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새우젓장사 아주머니와의 아련한 추억 

김도현 칼럼니스트
김도현 칼럼니스트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다. 가슴 속에만 묻어두었던 그분들의 따뜻한 눈동자의 미소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년 전체가 수학여행을 갔지만 나를 비롯한 육상부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포기했다. 9월 중순, 제49회 전국체육대회가 서울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강제성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포기하고 성화 릴레이 주자로 뛰기를 원했다. 
당시 노량진에서 강화도 가는 길목인 김포 양촌리 까지 우리가 성화를 연결하는 코스였다. 지도교사의 인솔에 따라 준비운동을 마친 후 우리는 출발했다.            

가을 날씨였지만 뛰다 보니 열이 나고 온몸에 땀이 났다. 
그 때만 해도 도로는 한산했고 시외버스만 한가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김포 양촌리에서 우린 성화를 인계했다. 이젠 시외버스를 타고 노량진 학교로 되돌아가면 됐다. 성화봉을 인계하고 우리는 때마침 도착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서서 가는 승객들이 많을 정도로 혼잡했다.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은 새우젓으로 가득한 노란 양은들통과 다라를 옆에 끼고 새우젓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싱싱한 새우젓 냄새는 악간 비릿했지만 바다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안내양은 물론 노란 양은들통을 끼고 있던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 살짝 웃으며 코를 찡끗했다.
하얀 팬티와 49회 전국체육대회 마크와 성화봉 그림이 새겨진 하얀 런닝셔츠를 입은 모습이 신기해서 그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걸 얼마 후 깨달았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대중목욕탕을 일 년에 많아야 두세 번 이용하던 시절이었다. 대충 등목으로 때웠다. 설날, 추석 전날 목욕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버스 안은 강화도에서 사오는 싱싱한 새우젓 냄새로 비릿했다.
여기에 내 몸의 땀 냄새에다 그동안 절어있던 묵은 때 냄새가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내 코에도 그 냄새가 역겨웠다. 그래서 아주머니들이 땀에 절어 역한 냄새가 싫었지만 아들뻘이라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아주머니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괜찮아,괜찮아'하는 듯한 사랑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이런 사실을 느끼자 더 이상 창피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때였다. 차가 기우뚱 하면서 내 발 옆에서 날 가로막고 있던 새우젓 들통을 나는 밀어 버렸다. 새우젓 들통은 옆으로 넘어져 때굴때굴 구르고 차안은 쏟아진 새우젓과 국물로 엉망진창이 됐다.  

곧바로 차는 김포공항 정류장에 도착했다. 난 잽싸게 내렸다.  
너무 창피하고 죄스러워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36계 줄행랑을 쳤다.  
물론 노량진 학교방향으로 달리고 달렸다. 가을걷이를 하는 농부들은 일손을 멈추고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새우젓 냄내를 풍기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말했다. '야! 새우젓, 그거말야...우리들이 다 담아주고 선생님이 새우젓 값 다 치러줬어. 너무 걱정하지마! ......'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창피하지만 역한 냄새로 코를 찡끗거리면서도 눈 가에는 사랑이 가득한 미소를 지어 준 아주머니들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사람 똑바로 쳐다보기도 무서운 요즘 세상 그분들의 미소가 그립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