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태 박사 / 뉴스티앤티

종전에는 가정문제였던 영유아 보육이 최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 사회 전체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보육정책은 아동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부모의 일과 가정 양립을 지원하여 영유아 및 여성·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회적 인프라라는 점에서 강조되는 국가의 주요정책이다. 또한 미래 국가 인적자원 육성 및 여성인적자원의 적극적 활용으로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자 보육정책의 발전이 강조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자와 더불어 영유아를 건전하게 보육할 책임을 지며, 이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영유아보육법 제4조)

올 초 한국 사회 최대 이슈는 어린이집 아동 폭행으로 촉발된 보육 문제다.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여아 얼굴을 후려치는 장면의 동영상을 본 또래 아이를 둔 부모들이 식겁하여 들고 일어났다.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 이후 ‘보육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개입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현재는 정부가 보육 서비스를 민간 어린이집에 일임한 채 비용 지원에만 집중해, 막상 가장 중요한 문제인 보육의 질 관리엔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의 취지인 공공 보육을 구현해낼 수 있는 ‘최선’이기도 하다.

0~5살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양육수당 또는 보육료를 지원하는 무상보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동학대, 부실한 먹거리, 과중한 특별활동비 등 부모들의 불안과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보육서비스를 민간 어린이집에 전적으로 의지하다 보니, 교사 인건비와 보육비용을 짜내 돈벌이에 나서는 ‘보육업자’들만 양산될 뿐 서비스의 질은 계속 낮아지는 모양새다. 하루 12시간 근무에 100만원대 초반의 임금을 받는 보육교사들의 열악한 형편이 아동학대 등 보육서비스 질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데도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정부는 어린이집에도 시장 방식을 도입하면 서비스가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만 있을 뿐,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직접 생산·제공하거나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을 정책 목표로 두지 않는다.

더욱이 지난해 6월에는 현재 정부가 부모를 통해 시설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바우처’(아이사랑카드) 제도는 정부의 보조금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서, 관리감독의 근거마저 실종된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보육교사의 처우 등 운영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보다는 민간 어린이집 지원과 양육수당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공공형 어린이집 지원 예산은 2011년 80억원에서 2014년 385억원으로 5배 가까이 늘었고, 부모에게 직접 지원하는 양육수당은 2009년 324억원에서 2014년에는 1조2153억원으로 38.6배 늘었다. 아이에 대한 돌봄 책임을 정부가 함께 나누지 않고 가족과 민간 시설로 넘기면서, 보육을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로 전환시켰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비용지원 중심의 정책을 넘어 국공립 어린이집을 30%대로 확충하는 것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국공립 비중을 30%로 늘릴 경우, 수용 아동이 전체 아동의 절반 정도에 이르게 되어 민간의 시장지배력을 축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공립 어린이집은 지방자치단체가 교사들의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어, 초과보육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호봉제와 수당으로 인한 비교적 높은 보수, 고용 안정 등으로 만족도가 높다. 교사들의 안정된 근무환경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보육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경우 국공립 시설이 전체 보육시설의 60%를 넘어서고, 종사자는 모두 공무원으로 채워져 있다. 질 좋은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뿐더러 보육서비스의 질 역시 매우 높다.

부모들이 절실히 국공립 시설을 원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3년 보육통계를 보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은 506개 증가한데 반해 민간 어린이집은 19배 가까운 9552개 증가했다. 지금 같은 보육 환경에서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CC(폐쇄회로)TV 설치 의무화, 자격기준 강화 등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지금의 보육 환경을 바꿀 수 없으며 보육교사들 노동의 질을 높이지 않고서는 단기적인 처방에 그칠 것이다.

민간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민간에 보육 시스템을 맡기는 비율이 낮은 편이다. 영국은 종일제 보육시설의 경우 정부가 11%, 비영리 자원기관이 22%를 담당한다. 취약 아동 중심의 아동센터는 공공이 68%를 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은 공립 8%, 빈민구제사업인 헤드 스타트 9% 등 정부를 통한 운영 비율은 낮으나 종교단체나 비영리법인 등이 운영하는 비율이 65%에 이른다. 영리 시설은 전체 35%이다. 우리나라가 저출산 극복 모델로 주목하고 있는 프랑스 유아학교는 모두 공립학교이다. 영아가 다니는 집단보육시설의 64%는 지방정부, 29%는 부모협동 등의 단체가 운영한다.

