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사업에 불과한 정책들…그린벨트 풀어줄테니 투자하라는 식

기존 산업단지 정책은 '양극화'…비수도권 미분양 '심각'

알맹이 없는 수익성 보장은 혈세 지출로 '귀결'

무리한 토목사업 강행보단 첨단산업 생태계 조성이 '우선'

대전산업단지 조감도 / 뉴스티앤티DB
대전산업단지 조감도 / 뉴스티앤티DB

민선8기 대전시 국가산단 조성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계획'의 핵심은 경기도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이다. 이에 따라 한정된 자본이 수도권으로 집중, 상대적으로 민자 유치 경쟁력이 낮은 지방은 도태된다.

때문에 수익성 담보 등 세부적인 전략 없이 대규모 민자 유치에만 의존하는 토목사업은 불필요한 과제를 불러올 수 있다.

앞서 이장우 대전시장은 55조 원이 넘는 '5대 분야 87개 공약사업'을 밝혔다. 이 사업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32조 원가량이 국가산단 조성에 투입된다. 문제는 해당 국가산단 조성에 들어가는 사업비 32조 원이 모두 민자 유치 계획이라는 것.

지난 2021년 기준 비수도권 도시첨단산단의 미분양률이 20%에 달하는 가운데 일자리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해 기업이 원하는 데로 규제를 완화하고 알맹이 없는 토목사업을 감행한다면 향후 부동산 투기, 일자리 양극화, 취약 일자리 방치 등 문제들을 당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6일 대전시 사회혁신센터에서 '대전 일류경제도시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주제로 발제했다.

 

대전시 민선8기 공약실천 계획 중 1000억 원 이상 사업 / 대전시 홈페이지
대전시 민선8기 공약실천 계획 중 1000억 원 이상 사업 / 대전시 홈페이지

토목사업에 불과한 정책들…그린벨트 풀어줄테니 투자하라는 식

대전시가 추진하는 ▲나노반도체 산업단지(100만평, 10조) ▲충청권 국가산업단지(100만평, 10조) ▲대기업 유치 위한 산업단지(100만평, 6조) ▲제2 대덕연구단지(200만평 4조) ▲글로벌 플랫폼 기업 유치를 위한 산업단지(30만평, 2조) 등 5개 산단 조성사업에 투입되는 자본은 모두 100% 민자다.

단순히 땅을 만들어 주고 규제를 완화해 줄 테니 들어와라는 식은 기업들의 이목을 끌 수 없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민자를 동원해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은 보수정부가 늘 추진하던 정책으로 박근혜 정부도 지난 2015년 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건설 사업을 발표했지만 건설사들은 시큰둥했다.

당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무리 땅을 싸게 주고 저렴한 이자로 대출을 해준다고 해도 분양과 입주가 안되면 손실이 나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 해외 건설의 손실과 오랜 주택경기 침체로 재무 상태가 악화돼 더 이상 손실을 감수할 여력이 없다"며 사업 참여를 망설였다.

 

지난해 3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지난해 3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대통령실

기존 산업단지 정책은 양극화…비수도권은 미분양 '심각'

정부는 지난해 3월 15일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전을 포함한 전국 15개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를 선정하고 국토를 균형적인 첨단산업기지로 조성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정책의 핵심은 경기도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이다.

정부는 대규모 신규 민간투자를 통해 오는 2047년까지 622조 원 규모로 단일 단지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새로운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경기도에 조성할 계획이다.

신규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기흥, 화성, 평택, 이천 등 기존 생산단지와 인근 기업, 팰리스 밸리(판교)를 연계한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완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의 투자가 경기도 등 수도권에 집중,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은 대전을 포함한 지방의 국가산단의 수요는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입지 규제 완화 이외에 중앙정부가 약속한 뚜렷한 산업발전 정책은 전무한 만큼, 기업 유치에만 급급해 우후죽순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것은 산업 발전보다 부동산 투기 등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지난 2021년 기준 전국 17개 시도에 분포해 있는 33개 도시첨단 산단의 미분양률이 2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강서구와 경기 평택은 각각 '마곡첨단산업단지', '고덕국제화계획지구 첨단산업단지' 조성으로 근로소득이 크게 증가하고 주택, 상가 등 부동산 가치가 크게 오른 반면, 지방은 미분양 현상이 지속돼 수도권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6일 대전시 사회혁신센터에서 '시민·노동자의 관점으로 본 대전시 물류산업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뉴스티앤티
지난 6일 대전시 사회혁신센터에서 '시민·노동자의 관점으로 본 대전시 물류산업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뉴스티앤티

알맹이 없는 수익성 보장은 혈세 지출로 귀결…인재 유출 방지 위한 구체적 전략 필요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극심한 인력난에 국내 산업의 핵심 터전인 국가산업단지의 신규 입주 기업이 1년 새 30% 넘게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장을 유지할 최소한의 인력마저 구하기 힘들어지자 공장 신설이나 이전·확장 등을 포기하는 기업인들이 늘어난 것이다.

박철우 한국공학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기업이 성장하려면 단순 생산 인력 외에도 산업단지 내 설계나 연구 인력이 적극 유입돼야 하는데 이런 고급 인력도 갈수록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한동안 전국에 활발하게 지어졌던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하려는 기업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인난을 견디지 못한 기업인들은 공장을 쪼개 임대를 하거나 아예 통매각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게 현주소"라고 덧붙였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가 '대전 일류경제도시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 뉴스티앤티
정세은 충남대 교수가 '대전 일류경제도시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 뉴스티앤티

무리한 토목사업 강행보단 첨단산업 생태계 조성이 '우선'

지역에서 첨단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단순히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그에 걸맞은 산업 생태계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

대전시의 방위사업청, SK 온, 머크사 등 투자유치는 호재임이 분명하지만 이들이 지역 첨단산업의 중심이 되도록 생태계가 조성되는가가 관건이다.

외국계 기업의 국부 유출 논란도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고배당, 법인세 등 고전적 수법에 이어 최근에는 제도적 혜택만 취하고 철수한다는 비판까지 가세한 상황이다.

몇 건의 투자 유치가 대전을 명실상부한 첨단산업의 메카로 만들어주고 고부가 가치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세은 교수는 "대전시 산업정책은 대부분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토목공사에 불과하다"며 "실제로 산업 그 자체를 어떻게 일으키겠다는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전략은 부재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몇 건의 투자유치 성과가 있었지만 이것으로 첨단산업 생태계가 자동적으로 형성된다고도 볼 수 없다"며 "자칫 투자 유치한 기업들이 혜택만 누리고 떠나갈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산업 정책이 수도권의 첨단산업 발전에는 기여했지만 그와 동시에 비수도권 산업의 공동화를 가져왔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도 결국에는 국내 모든 자원을 빨아들일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장우 시장은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만 하면 쉽게 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전이 그나마 경쟁력을 갖춘 산업에 집중해서 세밀하고 현실성 있는 산업 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산업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대전시민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자리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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