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인 / 주부
신영인 / 주부

어제저녁 장 보고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가 문득 "엄마는 얼핏 보면 똥배도 없는 것 같고 얼굴도 꽤 예뻐 보인다”고 그럽니다.

음...아.. 칭찬인가.. ?

새벽녘 어제 그 말을 떠올리면서 제 얼굴을 보았습니다. 얼굴은 ‘얼’을 담은 ‘굴’이니 은근히 풍겨 나오는 사람의 향기와 표정을 얼-핏(모양)이라 불러도 되겠다고 말놀이도 해봅니다. 얼핏 봐도 고운 이는 그의 얼의 핏이 고와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괜히 마음결도 한번 들여다보았겠지요.

얼 핏을 생각하다가 산책길에 만난 산딸나무가 떠올랐습니다. 산딸나무 가지 끝에 하얗게 핀, 얼핏 보면 꽃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잎이라 합니다. 벌 나비 못 보고 지나칠까봐 스스로 푸른 빛 비워내고 꽃 흉내를 내는 헛꽃이라 합니다.

헛꽃은 꽃이 아니라고 헛것에 상처받지 말라는 이도 있겠지만 이사랑 시인은 ‘수행의 꽃’이라며 헛꽃을 껴안습니다.

 

산 속 적막을 지키는 헛꽃,

바스락 바스락 떨고 있는 것이냐

이 겨울 너 왜 그렇게 슬퍼 보이는 것이냐

나 속고 속아서 헛헛한 반생을 살다가

누구에게 헛꽃처럼 살지 못하고

이제야 헛, 참, 헛꽃에게 겸손을 배운다

당신을 유혹한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어머니,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말해 주세요

너는 언제 중심을 위해 변방에서 베풀었더냐

누구를 위해 착한 거짓말로 죄 지은 적 있더냐

참을 위한 거짓으로 참사랑 맺어 주고

욕심 없이 고개 숙인 헛꽃은 수행의 꽃이 아니더냐

꽃 없는 계절 그늘진 숲이 또 쓸쓸할까봐

너는 마른 꽃잎도 떨구지 못하는 것이냐

          / 이사랑 <헛꽃> 전문

 

그랬나 봅니다. 얼핏 바라본 산딸나무 헛꽃에 마음이 굽었던 것이 산딸나무의 얼이 고와서였나 봅니다. 그 헛꽃은 아무리 드나들어도 고해소 문턱이 닳지 않는 하얀 거짓말이었나 봅니다.

어떤 잎은 꽃보다도 곱습니다. 어미아비가 자식을 세우느라 빛바랜 꽃으로 시드는 것을 어찌 헛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어떤 ‘헛’은 ‘참’이라 불리는 것보다 그 얼이 곱습니다.

 딸아이에게 계속 얼핏 봐주길 바라고 얼의 핏도 보아달라고 장난처럼 부탁해봅니다. 언제 보아도 얼핏 보아도 헛꽃이 된 뒤에도 고운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둘이 어스름을 함께 걷습니다.

넝쿨이 가시를 껴안는 봄밤에 산딸나무 헛꽃이 달빛처럼 환합니다.

 

- 신영인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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