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의 Issue Brief] 윤미향의 고백, 용서와 화해를 다시 생각해 본다
[서준원 박사의 Issue Brief] 윤미향의 고백, 용서와 화해를 다시 생각해 본다
  • 서준원 박사
  • 승인 2020.07.08 12: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한동안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의원회관 530호 고백1”형태로 최근 심경을 선보였다. 윤 의원은 “3시간 고심 끝에” 국회로 입성한 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장본인이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정의연 사태와 관련하여 자신의 심경을 '의원회관 530호 고백 1‘ 제하로 정리했다. 언론의 집요한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것만 보면, 30년 동안 쌓아왔던 NGO(시민사회단체)활동이 허망할 정도다. 이제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처지가 달라졌고, 할 말도 많기에 사태 진전을 지켜보면서 고백시리즈가 쏟아질 것이다. 

정의연 마포쉼터 소장이 갑자기 생을 마감하면서 사태의 여진이 커졌다. 아울러 검찰수사와 정의연 회계 관련 등 각종 법정소송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작업환경 속에서 의정활동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안타깝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아야 하는지, 아니면 진실 속에서 거짓을 찾아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정의연 기부금 회계 관련 등 윤 의원 주변 사안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기 힘든 점도 발견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윤 의원이 고백시리즈에서 상세하게 다뤄주길 기대한다. 국민도 법정에서 보다 윤 의원에게 직접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윤 의원은 고백 1에서 "세계 여러 곳에 김복동평화센터를 세우는 일을 도와 세계 미래세대들이 김복동의 희망을 갖게 하고 싶었다"..."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넘어서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이 꿈은 제 삶에서 놓을 수가 없다"고 자신의 꿈을 적고 있다. 이런 꿈이라면 정의연에 남아서 국회의 협조를 구하면서 국제적 연대를 펼치는 게 차라리 더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NGO와 판이한 곳이 국회다. 의원직은 정치 행위가 수반되고 국제적 연대 역시 국익 제고의 이해관계 충돌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조국사태-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윤미향 사태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터져 나오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진영논리에 함몰되었다. 이들 모두가 정의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참 흥미롭다. 정의를 방패 삼아 피아를 나눠 선과 악으로 구분하려는 억지스러운 분위기다. 이런 정황은 원시적 정의의 틀에서 못 벗어난 경박한 행위로서 사회발전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이성적 사고와 판단 그리고 합리성을 지닌 변별력과 특히 생각 할 수 있는 저력과 능력이 절실하다. 

윤 의원의 밝힌 자신의 꿈처럼,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생각 할 수 있는 능력 여부가 더 중요하다. 정의는 적과 동지 개념을 떠나 모든 인간에게 공정하고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내가 하는 일이 정의롭다는 신념이 있다면, 큰 틀에서 인류애와 휴머니즘을 접목해야 한다. 특히 NGO 활동은 그런 신념과 철학에 기반을 두어야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유대인 학살 관련 재판(나치 전범 Adolf Eichmann)을 지켜본 유대계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지적이 떠오른다.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닌 그저 평범한 자로서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명령에 따랐을 뿐이지만, 생각하는 대로 행했지만 정작에 생각할 줄을 모르는 자로 규정했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용서는 처벌을 전제로 이뤄져야 하고, 결국은  용서가 화해를 불러낼 것이라는 아렌트의 판단에 수긍이 간다.

아이히만을 법정에 세운다고 나치 역사가 사라질까. 역사를 불러내야지 아이히만을 불러내서 대중이 광분한다고 나치만행 역사가 지워질까. 역사는 역사로서 다퉈야 진실이 재정립된다. 그래서 역사는 끊임없이 다시 쓰여야 하는 숙명이지만, 결국은 인간과 세계를 향한 사랑이어야 한다. 그래서 용서와 화해가 중요하다.    

일본은 독일과 달리, 전후 처리에서 도덕적-인류애적 관점이 매우 취약하다. 정치체제와 정치 행위 역시 언필칭 천황숭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위안부 등 우리 민족에게 가해진 여타 전후처리가 턱없이 미흡하다. 일본은 우리에겐 참 불편한 상대로서, 지난 역사 속에서도 잠재적 적(potentional enemy)이자 우호적 관계대상이었다. 그래서 한일관계는 더욱 화해와 용서의 기반구축과 합리적 실천이 중요하다. 

'성노예'라는 끔찍한 표현과 함께 세계 곳곳에 소녀상을 세우는 프로젝트와 기부금 모금 등이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해하는 것과 용서와 화해는 다르다. 윤미향 사태를 지켜보면서 대중적 광분도 문제지만, '정의를 내세운 증오를 위한 기억'인지 참 안타깝다. 이러다간 용서와 화해는 물론 미래는 늘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정의연과 윤 의원은 그간에 펼쳐왔던 운동의 가치확산 및 문제 해결방식에 대한 깊은 고심이 더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 외부기고자의 칼럼은 본보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