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기1961년 5월 16일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을 완수한 후 민정에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고 공약을 했다. 국력을 키우고 부강하게 만든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집권 기간의 절반 즈음에 유신헌법을 만들어 나라를 더 발전시키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유신’이라는 것이 일반 사람들 입장에선 ‘직접선거제’를 ‘간접선거제’로 바꾼 것에 불과했다. 7년 후 유신체제는 무너졌고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1979년 10월 18일, 경제가 침체된 부산과 마산에서는 참다못한 시민들이 봉기했다. 이른바 ‘부마항쟁’으로 일컬
공수부대 마크가 아깝네1970년 10월 15일, 소령으로 8사단 보안부대장에서 보안사령부 인사과장으로 명령을 받았다. 1970년 10월 14일 오전 이‧취임식을 마치고 나자 5군단 보안부대장 김원태 대령이 내게 5군단장에게 인사드리고 떠날 것을 제안했다. 신고나 인사를 꼭 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역 군단장을 예의상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 군단장은 이병형 장군으로 6·25전쟁 때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사실 군단장은 사단 보안부대장이 어디로 가든 관심 없는 직책이다. 군단장이 식사하러 갈 때 식당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인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