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재천 변호사(신한금융투자) / 뉴스티앤티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의 이익을 직접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발생시켰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현대 사회는 구성원에게 특정한 임무가 부여되는 고용이나 위임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임무 위배가 요건인 배임죄는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발생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용이나 위임관계 없이 자신의 일만 하고 싶은 꿈을 꾸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사무만을 처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배임죄의 본질은 신임관계의 침해다. 쉬운 말로 “배신”이다. 배신은 당사자 사이의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이므로 기본적으로 당사자 사이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따라서 배신을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적 구제수단 차원을 넘어 범죄로 다루는 것은 사적 자치의 원칙 위배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배임죄를 폐지하여야 한다거나 배임죄의 성립요건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특히 기업경영과 관련하여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영진의 경영판단이 기업의 손실로 이어진 경우 경영진을 배임죄로 처벌할 것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아래에서는 배임죄의 구성요건과 경영판단에 따른 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배임죄의 구성요건

배임죄는 형사범죄 중 가장 불명확한 용어로 규정되어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다. 따라서 배임죄는 재판과정에서 범죄 성립여부를 치열하게 다투는 경우가 많고, 무죄가 선고되는 비율도 다른 범죄에 비해 높다.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얼마나 불명확한지 살펴보자. 배임죄의 성립 요건은 다음과 같다.

ⅰ)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ⅱ)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ⅲ)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 발행

먼저 타인의 사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지만, 그 근거는 명시적인 법령, 계약에 제한되지 않는다. 관습이나 사무관리에 의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고 있다 할지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하여 신임관계가 인정되면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 또한 배임죄는 기본적으로 재산범죄이므로 배임죄의 요건이 되는 타인의 사무는 본인의 재산보호가 신임관계의 전형적, 본질적 내용이 되는 주된 의무이어야 하며, 단순히 부수적 의무가 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단순히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만 수령한 상태에서 매도인이 매매목적물인 부동산을 제3자에게 이중으로 매도한 행위는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으나, 매도인이 중도금 또는 잔금을 수령한 이후 매매목적물인 부동산을 제 3자에게 이중으로 매도하면 배임죄가 성립한다. 매매계약과 계약금 수령만으로는 매도인에게 매수인의 소유권 취득에 협력하여야 할 신의칙상 신임관계가 인정되지 않지만, 중도금 또는 잔금을 수령한 이후에는 매도인에게 매수인의 소유권 취득에 협력하여야 할 신의칙상 신임관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 대표이사의 신주발행 업무가 주주의 사무인지 여부     

신주발행은 주식회사의 자본조달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서, 신주발행과 관련한 대표이사의 업무는 회사의 사무일 뿐이므로 신주발행 과정에서 대표이사가 납입된 주금을 회사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관리∙보관하는 업무 역시 회사의 사무로서 대표이사의 선관주의의무 내지 충실의무의 대상이다.

신주발행에서 대표이사가 일반 주주들에 대하여 그들의 신주인수권과 기존 주식의 가치를 보존하는 임무를 대행한다거나 주주의 재산보전 행위에 협력하는 자로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는 볼 수 없다.

※ 결국 신주발행과 관련하여 대표이사는 회사의 손해에 배임죄의 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나, 주주의 손해에 배임죄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임무를 위배하였는지 여부는 사무의 성질 및 내용과 행위 당시의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임무 위배행위는 반드시 권한남용, 법률상의 의무위반에 해당할 필요가 없으며, 작위∙부작위를 불문한다. 금융기관 임직원이 회수가능성이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담보 없이 대출을 해 준 경우가 전형적인 임무 위배행위에 해당한다. 회사의 경영진이 투기적인 모험거래를 한 경우에는 그러한 거래가 통상적인 거래관행을 벗어난 것인지 여부에 따라 임무 위배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배임죄는 임무 위배행위로 행위자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하고 본인에게는 손해가 발생하여야 하므로 행위자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하더라도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본인의 손해는 행위자 또는 제3자가 취한 재산상 이득 때문에 발생하여야 하며, 기존재산의 감소인 적극적 손해는 물론 당연히 증가할 재산이 증가하지 못한 소극적 손해를 포함한다.

