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진실을 지배하는 세상....그래도 양심있게 살아야 

김도현 칼럼니스트
김도현 칼럼니스트

고등학교 때 일이다. 나에겐 항상 어울려 다니는 '김경탁'이란 친구가 있었다. 
나는 수학을 아주 잘 했는데 앞 자리 김경탁이란 친구는 수학점수가 항상 빵점에 가까웠다.   

대신 그는 미술에 천부적 소질이 있어서 미술대학을 예약했을 정도였다. 여러 개 권위 있는 미술공모전에서 우수한 성적도 거두었다.  

하지만 그가 좋은 미술대학을 가려면 학업성적도 어느 정도는 좋아야 했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때였다. 경탁은 내게 제안을 했다. 
커닝을 하자고... 잘만 되면 멋진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날 집요하게 설득했다.

4교시 수학시험 때였다. 수학에 대해서 자신감이 있었던 난 그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했다. 커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방법은 시험지를 받으면 내가 답안지를 작성한 후 그의 이름을 적어서 그의 답안지와 바꿔치기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먼저 적고 답안지를 작성했다. 이젠 답안지만 서로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난처한 일이 생겼다. 시험 종료시간은 다가오는데 감독관 체육 선생님이 우리 옆에서 꿈쩍도 안 하고 내 시험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다.

'따르릉' 종료시간 벨이 울리고 말았다. 난 얼떨결에 그의 이름을 적은 시험지를 그대로 제출하고 말았다. 시험지를 체크하던 선생님은 큰 소리로 우리를 불러 세웠다. 왜, 한 사람 이름이 두개냐면서 날 가리키며 네 시험지는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다그쳤다.

경탁이가 자기 답안지에 내 이름을 적어 냈으면 아무 일 없는 건데 그 역시 당황한 나머지 자기이름을 적어낸 것이었다. 황당하다는 듯 씩 웃던 감독관은 답안지 두 개를 치켜 올리더니 교무실로 따라 와! 하시며 사라졌다.

선생님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 했다. 어떻게 연로한 부모님한테 커닝 문제로 학교에 같이 가자고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대학생인 형한테 부탁을 했다. 선생님을 만나고 온 형은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그러더라. 한번 안 했다고 거짓말을 했으면 끝까지 안 했다고 거짓말을 했어야 눈 감아 주는 건데 커닝을 했다고 자백했는데 어떻게 봐주냐고... 
한번 거짓말을 했으면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우기라는 그런 얘기를 했다는 거였다. 

그 땐 정말 이해가 안 갔지만 세상을 살다보니 그 때 선생님의 말씀이 옳은 말이었다고 생각될 때가 많았다. 선생님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그랬던 것 같았다.

더군다나 사회 최고봉에 오른 대통령 후보, 장관,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를 보면 더욱 그 말이 실감난다. 그들은 하나같이 진실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진실이라 우겼다. 

요즘 돌아가는 정치권 세상들을 보면 더욱 선생님의 그 말이  떠오른다. 
내 인생은 끝까지 거짓말을 못 시켜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나 하는 자책감도 든다.

하지만 거짓이 진실을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그 것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청문회에서 얼마나 많은 인사들이 망신을 당했던가......선생님의 그 말을 못 들었더라면 나는 진실만을 추구하며 더 큰 인생을 살았을 것 같다. 

머잖아 내가 죽어서 장례식을 치를 때 조문객도 걱정 안 했을 것이고 내 주위에는 지인들이 들끓었을 것이다. 진실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지남철과 같은 것인데, 난 선생님의 그 말을 너무 신봉했던 것 같다. 

아무튼 끝까지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양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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