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권 / 변호사 유태권 법률사무소

유태곤 변호사
유태권 변호사

2021년 1월 26일 민법 제915조가 삭제되었다. 이로써 부모의 징계권이라는 민법상의 권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민법 제915조의 삭제는 단순히 법 조문 하나 삭제 이상의 의미가 있다. 또한 징계권 조항 삭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다. 그 의미와 시사하는 바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법은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한다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법이 현실을 반영한다는 말은 단순히 현실을 묘사한다거나 현실을 해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법의 존재 목적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유지하는 데 있지만, 현실에 기반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사회가 지키고자 하는 현실은 지키는 방식으로, 개선코자 하는 현실은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규정되기 마련이다. 

부모의 징계권 조항도 현실의 반영이었다. 부모의 징계권 조항은 1958년 제정되고 1960년에 시행된 민법에 처음부터 규정되어 있었다. 현행 민법 시행 이전에는 일본의 민법을 차용해 활용하고 있었는데(이를 ‘의용민법’이라 한다), 이 일본 민법에 규정되어 있던 부모의 징계권(일본 민법 제822조) 규정을 우리 민법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19세기에 제정된 일본 민법에 부모의 징계권 조항이 규정된 것은 당시 현실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체벌하고 자녀와 관련된 일에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던 19세기 이전의 일본 사회(물론 조선 사회라고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20세기인 1950년대 후반에 제정된 우리 민법에 부모의 징계권 조항을 이식한 것 역시 현실의 반영이었다. 민법 제정기에 부모가 자녀에 대해 체벌하고 전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9세기, 20세기 등 지난 세기에 규정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징계권 조항이 그 유효성을 다했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세기가 아니라 수십 세기가 지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유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인죄와 같은 규정은 기원전 2100 년경에 기록되었다고 알려진 현존 최고(最古)의 법전인 우르남무 법전에서도 발견되는 바, 이러한 살인죄 규정이 수십 세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그 유효함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법과 현실의 상응성이지 단순히 그 규정의 제정 시점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법이 때로는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일반적인 경우에 법은 현실의 반영이므로 변화하는 현실과 함께 상응하여 그 형식과 내용을 달리하게 된다. 이러한 법의 변화는 크게 세 방향을 통해 일어난다. 

첫째는 법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새로운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이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호호에 관한 법률’은 인터넷과 정보통신망이라는 새로운 공간의 출현과 그곳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필요라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새롭게 제정된 법이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도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변화하는 새로운 현실을 규율하거나 지도할 법이 없다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법을 개정함으로써 법은 현실과 조응해 나간다. 

둘째는 법의 탄생이 아닌 법의 소멸의 과정인데, 이 소멸은 다시 두 종류의 과정으로 나뉜다. 하나는 헌법재판소에 의한 강제적 폐기이다. 헌법재판소의 여러 작용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현행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여, 위헌으로 확인된 법률을 폐기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작용은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위헌성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여, 즉 현실을 반영하여 과거에는 위헌으로 판단하지 않았던 법률이라고 하더라도 위헌으로 판단하여 폐기시키는 경우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확인에 의한 법률의 폐기는 사법작용에 의한 강제적인 법의 소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회의 개정 및 폐기에 의한 법의 소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법의 제·개정 권한 즉, 입법권이 국회에 있음을 규정한 헌법 제40조는 단순히 선언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입법권을 둠으로써 입법을 국민의 의사와 사회 상황을 반영한 입법이 가능하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그 결과 현실의 변화에 따라 국회가 사회와 시민의 요구를 반영하여 법을 개정, 폐기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법의 자발적 소멸, 즉 국회에 의한 법률의 개정 및 폐기가 법 소멸의 다른 한 과정이다. 이러한 입법권에 의한 법의 자발적 소멸의 원인은 현실과 전혀 맞지 않은 구시대적 법률 규정의 정비차원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새로운 현실에 대응하고 더 나아가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요구와 열망을 반영하는 가운데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부모의 징계권 조항이 삭제된 것도 바로 마지막 예에 해당한다. 징계권 조항에 근거해서 아동학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징계권 조항이 폐지된다고 해서 아동학대가 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징계권 조항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가 위헌임을 확인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 정확하게 바라는 현실은 징계권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었다. 즉, 징계권 조항이 더 이상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징계권 조항의 삭제를 통해 징계권 조항의 존치가 그려내는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징계권 조항 삭제를 통해 반영하는 현실은 지향점이자 당위로서의 현실일 뿐, 존재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징계권 조항의 삭제가 반영한 현실은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이다. 이처럼 때로 법은 현실을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 