회사의 주주가 1인인 1인회사에서 주주 겸 경영자가 임무에 위배하여 회사 재산을 임의로 소비한 경우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것으로 보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논란이 있었다. 법원은 주주와 회사는 법인격이 서로 다르므로 1인회사의 주주 겸 경영자의 임무 위배행위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경영자에게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배임죄는 고의범이므로 타인의 사무처리자로서 배임행위를 하여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하고,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행위자가 이득을 취할 목적이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까지는 요구되지 않는다.

□ 경영판단의 원칙

기업경영자의 임무 위배행위는 사적인 기업경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이해당사자인 주주의 감독에 맡겨야 하고, 공권력인 형사법이 개입하는 것은 사적 자치의 원리에 위배된다는 논리로 기업경영 관련 업무상배임죄 성립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바로 경영판단의 원칙 도입론이다.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은 회사의 경영자가 자신의 권한 내에서 합리적인 근거에 따라 회사에 최상의 이익이 된다고 믿고 성실하게 의사결정을 하였다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였다 할지라도 경영진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이론이다. 사실 기업경영자는 경영판단의 결과에 다양한 책임을 부담한다. 큰 실책은 사직, 면직으로, 그 외 실책은 견책, 감봉, 사내외의 비난 등. 결국 경영판단의 원칙 도입 논의에서 면제 여부가 문제되는 책임은 회사 내부적인 책임이 아닌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으로 대표되는 “법적 책임”에 한정된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여야 한다. 만일 경영진의 경영판단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경영진은 극히 보수적으로만 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회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실제 사내∙외로부터 ‘미친 짓’으로 평가 받은 경영상의 결정이 회사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미국에서 판례 및 입법을 통해 형성된 이론으로 미국에서는 경영진의 민사책임을 제한하는 원리로 사용되어 왔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경영진의 민사책임은 물론 형사책임(업무상배임죄) 제한원리로도 활용되고 있다.

우리 법원은 경영상의 판단을 이유로 회사 경영진에게 업무상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할지 여부는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영판단의 요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i) 경영진의 행위가 법령에 위반되지 않아야 한다.

ii) 경영진이 합리적으로 이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조사하고 검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iii) ⅱ) 절차를 근거로 회사의 최대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신뢰하고 신의성실을 다하여 경영상의 판단을 내렸어야 한다.

iv) 경영상의 판단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은 것으로서 통상의 경영진을 기준으로 할 때 합리적으로 선택 가능한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다만, 우리 법원이 업무상배임죄 성립 판단에 미국에서 발전된 경영판단의 원칙을 받아들였는지 여부에 대해 우리나라 형법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고, 우리 법원이 업무상배임죄 판단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형법학자들도 경영판단의 원칙이 업무상배임죄의 성립을 어떠한 논리로 부정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한다. 이는 경영판단의 원칙이 형법이나 상법에서 명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논란이다. 입법을 통해 해결하여야 할 과제다.

◆ 계열회사 지원에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 여부   

회사의 경영상 부담에도 불구하고 관계회사의 부도 등을 방지하는 것이 회사의 신뢰도를 유지하고 회사의 영업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일반적∙추상적인 기대 하에 일방적으로 관계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게 하여 회사에 손해를 입게 한 이사의 행위는 허용되는 경영판단의 재량범위 내에 있지 않다(업무상배임죄 성립).

◆ 경영권 프리미엄이 가산된 주식을 인수한 경우 경영판단의 원칙적용여부  

경영권 행사 주식을 거래할 때 지급되는 경영권 프리미엄은 당시 주식 시가의 일정한 비율이라는 단순한 수식으로 구할 수는 없고, 기업의 현재 및 미래가치, 경영권 획득으로 발생하는 파급효과,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주식을 공개시장에서 매수할 경우 필요한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대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다른 회사 주식을 회사에 매도할 때 주식 시가에 경영권프리미엄을 가산하여 매매금액을 정한 경우에는 그 매매금액이 시가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배임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 배임죄 처벌

형법상 배임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였을 것을 요건으로 하는 업무상배임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한편,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배임 또는 업무상 배임으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한다.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이득액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을 징역형에 병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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