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종 국민의힘 서산·태안 국회의원 후보는 2일 서산·태안을 돌며 집중유세를 펼쳤다고 밝혔다.성일종 후보의 이날 집중유세는 ▲ 오전 11시 서산 동부시장 ▲ 오후 1시 태안 전통시장 ▲ 오후 2시 태안 구 터미널(정금사) ▲ 오후 3시 30분 서산 읍내약국 앞에서 이어졌다.이날 집중유세에는 중견배우 김성환·배도환 씨가 성일종 후보를 응원하기 위해 함께 했으며, 국민의힘 소속 서산시·태안군 지방의원 일동이 참석했다.태안 집중유세의 찬조연설원으로는 김세호 전 태안군수·박선의 태안군의원·윤희신 충남도의원·정광섭 충남도의원·김진권 태안군의
충남도 농업기술원은 1일 종자관리소에서 전문적으로 생산한 우량벼 종자 3품종 95톤을 추가 공급한다고 밝혔다.이번에 추가 공급하는 품종은 예찬벼 30톤·청호벼 5톤·보람찰벼 60톤이며, 신청은 오는 10일까지 각 시군농업기술센터 식량작물팀으로 하면 되고, 중만생종인 예찬벼는 충남이남 평야지와 남서해안 지역에서 재배하기 알맞은 품종으로 단백질 함량은 5.6%로 낮고 식미검정에서 밥맛이 매우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예찬벼의 키는 66cm 정도로 키가 작아 도복에 강하고 생산성이 좋으며, 도열병·흰잎마름병·줄무늬 잎마름병에 강하고 10a당
대전 동구의회가 제8대 후반기 의장단 후보 등록을 마감한 가운데, 전반기 의장을 역임한 이나영(4선, 라선거구) 의장이 후반기 의장도 거머쥘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동구의회는 13일 제8대 후반기 의장에 더불어민주당 이나영(4선, 라선거구) 의원이 단독후보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부의장에는 미래통합당 박영순(3선, 라선거구) 의원이 역시 단독후보로 등록했다.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은 지난 12일 의원총회를 통해 이 의원이 후반기 의장을 연임하는 것으로 내부 당론을 정했다. 이 의장에 맞서 후반기 의장에 도전했던 박민자(재선, 나선거구)
하나금융그룹(회장 김정태)이 대전시티즌의 투자기업으로 나섰다. 허태정 대전시장과 하나금융그룹 함영주 부회장은 지난 5일 대전시청 대회의실에서 대전시티즌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명문 구단으로의 육성에 뜻을 같이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하지만 일각에서는 하나금융그룹이 대전시티즌의 투자기업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 대전시가 하나금융그룹에 대전시티즌을 매각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전시와 하나금융그룹이 투자협약 체결이라는 축포를 쏘아올린 지 이틀 만에 바른미래당 대전시당(위원장 신용현)의 김태영 대변인은 ‘대전시티즌 매각, 어이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박병석(5선, 대전 서갑) 의원은 7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을 만나 대전시티즌이 대전시민의 사랑을 받는 명품구단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박 의원은 “그동안 하나금융그룹은 한국 축구의 오랜 동반자로서 축구 발전과 저변확대에 기여해왔다”면서 “이번 인수를 계기로 대전 축구발전, 더 나아가 한국 축구의 발전은 물론 공익적 역할도 강화했다”며 “하나금융의 전폭적인 투자를 앞세워 대전 시티즌이 1부 리그로 승격되고, 국내 최고 명문구단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박 의원
천안동남경찰서(서장 김광남, 이하 동남서)가 충남 최고의 ‘수사민원 상담센터’로 부상하고 있다.동남서는 27일 지난 8월 22일 수사민원상담 변호사 19명을 위촉한 데 이어 23일에도 변호사 14명을 추가 위촉하는 위촉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법률상담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국민중심 수사서비스 제공을 위해 마련된 ‘수사민원 상담센터’는 추가 위촉을 통한 33명의 변호사 인력풀 확충에 따라 주 3회(월·수·금) 실시하던 변호사 무료상담서비스를 주 5회(월~금) 제공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민원인이 쉽고 부담 없이 민·형사 등 다양한 법률
청와대 까부수러 왔수다, 1·21사태의 재구성 Ⅰ 응징보복작전 때문에?“아니, 그때 장군님께서 대위 시절 세 번씩이나 북한에 넘어가 응징보복작전을 했기 때문에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거 아니었습니까?”2014년 3월, 내가 출연했던 종편의 한 앵커가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내가 세 번의 대북 응징보복작전에 나선 때가 1967년 9월과 10월이었고,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것이 3개월 후인 1968년 1월 21일이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으나, 북괴의 1·21 청와대습격은 물론 이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