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9일 치러지는 20대 대선 시계가 점차 가속도를 내고 있다. 범 보수진영 압도적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6월 29일 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섰으며, 범여권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지난 2일 유튜브를 통해 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더불어민주당 경선 승리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는 예비경선을 앞두고, 지난 6월 30일 20대 대선 예비경선 후보등록 공고와 함께 기호 추첨 결과를 발표하는 등 이제 정국은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8일 ‘미담제조기’라는 별칭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오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출근길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모양새가 말이 아니게 됐다. 최 전 원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청와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날 저녁 사표를 수리하고, 박경미 대변인을 통해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과연 청와대가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최 전 원장은 이날 사의 의사를 표명하면서 “감사원의 어떤 정치적 중립성이나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으며, 20대 대선 출마와 관련한 질문에는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해서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최 전 원장이 사의 표명과 함께 정치에 참여하겠다든지 내년 20대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직접적인 언급을 한 것도 아닌데, 박 대변인을 통한 청와대의 반응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박 대변인의 발언을 접한 많은 국민들은 ‘賊反荷杖(적반하장)’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에 따르면, 최 전 원장이 사퇴를 결심한 배경에는 청와대가 두 차례나 감사위원으로 추천한 김오수 검찰총장을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거부하면서까지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런 김오수 총장을 청와대가 우리나라 최대 사정기관인 검찰의 首長(수장)으로 임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소신을 더 이상 펼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최 전 원장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라는 입장을 표명한 문재인 정부의 그동안 ‘정치적 중립성’ 위반 논란을 살펴보면, 지난 2019년 1월 5.9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 이력이 문제된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임명을 강행했고,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선거관리의 주무 부처장관인 법무부장관과 행정안전부장관을 현역 의원으로 임명하면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최 전 원장의 사퇴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을 운운하는 청와대의 모습은 앞뒤가 안 맞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사청문회 당시 ‘미담제조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최 전 원장까지 휴식기를 갖고, 범 보수진영의 대선 후보로 등판하게 된다면, 임명 당시 ‘우리 총장님’으로 칭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문재인 정부 초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경제부처 首長(수장)을 역임한 김동연 전 부총리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 출신들이 반 문재인 정부의 선봉장이 되는 형국이라서 청와대의 체면은 정말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통상적으로 자신을 발탁해준 主君(주군)을 향해 날을 세우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유독 문재인 정부에서는 자신들이 온갖 칭송으로 발탁했던 인사들이 현 정부에 등을 돌리면서 철저하게 대립하며 날을 세우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自業自得(자업자득)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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