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숙 / 영화평론가, 충남대 평생교육원 일본어 강사

정미숙 평론가
정미숙 평론가

얼마 전 친구내외가 운영하는 치과에 다녀왔다. 친구는 무심코 가벼운 책 한권을 건네주었다. '좋은 건강' 4월호라 적혀 있다.  한참이 지난 후, 마지막장에 손이 닿았고 '가난한 집 맏아들'이란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언젠가 누워서 라디오 방송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난한 집 맏아들'이란 주제로 열린 시사평론 시간이었다.

문득 내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배우 ‘고두심’이 출연했던 '마당 깊은 집(1990,MBC)'이란 드라마가 떠올랐다. 마당 하나를 빙 둘러싸고 총총 단칸방들이 늘어선 세팅 장, 그 마당 한가운데는 마중물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펌프 식 우물이 자리하고 있었고, 주변엔 세숫대야나 바가지 등의 정겨운 소품들에서 어지럽혀 있는, 각 집집마다의 애환이 느껴지는 그런 드라마였다.

지금 생각나는 것이 어느 집 딸은 떡칠한 화장으로 미8군에 드나들며 군수물자를 얻어오는 작은 벌이로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다. 아침 화장실은 줄을 서서 대기해야만 했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자하나로 된 칸막이 옆방에선 깊은 밤 콩나물시루의 물소리가 잠결을 깨운다. 아니 그 시절 동그란 철제단지로 된 간이화장실인 요강 소리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당시 저 콩나물은 거르지 않고 물만 잘 주면 쑥쑥 자라나는 것이라서 지금 일본어 강의를 할 때마다, 그때 드라마 속 콩나물을 생각하며 자주 써먹는 말이 있다.

지금 일본어 강의를 할 때마다 그때를 떠올라 일본어도 “꾸준히 한다면 언젠가는 할 수 있다(続けていれば、いつかはできる!)”는 말로 학습자들을 위로하곤 한다. 자라나는 속도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느새 커 있는 콩나물이 아니던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장면 장면마다 떠오르는 것이 정겹게만 느껴진다. 억척스런 삶 속에 인간미가 배어있던 못사는 우리네 세월을 보여줬던 따스했던 드라마였다.

세월이 지나면 힘든 것도 한낮 추억으로 되씹을 수 있는 게 우리네 망각을 지닌 인간이다. 이를 추억으로 기억하고 웃을 수 있는 그 자체도, 현재 질적인 삶의 차원이 훨씬 발전된 지금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마당 깊은 집'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지금 이야기를 해 보려는 '가난한 집 맏아들'을 연상케 한다. 아무튼 그 시절 가난한 집 맏아들이란, 유교적 사상으로 맏아들, 종손만을 위해왔었다. 우리 부모님들의 힘은 오로지 이 장손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꿈이고 자랑이었다. 오직 그 힘 하나만으로 그들의 삶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분들의 고단함이랄까 위대함이랄까……. 차녀로 자란 나이지만 왠지 미워할 수 없는 그 시대 부모님이나 맏아들의 모습들이다.

나는 가난한 집 둘째딸이란 운명으로 태어났다.

그저 장손 며느리의 둘째 딸이란 것만으로도 이름에 돌림자도 붙여주지 않았다. 아니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분하고 원통해서 이름 앞 글자 ‘재(在)’에 ‘분(憤)’자를 넣어 불렀다고 한다. (돌림자가 ‘재’자이니 ‘재분’이가 된다)

자라면서 차츰 애교가 늘어 다시 붙여준, 현재는 아름답고 맑다는 뜻의 만족한 이름으로 살고 있다.

아무튼 혜택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라면 추억이랄까. '가난한 집 맏아들'과 같이 그 시절 맏아들들은 교육과 먹거리부터 딸들과는 차별되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자랐다. 그런데, 지금에 그들이 커서 자신들 즉, 맏아들 때문에 희생양이 된 아래 동생들을 생각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다.

결국 이를 경제정의의 편에 서서 풀어낸 것이 이 '가난한 집 맏아들'이란 제목이었다. 기업에선 대기업 집중육성 정책으로 인해 여러 재벌들에게 정부는 많은 특혜를 베풀어 줬건만, 맏아들이 출세해 동생들을 돌보지 않는 것처럼, 대 재벌이 소규모 기업성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많은 횡포를 일삼고 있다는 요지였다. 즉,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의 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작금의 슬픈 현실을 꼬집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주위 사람들이나 부모로부터 심적 물적 특혜를 받고 자란 맏아들. 정부로부터 세금이나 차관 등등의 지원 속에 성장한 대기업의 그룹들.

가난한 집 줄줄이 딸려있는 아래 형제들의 고단한 삶은, 지금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과 닮아있다. 왠지 겨울의 문턱에 서있는 시점이어서지, 한 줄도 안 되는 책 제목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산다는 것은……,

정이 많은 사람, 그래서 나눌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었음 한다.

수혜자로서의 장남(기업인)들은 이제 주변에 시선을 돌릴 때이다. 나는 우연히 받은 책 속의 한 단어와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프로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글은 내안의 얼음을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다. "깨달음이 없는 종교 있으나마나, 느낌 없는 책 읽으나 마나". 내가 전에 연구하던 어느 일본작가의 말이다.

'마당 깊은 집'과 '가난한 집 맏아들'이라는 한 단어 한 문장 속의 배움에 감사한다. 그리고 글을 쓸 수 있어 지금의 느낌을 저장할 줄 아는 것에 감사한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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