아동학대를 금지하는 법의 연원은 놀랍게도(!) 1962년 아동복리법의 제정시기로 올라가게 된다(아동복리법 제15조 제10호). 이 당시에도 법은 이미 현실을 앞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60여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많은 대한민국의 아동은 아동학대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때로는 죽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2021년 1월에 민법에서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것은 60여 년 전에 아동복리법을 제정할 때 ‘지향한 현실’이 아직도 ‘우리의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꾸준히 나가야 한다. 체벌로 자신을 올바르게 이끌어 준 선생님을 최고의 은사라 여기고, ‘사랑의 매’라고 하면서 자녀에 대한 체벌을 정당화 시키던 19세기의 과거가 현재 21세기에도 쥬라기 공원의 공룡처럼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외워야 할 영어 속담으로 “Spare the rod, and spoil the child”와 같은 속담을 손에 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징계권 조항의 삭제는 자녀, 아동과 관련하여 구시대의 사고방식을 청산하고 새로운 사고 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것은 다시 우리가 어떠한 사회를 만들어 나아가야 할지 고민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우리가 그리는 새로운 사회, 현실에 대한 청사진이다. 그리고 그 청사진은 새로운 부모와 자녀, 아동의 관계 정립에 대한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자녀는, 우리 사회에서 아동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 징계권 조항의 삭제를 통해 이제는 양육과 관련한 문제는 양육권과 복종의무가 아니라 양육의무와 피양육권의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부모는 양육의 의무를 지고, 자녀는 양육받을 권리, 즉 피양육권을 갖는다. 양육의 의무에서 파생되는 일련의 권리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거소지정권 등은 최선의 양육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가결하게 부여되는 권리일 뿐이라는 식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의 삭제로 친권의 효력 가운데 권리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자의 재산관리(민법 제916조)”와 “자의 재산에 대한 친권자의 대리권(민법 제920조)”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권리들은 모두 양육의무의 이행과 관련하여 피양육자인 자녀의 이익을 위해 행사토록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징계권 조항의 삭제는 부모의 양육의무, 자녀의 피양육권을 중심으로 하는 친권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징계권 조항의 삭제는 부모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 점에 주목한다면 가족구성원 간의 평등관계의 정립도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징계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부모의 징계권 조항에서 우리는 부모를 정점으로 하는 가족 내 위계질서를 전제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징계권 조항의 삭제는 가족 구성원의 평등관계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는 그리고 아동은 보호를 받아야 할 가족구성원일 뿐, 징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아동의 4대 권리 가운데 가장 홀대 받고 있지만, 가장 성숙한 권리라고 할 수 있는 참여권 보장의 본격적인 길을 징계권 조항의 삭제에서 모색하는 것이 과잉 해석만은 아닐 것이다. 

때론 법의 소멸이 우리 사회가 갈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이자 새로운 현실을 위한 밑그림을 제시하기도 한다. 끝이 곧 시작이라는 다소 식상한 표현이 여기에서는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역사적인 부모의 징계권 조항 삭제는 부모의 징계권이 사라진 자리를 아동의 피양육권, 아동의 참여권, 아동의 인격권으로 채워 나가야 할 의무를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다.  징계권 조항의 삭제가 가족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자녀,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아동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어 나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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