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원장 / 뉴스티앤티

“죽겠다!” 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 자주 씁니다. 예뻐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좋아 죽겠다. 등등 많이 있죠. 똑같은 의미로 “미치겠다! 라고도 많이 씁니다.

우리나라는 과장된 표현을 (그것도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는) 많이 쓰는 나라임이 분명 합니다.

원인으로 생각해보면 우선은 한민족의 역사는 한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많은 외세 침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지정학적인 문제와 효와 도리를 강조한 정신적인 유교사상 역시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많이 참아야만 했고, 나의 솔직한 감정표현보다는 숨기고 참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교육받고 살아왔습니다.

“화병”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인정받은 Cultural Bound Syndrome (그 지역에만 독특하게 있는 질환)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별로 없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화병이 왜 우리나라만 많을까요? 가장 중요한 인자중의 하나는 심리적 억압에 있다고 보입니다. 많이 참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는 만큼 지켜야 할 것이 참으로 알게 모르게 많습니다. “당연히 여자라면..” “당연히 부하직원이라면.” “며느리라면..” 등등 눈에 보이지 않는 엄격한 규범이 너무 많이 이 사회에 존재하고 이것이 정당화 되면서 억지로, 마지못해, 하기 싫어도 좋은 척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치매에 걸리신 시부모님을 모시게 된 며느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셔야 할지 아니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지를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주요 결정 요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외부 요인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남편이 원하니까, 다른 형제는 모실 수 있는 입장이 안 되니까, 모시고 고생을 하면 돌아가신 후 부모 집이 내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등등 의 원인으로 자기 자신은 고려하지 않고 모시게 됩니다. 여기에서부터 이 며느리의 스트레스는 시작이 됩니다. 욕을 얻어먹기 싫어 어쩔 수 없었던 분은 더욱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모시는 사람이 욕을 먹게 되어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지요.

외래에서 보면 정확한 통계는 내보지는 못하였지만, 자신이 정말로 원하여 모시는 며느리나 딸에 비해 우울증과 화병에 걸리는 기간도 짧고 확률도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즉 자신이 원하여 의지적으로 모시게 되는 분은 생활 자체를 명랑하게 이끌고 가는 데 반해서 원치 않는데 할 수 없이 모시는 분들의 생활은 부정적이고 어두워진다는데 에 문제가 있습니다.

힘들게 모시고 있는데 가끔 오는 시누이가 목욕을 안 시켜 냄새가 너무 나네. 등등 잔소리까지 하면 참지 못할 정도의 분노가 폭발하고 급기야 집안이 균열되는 지경까지 이르는 것을 개인적으로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안 된다고 생각이 들 때 “아닙니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입니다. 못합니다! 라고 용감하게 이야기를 하며 차선책을 찾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기분 나쁠까봐,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 할까봐, 자기 마음을 숨기고 참기만 한다면 언젠가부터 예스맨이 되어버리고 마음 안에는 화가 쌓일 수 있어야 하니까요.

처음에 조금 문제가 있더라도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할 때 우리나라의 화병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정신적인 건강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