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 뉴스티앤티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 뉴스티앤티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님"

 

유명 가수 나훈아가 부른 ‘그리운 어머니’라는 노래이다.

가수 나훈아는 이 노래를 부르며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빈다.’고 하며 통곡하였다.

2022년 6월 3일 오후 2시 30분.

강원도지사 당선인 김진태 내외는 대전 현충원을 찾았다.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께서 이곳에 잠들어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울었다.

아버지 어머니 잘 계시냐고 흐느끼며.

막내 아들 도지사 되는 것도 못 보시고....

이번에 선거운동하면서 제가 아버지 얘기 많이 했다고 하였다. 6,25참전용사인데다가 화랑무공훈장 두 개, 3대가 군필 가족, 좋은 소식 보고하러 왔는데 눈물은 왜 나는지 참느라 혼났다고도 했다. 아내는 차마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했다.

 

김용복 제공
김용복 제공

필자는 김진태 내외의 착한 심성을 잘 안다.

내 아내 오성자가 치매로 앓고 있는 동안 병 문안하러 강원도에서 달려 왔으며, 아내가 소천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알려지자 내외가 아침 일찍 달려와 내 손을 잡아주던 분이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유의(柳誼:1734-?)라는 목민관을 칭찬하였는데, 유의는 목민관으로도 훌륭했지만, 모든 부분에서 훌륭한 일을 많이 했던 관료로 뒤에는 대사헌(大司憲), 병조참판(兵曹參判)의 벼슬에 오른 고관이었다.

다산이 천주교 문제로 모함을 받아 승정원 승지(承旨)의 벼슬에서 쫓겨나 충청도 홍주(洪州:지금의 홍성)목 산하에 있던 금정도(金井道) 찰방(察訪)이라는 하급의 벼슬살이를 할 때였다. 그때 찰방은 지금 시골의 역장(驛長)과 같은 낮은 벼슬인데, 그 직속 상관이 바로 홍주의 목사(牧使)이던 유의였다. 유의가 병조참판 때에는 다산은 병조참의로 또 그를 상관으로 모셨다.

참판 유의가 홍주목사 때의 일이다. 흉년을 만났는데 유리걸식자 5~6명이 읍내에 돌아다녔다. 유의는 그들을 가련하게 여겨 마방(馬房:군청의 뜰에 있었다)에 머물게 하여 죽을 먹이고 불을 때어주었다. 군청의 간부나 아전들이 간하기를, ‘유리걸식자를 이같이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면 그 떼가 앞으로 구름같이 모여들 것이니 누가 이것을 감당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과연 며칠이 안 되어 유리걸식자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드는 사람이 수십 명이었다. 유의는 이들을 모두 수용하고 좌우에서 극력 간해도 듣지 않았다.

‘유리걸식자는 그 수효가 한도가 있는 것인데, 구름같이 모여든다고 미리 말하는 것은 모두 착한 일을 가로막는 일이다. 내 힘이 미치는 데까지는 우선 받아들일 것이요, 힘이 이에 다되면 보내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나?’라고 하였다.

그래서 믿는 것이다. 김진태지사의 목민관으로서의 심성은 유의에 못지 않을 것이라고.

김진태 지사를 택한 강원도민들에게 한없는 축복이 임할 것이다.

김진태 당선인이여!

오늘 대전 현충원 부모님 묘역에 와서 쏟은 눈물, 강원도민을 위해서도 쏟기 바란다.

쏟되 아내 모르게 쏟지 말고 아내도 알고 강원도민도 알게 펑펑 쏟기 바란다. 대전에 있는 필자가 그대의 착한 심성을 믿듯 강원도민도 믿을 것이다.

 

* 외부기고자의 칼럼은 본보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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