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계족산과 대청호」(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계족산과 대청호」(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지난 토요일 8일이 24절기의 17번째,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寒露였습니다. 이제 보름이 지나면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입니다. 봄비, 장맛비, 이슬, 서리, 눈... 그렇습니다. 수水 기운, 그 물의 순환이 1년인데 상로 사이의 절후이니 곧 눈발이 분분한 겨울철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많은 이들이 ‘나의 인생 시’로 꼽는 명시 한 편이 언론의 지면과 화면에 자주 등장합니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저널리스트 활동 후 동국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이형기(1933-2005) 시인의「낙화洛花」입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봄 한철 / 격정을 인내한 /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 할 때, //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 머지않아 열매 맺는 / 가을을 향하여 //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 헤어지자 /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 나의 사랑, 나의 결별, /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낙화」(1963) 전문

이 시가 발표될 당시의 제목이 한자로 「낙화洛花」인데 ‘물 낙, 꽃 화’로 모란을 달리 이르는 말입니다. 꽃 중의 꽃 그 화왕花王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꽃 지는 낙화落花로 이해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바로 풀 ‘초艹가’ 떨어져 “물에 흘러 간다”는 그 낙洛 자이기 때문입니다. 기실 한뉘, 인생, 한평생, 생애, 일기... 우주나무에 단 한 번 피고 지는 ‘사람꽃’은 식물의 개화, 낙화, 열매, 뿌리 그 생주이멸生住異滅과 판박이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염두에 두고 노자의 『도덕경』을 살펴보면 또 무릎을 치게 됩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계족산과 대청호」(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계족산과 대청호」(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부분

處其實처기실 不居其華불거기화 고거피취차故去彼取此: 열매에 거처하고 꽃봉오리에 거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도덕경道德經』제 38장

근대 문학비평의 선구자인 프랑스의 샤를 오귀스탱 생트뵈브(1804-1869)는 고전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모든 여행과 경험을 마친 이에게 찾아오는 기쁨”- 그렇습니다. 진정한 고전은 열정의 청춘 그 시절보다 냉정의 늘그막에 본령, 알짬, 진가를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세월과 시간 속의 불행과 행복, 실망과 기대, 우울과 환희 그 개켜진 인식체계가 ‘고전’을 다시 잡고 톺아 읽게 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경구 이 12자는 사람 한 살이의 실체를 함의하는 현묘한 진리입니다.

지난 연휴에 들른 대전의 계족산과 대청호- 그 산자락의 아파트단지 선비마을에 10여 년 살은 터라 산길과 산성은 발길을 자주 낸 곳입니다. 나의 40대를 회억하며 느릿느릿 걸어 오른 계족산성에서 문의면 청남대쪽을 바라보니 추색이 물들기 시작했더군요. 한참을 보자니 불현듯 연암 박지원의 「종북소선서鍾北小選序」의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먼 물은 물결이 없고, 먼 산은 나무가 없으며, 먼 사람은 눈이 없다!”- 아! 여기, 지금보다 더 높이나 깊이, 멀리 가면 나라는 존재를 과연 찾을 수 있겠는가?  

불교 선종의 조종 달마대사(미상-528)가 이승을 떠나는 열반의 자리에서 하문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여. 그래 나와 함께 지내며 배운 바를 말해 보거라!” 몇몇이 답변을 올렸고 이윽고 도육道育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대四大가 본래 공한 것이니 소승이 보기에는 한 법도 얻은 바가 없사옵니다...” 여기에서 사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불교에서 일체 만물을 구성하고 있다고 여기는 ‘지/수/화/풍地水火風’입니다. 그러니까 도육은 그 사대마저 부정해버린 것인데 선禪은 이 절대부정에서 피어난 진리의 ‘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서양철학의 원조는 자연철학으로 만물의 근원 곧 아르케arche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는 ‘물’, 헤라클리토스는 ‘불’,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각각 주창했던 것이죠. 이 여러 학설을 통합한 철학자가 바로 엠페도클래스인데 동양 불가의 ‘사대’를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아르케는 지수화풍이다- 훗날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론으로 발전시키는 한편 소크라테스가 인간적 삶 그 자체에 대한 이성적 논의를 구현해 형이상학적 철학의 본색을 갖추게 됩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계족산과 대청호」(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부분

자연自然- 스스로 변하면서 그런 줄 모르는 게 산과 물이 중심인 자연이라고 합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조선 영정조대의 신경준이 편찬한 『산경표山徑表』에 보이는데 바로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고 풀이합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저는 스스로 산과 물이 되어 넘기지 못하거나, 건너지 못한 묵은 삼독三毒을 다스려 봅니다. 탐욕과 진애 그리고 우치: 집착과 분노, 어리석음 곧 불가의 탐진치貪瞋痴- 하여 서로 부딪혀 마르고, 닳으면 새하얀 눈 덮힌 설원이 되어 모든 것이 사라지겠지요. 이형기 시인의「낙화」 그 시의 마지막 연, 마지막 시구의 ‘눈’을 ‘설雪’로 새겨도 무방한 연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삭이고 숨긴 것들 찾아내는 ‘눈目’도 되는 그 눈 말입니다.

부디 날마다 새롭고 좋은 늦가을 나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 충남대 국문과 /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 / TJB대전방송 /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부문 입선(2020년), 제28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년)했다. 산문집『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년) /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년)를 펴냈고, 현재 경부철길의 절반 지점인 고향에서 사람책Human-Book 도서관 ’어중간於中間‘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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