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전 법무연수원장, 전 대전지·고검장) / 뉴스티앤티

지난 금요일 저녁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가면 자동으로 오는 것이 이런 몇 주년 행사입니다. 졸업 20주년 행사를 했고 30주년 행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40주년입니다. 두어 달 전부터 [대일고 2기 졸업 40주년 행사]에 대한 안내 문자가 여러 번 카톡을 통해 전해 왔습니다. 저는 당연히 참석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난봄 어느 다른 고등학교에서 졸업 40주년 행사가 있었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또래였나 봅니다. 그 행사의 캐치프레이즈가 "벌써 한 반이 없다."였답니다. 같이 졸업한 12반 중에서 1반 60명 정도의 친구들이 벌써 유명을 달리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에 서로 만나자.' 이런 마음이 통해 그 행사는 대성황을 이루었답니다. 동창회는 친구들과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특정 기간의 과거를 공유하는 모임이지요. 저희는 1974년부터 1976년까지 3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쯤 동창회장을 하는 친구 조경래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졸업 40주년 행사에서 나와 친구 정인기의 옛이야기를 해 줄 수 있냐고 물어 왔습니다. 저는 두말없이 인기가 좋다면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저와 친구 정인기 간의 있었던 옛이야기를 알게 된 이유는 이러합니다.

3년 전 2014년 4월 12일 [대일고 2기 입학 40주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행사를 참석하고 소감을 월요편지에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이야기를 짧게 소개하였는데 친구들이 그 내용을 기억하고 이번 행사에서 우정을 나타내는 표본으로 이야기해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그 행사에서 저는 정인기에게 띄우는 편지를 낭독하였습니다.

 

옛날 친구 정인기에게

1973년 12월 어느 날 우리는 고교 입학을 위한 연합고사를 치고 있었지. 그런데 나는 그 시험장에서 특이한 광경을 보았다네.

내가 시험을 보는 교실에서 자네도 같이 시험을 보고 있었는데, 자네는 다른 중학교 출신이니 내가 알 턱이 없는 학생이었지. 그런데 첫째 시간 시험이 끝나고 자네는 나의 시선을 끌었지. 자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뒷자리에 앉은 학생과 싸움이 벌어져 그 학생을 흠씬 두들겨 팼지. 자네는 체구는 작아도 날쌔더군.

그렇게 싸움이 끝나나 했는데 다음 시간에 맞은 학생이 같은 학교의 덩치가 더 큰 학생을 데리고 와 자네를 패기 시작했지. 자네는 저항하였지만, 덩치에서 밀리니 맞더군. 그렇게 2라운드가 끝나고 다시 시험이 시작되었지. 그리고 다음 쉬는 시간에 이번에는 자네가 같은 학교의 덩치가 더 큰 학생을 데리고 와 자네에게 처음 맞은 학생을 다시 두들겨 팼지.

우리 교실은 쉬는 시간마다 이종격투기장으로 변하였지. 이렇게 몇 번의 라운드가 이어지다가 결국 감독 선생님에게 발각되어 최초의 격투기 학생들이 불려 나갔지. 선생님은 다시 싸우면 퇴장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그 시간 이후 이종격투기 시합은 볼 수 없었다네.

나로서는 참 신기했지. 어떻게 생긴 놈들이기에 연합고사를 보러와서 싸움박질인지. 저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 그런데 그 궁금증을 풀 기회가 생긴 거야.

우연히도 대일고 1학년 10반에서 나는 자네를 발견하였다네. 정말 놀랐지. 저 아이가 같은 반이라니.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지. 저 아이를 친구로 삼아보자. 그래서 자네와 짝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지. 그 당시는 키순으로 번호를 매기고 1번과 2번이 짝이 되고 3번과 4번이 짝이 되는 방식이었지. 나는 번호를 매기기 위한 줄에 서서 자네와 짝이 되기 위해 순번을 헤아려 보았지. 나는 자네보다 키가 작아 자네의 몇 번째 앞에 서 있었는데 자네와 짝이 되기 위해 깨금발을 하고 자네 뒤에 섰지. 그래서 자네는 9번 나는 10번. 우리는 짝이 될 수 있었지. 그 어린 시절부터 나의 기획력은 탁월했던 것 같아.

그 기획 덕분에 엄청난 일이 발생하였지. 당시 나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했지. 지금 같으면 장학금이라도 받았겠지만,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라 장학금도 흔하지 않았지. 당시 등록금은 1년에 네 번 냈지. 1학년 1사분기 등록금은 입학할 때 냈지만 2사분기부터는 집안 사정상 등록금을 내지 못했지. 당시에는 등록금을 내지 못한 학생의 이름을 선생님이 칠판 오른쪽 아래에 적어 두셨지.

2사분기 등록금을 못 낸 학생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간 상태에서 다시 3사분기 등록금을 못 낸 학생 명단에 또 내 이름이 올라간 것이야. 이런 상황에서 12월 1학년 4사분기 등록금 고지서가 발부되었지. 나로서는 2사분기 3사분기 4사분기 세 번의 등록금을 한꺼번에 낼 일이 막막하였지. 어머님이 학교에 오셔서 선생님께 사정도 하였지만, 선생님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자네가 나에게 2사분기 등록금을 내라고 돈 봉투를 내밀었지. 깜짝 놀랐지. 무슨 돈인지 물었더니 자네가 4사분기 등록금을 집에서 받아 그 돈을 나에게 준 것이었다네. 나는 네 등록금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지. 너는 태연스럽게 이렇게 대답하더군. "응, 집에다 등록금 잃어버렸다고 했고 그래서 어머님이 다시 4사분기 등록금을 주셨어."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지. 그 돈을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었지. 그러나 그 당시 나의 사정상 염치불구하고 그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네.

당시 우리 나이가 얼마였는지 기억하는가. 만 16살이었지. 16살 정인기가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어머니에게 등록금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등록금을 두 번 타서 16살 조근호에게 등록금을 하라고 돈을 준 것이었다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16살 정인기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이런 엄청난 일을 하였을까. 그저 우정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지.

그 후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잘 만나지 못하고 인생을 살았지. 언젠가 내가 북부지검장을 하고 있을 때 무슨 일 때문에 서로 연락한 것이 마지막이었을 거야. 자네는 주로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있었고 나도 살기에 바빠 1974년의 그 아름다운 우정을 이어나가지 못했지.

인기야. 내가 오늘 왜 이 이야기를 공개하는지 알겠는가. 16살 정인기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네. 그래서 이 편지의 마지막은 1974년 12월의 16살 정인기에게 보내는 글로 마무리하고 싶다네.

"16살 정인기에게. 인기야 정말 고맙다. 네가 나에게 봉투를 내민 그 날. 나는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을 느꼈지. 내가 살아가면서 힘든 고비를 지날 때마다 너의 우정을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 보았다네. 자네를 짝으로 만들려는 나의 깨금발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오늘 이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따뜻하네. 늘 건강하게나."

자네의 옛날 친구 근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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