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철 부산취재본부장

만성 신부전증으로 오랫동안 투병한 친구가 있다. 일주일에 사흘은 병원을 오가야 했던 그에게 남은 희망은 장기이식 뿐이었다. 5년을 기다린 끝에 다행히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기운을 차린 뒤 친구들을 찾았다. 남이섬이 있는 춘천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친구들은 거리가 멀고 가성비가 없다면서 춘천행을 말렸다.

가격과 성능의 비율, 가성비는 이미 세상의 기준이 된 지 오래다. 효율을 떠받드는 사회에서 가성비라는 견고한 보호막을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들을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부산진구 부암동의 요양병원 10층 병동에 입원 중인 김영자 할머니. 팔순을 앞둔 무거운 몸이지만 매일 아침 피아노가 있는 7층 복도로 내려온다. 할머니는 피아노와 오르간을 전공하고 연주자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그녀에게 몇 해 전 위기가 찾아왔다. 뇌졸중을 앓게 된 것이다. 오른쪽 손발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병원에서 꾸준히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도 할머니는 음악에 대한 미련을 거두고 싶지 않았다. 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건반 뚜껑을 열고 초심자처럼 왼손으로 한 음 한 음 건반을 두드린다. 옛 시절을 생각하면 답답할 만도 한데 그녀는 만족한다고 했다. "왼손으로 멜로디 연주를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지요."

요양병원에서 멀지 않은 당감동에 '동화랑 놀자'라는 이름의 사설 어린이도서관이 있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허운영 관장이 한 달에 이백만 원 남짓 적자를 보면서 운영하는 곳이다. 시중에 책은 넘쳐나지만 좋은 책을 고르기는 어렵다. 허 관장은 자녀에게 읽어주던 좋은 책들을 모아 도서관을 열었고, 스무 해가 넘도록 식지 않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어린이들은 시화를 배우고 그림책을 읽으면서 독서와 공동체의 순기능을 익히고 있다. 초로의 허 관장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도서관을 지키는 이유다.

일상에서 부유하는 가성비의 유혹은 여전히 강렬하다. 요즘에는 가성비로도 모자라 가심비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를 뜻하는 말이다. 성능도 좋아야 하고 마음에도 들어야 하니 이래저래 쉽지 않은 형국이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났다. 수술 당시보다 훨씬 단단해진 몸집에 혈색도 좋아 보였다. 친구는 춘천에 정착한 딸을 만날 때마다 주변 명소도 둘러본다면서 활짝 웃었다. 이제 그에게 가성비 운운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 맞는 장사잖소'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으니 따져보면 그럴 만도 하다. 건강을 되찾은 친구는 자신에게 신장을 나눠주고 세상을 떠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기증자를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가성비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우리네 삶의 가성비는 어느 정도일까.

 

배종철 / 부산취재본부장
배종철 / 부산취재본부장

전 진주MBC 프로듀서
전 부산방송 KNN 프로듀서
문예운동 수필 천료(2005)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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