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 문선정 시인

시의 사계

농담 한 송이 / 허수경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문선정 시인
문선정 시인

[시 평설 - 문선정] 나는 그 사람을 위로해 줬는데 나는 끝끝내 혼자여야 하는 날들이 있었다. 이럴 때, 까다로운 대화 말고 연두빛에서 막 깨어난 순한 농담을 안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 때문에 서러움이 한결 가벼워지는 하루를 경험했던 적 있다. 농담도 꽃으로 심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를 따서 가져오고 싶다고 말을 꺼내는 시인은, 서러움이 얼마나 두터우면 흔하게 오고 가는 농담을 한 송이 꽃으로 은유하며 자신의 속내를 열람한다. 시인이 말하는 그 한 사람이 나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는 서러움의 근거지는 시를 읽어 내는 우리일 것이고 환한 농담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일 것이다. 

서러움이 지나쳐 눈까지 차오를 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슬프도록 아름답게 지나간 날들은 누군가 다가왔다 사라진 다정한 체온만큼이나 아련하다. 그 현상은 마치 봄날 나비가 날아다니는 장면과 흡사하고, 둥그런 마당을 날아다니다 끝끝내 사라지고 마는 나비의 몸짓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아련하다. 

저기 병마와 싸우고 있는 한 사람이 기도한다. 비릿한 유서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암초처럼 자라난 서러움을 열람하는 중이다. 문득 저이에게 다가가 간절한 농담 한 송이 건네주고 싶다는 생각. 그러면 저이의 슬픈 입술이 꽃처럼 즐거운 기도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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