 지혜를 확장해 나간다. 우리는 저마다 생태학적이고 문화적인 씨줄과 날줄로 커다란 태피리스트 그 인류라는 직물의 무늬를 직조하며 살아간다.

모든 개인의 삶은 말하자면 이야기이다. 삶이 이야기가 될 때 개인적 생은 비로소 참다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면서 서술자는 경험된 사실은 물론 상상의 소재를 선별하고, 정돈하고, 강조하고, 억제하며 일정한 ‘글’이 되도록 노력한다. 수전 티베르기앵은 작가란 ‘글쓰는 습관이 있는 사람’인데 누구나 지속적인 독서와 성찰을 통해 보다 창조적인 글쓰기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우리 우주는 모든 점이 나머지 모든 점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 중 어느 한 사람이 무언가를 하면 그 일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우리의 하늘은 모두 똑같은 하늘이고, 우리의 고향은 모두 똑같은 하나의 고향임을 은유한다. -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은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을 명쾌하게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드는 손님을 맞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끌리는 곳을 찾아가는 것- 우리는 ‘문과 마음’을 여닫으며 한뉘를 살아간다. 이제 새해라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주어졌다. 글쓰기는 서로의 ‘문과 마음’을 열고,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호모 픽투스Homo fictus- 우리는 이야기 하는 동물들이니 말이다. 2019년 새해 더욱 건승,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추천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