보육사업은 빈민구제나 기·미아와 같은 요보호아동에 대한 보호의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족의 여타 기능과 마찬가지로 아동양육·교육의 기능은 점차 전문화·분업화되어 빈민층에서 일반가정에까지 보육대상은 확대되었고, 보육의 개념도 신체적 보호라는 극히 협소한 것에서 교육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넓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단순한 보호와 교육의 개념적 결합을 뛰어넘어 아동의 건전한 보호와 발달을 위한 제반 서비스활동으로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의 보육서비스를 요구한다. 보육시설은 건전하고 바람직한 사회적 양육을 위해 가정과 지역, 사회를 연결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보육시설의 재정안정, 보육교사의 처우개선, 지역적으로 고른 시설의 배치, 보육서비스의 질 보장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영·유아보육을 기본으로 하는 국공립시설의 확충은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공립시설은 보육료 수입에 재정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민간시설과 달리 안정된 재정을 확보하며, 국가의 관리와 감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 또한 안정되어 있고 기본적인 수준 이상의 서비스가 보장된다. 특히 고비용의 특수보육(예컨대 장애아보육, 연장보육 등)을 시범적으로 실시할 수 있어 보육서비스의 다양성에도 일조하게 된다. 국공립시설의 확충은 공보육과 보다 평준화된 보육의 질을 추구할 수 있다는 면에서 필요하다.

보육교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도 보육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전국 어린이집 307개소에 근무하는 보육교사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9.9시간이고 월평균 급여는 144만원 수준이다. 어린이집 중 영양사와 취사원을 각각 별도로 고용한 비율도 10.7%, 77.5%로 조사됐다. 10시간 가까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급식관리까지 맡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인천 어린이집 사태를 개인의 문제로 판단하면 단기적인 개선에 그칠 수 있으며 교사들 처우를 개선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공공성을 강화해야 해결책에 접근할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보육서비스를 받기를 원한다. 현재 반별 정원은 만 2세 아동의 경우 한 명의 선생님이 7명의 아이를 돌보고, 만 3세가 되면 15명, 만 4세 이상이 되면 그 수는 20명으로 늘어난다. 1살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은 선생님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급격히 줄어든다. 게다가 아동 1인당 시설면적은 2.64제곱미터 이상으로 되어있어, 한창을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에게 단 한 평의 공간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아동 당 교사수와 공간면적을 상향 조정하는 것도 보육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직장보육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직장보육은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아주 바람직한 정책의 하나이다. 물론 공보육 시스템을 그물망처럼 촘촘히 깔아주면 일하는 여성의 보육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지만 현재의 재정형편으로 단기간에 개선은 어려운 실정이므로 사업주, 국가가 일정부분 지원하는 직장보육시설 설치․운영사업은 공보육의 대안으로 일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보육아동을 갖고 있는 근로자에게도 바람직한 제도라도 생각되며, 자녀양육 시기에 있는 기혼여성이 육아로 인하여 노동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출산․육아지원 정책의 수단이다. 또한 직장보육사업은 취업모의 일과 가정을 연결, 통합함으로써 근로자의 만족감, 자기발전, 사업체 기여 등을 가능하게 하고, 사업주 측면에서는 기혼여성의 취업을 계속 유지함으로서 경력단절로 인한 생산성 저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등 긍정적 측면이 많다.

여성의 고용기회 확대와 취업여건 개선을 위하여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사업주에게 직장보육시설을 설치․운영토록 하고 있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수유․탁아 등 육아에 필요한 보육시설을 설치하여야 한다.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여야 할 사업주의 범위 등 직장보육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하여는 영유아보육법에 의한다.”(남녀고용평등법 제21조) 또한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는데 기업의 재정적 어려움을 감안하여 정부에서는 고용보험으로 직장보육시설 설치․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물론 사업장에 따라서는 보육대상 아동수가 부족하다 던지, 사업장의 형편상 직장보육시설 설치에 따른 재정적 부담으로 설치가 곤란하다 던지, 장소가 보육시설을 설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가 있지만 아직도 사업주들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는 데는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다고 보여 진다. 저출산 대책의 승패 역시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경력단절이나 차별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여건과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 달려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선진국과 같이 여성의 경제활동율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win-win 전략 추진을 통해 여성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건강한 출산과 육아 문제는 국가적으로 다음 세대의 구성원을 만드는 중요한 일이므로 국가가 법을 통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게 직장보육시설 설치의무를 부여하고, 정부에서도 직장보육사업이 활성화되기 위하여 다방면으로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사업주도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하여 생산 가능 인구 증가율이 둔화되는 상황에서는 여성인력활용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직장보육사업은 여성의 지속적 경제활동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할 사업이다. 따라서 국가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원방안을 모색하겠지만, 사업주도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보육은 여성의 고유책임을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조금 떠맡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사회의 적극적인 투자로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우선시하는 내용으로 인식되고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육 지원체계의 일선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보육교사들의 인식과 역할 역시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이다. 보육의 대상은 아동이나, 보육의 필요성은 국가 성원 모두에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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