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전 법무연수원장, 전 대전지·고검장) / 뉴스티앤티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2017년의 달력이 한 장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방이나 사무실에 달력을 걸어 놓은 곳이 많지 않지만 얼마 전만 해도 한 달에 한 장씩 뜯어내는 달력을 모두 걸어두었습니다. 그런 시절 11월 달력을 뜯어낼 때면 모두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래 올해도 이렇게 가는구나.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세월이 빨리도 가네. 금년에 내가 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렇게 한 해 한 해 지나다 보면 나이 들고 언젠가 죽게 되겠지. 과연 인생이란 것이 무엇일까? 이렇게 허송세월하며 살아도 되는 것일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12월을 맞으며 저도 이런 상념에 잠겼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이룩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늘 우리를 뒤쫓아 다닙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생각이 옳은 것일까요?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아주 옛날 그리스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는 인구도 적고 땅도 척박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큰 나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리스를 넘보았습니다. 그 국가들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면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고민하였습니다. 이기는 유일한 길은 일당백의 전사를 키우는 일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당백의 전사를 키우고 그들을 숭배하는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들은 그런 전사를 영웅이라 불렀습니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영웅이 간절히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아무도 일당백의 전사가 되려 하지 않으면 모두 죽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현명한 그리스 시민들은 영웅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싸움꾼을 영웅으로 격상시킵니다. 그리고 그들을 숭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 시민은 그들에게 재물과 여자를 주고 영웅이라는 호칭을 주었습니다. 대신 안전을 보장받았지요. 현명한 시민과 용감한 영웅 간에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웅의 핵심은 영웅적인 [삶]이 아니라 영웅적인 [죽음]입니다. 연세대 임철규 명예교수는 [그리스 비극]이라는 책에 이렇게 영웅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리키아의 왕인 사르페돈은 호머가 쓴 [일리아스]에서 그의 친구 글라우코스에게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광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인 죽음, 그 자체를 통해 고귀한 가치를 창출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호머의 영웅시대는 전장에서 명예롭게 죽은 영웅들의 죽음을 불멸의 가치로 인정하던 시대였고, 호머의 영웅들은 전장에서 명예롭게 죽어야만 불멸이라는 신적인 위상을 얻었다."

영웅은 그리스 사람들이 적국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고 호머가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라는 소설을 통해 이 영웅 개념을 살아 숨 쉬는 인물들로 구체화하고 그리스 젊은이들의 가슴에 영웅 신드롬을 불 지른 것입니다.

호머는 그리스 진영의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신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에게 불멸의 명성을 얻을 수는 있지만 일찍 죽는 삶과 평범하지만 오래도록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 중에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묻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불멸의 명성을 얻는 영웅적인 삶을 선택합니다. 그리고는 고향에 있는 아내 데이다메이아와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남겨 두고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젊은 나이에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저는 2017년 4월 17일 월요편지에서 이 이야기를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영웅]이라는 개념이 어떤 경위로 만들어졌는지 깊은 통찰이 없었습니다. 그저 영웅은 일찍 죽는다는 정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웅은 스스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현명한 그리스 시민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었습니다. 역사는 영웅이 시민을 지배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민이 영웅을 이용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것은 안전을 원하는 현명한 시민과 명성을 원하는 용감한 영웅 사이의 절묘한 타협입니다. 누가 더 현명하고 누가 더 옳은지는 없습니다. 그저 개인의 성향인 것이지요. 살다 보면 나서기 좋아하고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지요. 누가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영웅과 시민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조각 작품이 있습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입니다. 네이버 백과에 나온 설명입니다.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칼레는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본토와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칼레를 차지하는 것이 프랑스군과 잉글랜드군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1347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군대는 칼레시를 점령했고, 1년여에 걸쳐 잉글랜드군에 저항했던 칼레의 시민들은 학살당할 위기에 놓였다.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의 지도자급 인사 6명을 자신에게 넘긴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시민 대표 6명은 다른 시민들을 구하기 위하여 교수형을 각오하고 스스로 목에 밧줄을 감고 성문의 열쇠를 가지고 에드워드 앞으로 출두했다. 다행히 에드워드 3세는 임신한 태아에게 해가 될 것을 우려한 왕비 필리파 에노의 간청을 듣고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한다."

로댕은 영웅적인 시민 6명의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웅은 이처럼 시민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이 영웅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위인, 위대한 정치인, 훌륭한 경영자 등등일 것입니다. 어쩌면 [성공자]라는 개념이 [영웅]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부터 위인전을 읽고 자랐고 영웅이 되기를 강요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공에 강박증을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11월 달력을 뜯어내며 갖는 회한은 금년 한해 영웅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일 것입니다. 그 자책은 결국 자신을 어설픈 영웅 놀이를 하게 만들 것이고 그 결과 그 옛날 그리스의 영웅들이 걸어간 길의 초입에서 서성이게 만들 것입니다. 그 길에는 건강도 가족도 행복한 삶도 없습니다. 그저 영웅이라는 명예와 영웅적인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한때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스티브 잡스가 되고 싶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은 모두 일론 머스크가 되고 싶어 할 테지요. 우리는 모두 한 젊은이에게 각자 100만 원 씩을 주면서 유혹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줘. 네 인생을 여기에 불살라라. 너는 우리의 영웅이야. 그러나 너에게 평범한 행복은 줄 수 없어." 그는 우리에게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선물하고 자신을 불살랐습니다. 그는 우리의 영웅 스티브 잡스입니다. 스티브 잡스 뒤에 있는 [영웅적 죽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영웅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평생을 영웅 코스프레를 하고 살았습니다. 영웅이 되고 싶었고 영웅이 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한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저급한 생각과 작별을 고하렵니다. 세상은 용감한 영웅의 것이 아니라 용감한 영웅이라는 개념을 만든 현명한 시민의 것입니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기본입니다.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면서 현명한 시민으로 이렇게 저 자신에게 이야기하렵니다.

"2017년 12월은 영웅이 되고자 무엇인가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지 말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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