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신(神)의 선물이자 가장 아름다운 인연

김도현 칼럼니스트
김도현 칼럼니스트

가게 문을 열긴 했지만 손님이 별로 없다.
일요일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를 다녀와서 가게를 열자는 아내의 간청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이 답답할 때면 딸애가 저장해 준 핸드폰 속 사진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활짝 웃고 있는 세 살 손녀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와 같다.

동화책 속 백설공주 같기도 하며 백화점 인형코너에서 웃고 있는 바비인형 같기도 하다. 내 품에 꼭 안아서 볼을 비벼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손녀의 몸에 천사의 날개를 달아주어 하늘의 뭉게구름과 땅 사이. 탁 트인  푸른 바다 위에서 마음껏 뛰어 놀게 해주고  싶다.

문득 어제 일을 생각하니 가게에 손님들이 드나들 건 말 건 자꾸만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내이. 저나하께! 이제 아녕, 바이빠이'(내일  전화할게! 이젠 안녕, 빠이빠이) 상대방 입장은 전혀 아랑곳없이 인사를 한다. 

그럴 때면 자기가 무슨 스케줄에 꽉 찬 유명인사인양 일방적으로 작별인사를 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손녀의 모습이 떠올라 웃어도 다시 웃음이  나온다. 그 말은 며칠 전 내가 손녀딸에게 전화를 끊으면서 해주었던 작별 인사였다.

손녀는 어느새 그 말을 기억해 내고는 똑같이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저 기가 막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아직 어린아이라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 생각은 착각이었고 앞으론 애들 앞에서 말조심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 당장 보고 싶은 마음에 손녀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고 아고 하하하하 하부지!'(아휴 아휴 하하하 할아버지) 손녀는 내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어떻게 알아챘는지 요술쟁이처럼 깔깔대며 할아버지를 연발한다. 
평시에도 어찌나 동작이 민첩한 지 옆에 있는 제 할머니가 전화를 받을 틈을 주지 않고 수화기를 낚아채는 손녀딸이다.  

'아치 바다 차바다에 우고 가는 저기저기, 여서 하자 써주세요.'  손녀딸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엽서 한 장 써주세요. 다음은 이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어떻게 그 어린 것이 이 어려운 노래를?' 음정박자 어디 한 군데 틀린 곳이 없다.

'노랫소리 들었어요? 다음 구절 구리구리는 양손을 가지고 돌리고 있는 중이에요.'
아내는 잠시 노래가 끊어졌던 이유를 설명하더니 조금 전 노래를 한 번 가르쳐 줬더니 금방 따라 하는 것이 가수 할배를 닮았다.

아내는 손녀딸이 천재가 아니냐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순간 딸애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딸애가 손녀딸만 했을 때 가장 좋아하고 잘 부르던 노래가 방금 손녀딸이 불렀던 '아침바람'이었다.

그 노래만 들려주면 깔깔거리고 웃으며 따라 부르곤 했는데 때로는 귀찮을 정도로 내게 재청을 요구했었다. 구리구리 부분에서는 두 손으로 원을 그린 후 작은 손가락 하나로 내 뒷목을 꼭 찌르고는 시치미를 떼며 어느 손가락인지 맞춰보라면서 깔깔댔다.  

그런 딸애가 예쁜 공주를 낳아 딸애가 불렀던 그 노래를 그의 공주 입에서 듣고있자니 이제야 가는 세월이 실감이 났다. 딸애 어릴 적과 손녀를 비교해보니 그 둘은 참으로 흡사한 면이 많다. 노래를 부르던 손녀의 목소리는 그 엄마와 그 딸이 아니랄까봐 너무나 닮았다. 성격도 꼭 닮았다.   

딸애는 제 엄마 젖꼭지가 아니면 절대로 빨지 않았는데 엄마가 피곤할 정도로 고집이 셌고 빈틈이 없었다. 그 고집은 신생아 때 공갈젖꼭지도 빨지 않았다. 전축이나 TV에서 노랫소리가 나오면 아무거나 붙잡고 마이크 흉내를 내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끼도 딸애의 어릴 적과 똑같다.

문득 딸애가 손녀만 했을 때 녹음해 둔 녹음테이프가 생각났다. 테이프는 딸애가 네댓 살 때 노래 부르는 것, 가족을 소개하는 것, 엄마 아빠를 인터뷰하는 것 등 소소한 모습들을 목소리로 남켜놓은 것이었다.    

그 테이프를 찾아서 노래를 들어보고 손녀에게 들려주며 너의 노래가 아니냐고 장난을 쳐봐야겠다. 아마도 손녀는 자기 노래인 것으로 착각하며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들어보는 녹음기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놀란 토끼모양 눈을 휘둥그레 뜨겠지? 살며시 웃음이 나왔다. 손녀의 노랫소리도 녹음을 하기로 했다. 모녀의 노랫소리를 동시에 합쳐서 들어보면 그 옛날 화목했던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영화장면처럼 스친다.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모습들을 붙잡아 둘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안타까움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붉게 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손녀가 더욱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지도 모르겠다. 손녀의 모습은 옛날 우리 가족들의 모습을 되돌려 볼 수 있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딸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얘! 이번 일요일은 서현이 노래를 녹음해서 옛날 너 노래하고 비교를 해 봐야겠어! 어제 서현이 아침바람을 들어보니까. 어쩜 옛날 너 목소리하고 그렇게도 똑같니?' '아빠! 그럼 그 엄마에 그 딸 아니겠어?' 

히히거리며 얘기하는 딸애는 애 엄마가 됐어도 말투며 행동이 어릴 적 말광량이 모습과 변함이 없다. 내겐 그런 모습이 더욱 정겨워서 좋다. 딸애가 조금 전 얘기한 엄마와 딸....곰곰 생각해 본다.

그것은 신(神)이 내려 준 부녀간 소중한 선물이자 가장 아름다운 인연(因緣)이다. 누구에게나 엄마와 딸은 이 세상의 시작이자 삶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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