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들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향수鄕愁」제 1.2연(『조선지광朝鮮之光』65호, 1927. 3)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이거移居」(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이거移居」(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 사철 발벗은 안해가 /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하늘에는 석근 별 /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향수鄕愁」제 3, 4, 5연

한국 최고의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이윤기(1947. 5. 3-2010. 8. 27) 작가는 “고향은 나의 작은 저승!”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4월과의 직면」이라는 짧은 에세에서 “죽을 것들이 무수히 태어나는 4월이 오면 모르는 이들의 무덤가에서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고백했다. 특히 한식날이면 형제들이 경북 군위의 선산에 모여 산역을 끝내고 술을 마시는데 조상이 그랬고, 자신이 그렇듯 후손들도 그러하리라 예언한다 토로했다. 그러면서 산 아래 빤히 보이는 생가에서 묻힐 선산까지 그 거리가 ‘내 인생’이라고 언표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에 드는 「향수」의 정지용(1902-?)시인은 고향 그 충북 옥천의 하계리에 묻히지 못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광복 전후의 좌익계 문단경력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북한군에 납북되어, 1953년 평양에서 사망했다 알려졌다. 한편 1993년 4월 북한의 『통일신보』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터진 당년 9월에 경기도 동두천 인근에서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어느 편이든 지용시인은 ‘참하 꿈엔들’ 잊을 수 없었던 그곳으로 회향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윤기 선생의 정언에 기대면 서울의 휘문고보와 일본 교토의 도시사대학에서 수학한 시인의 ‘한평생’은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타향에서 떠돌다 종당에 첫 울음 터뜨린 곳으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말이다. 

지용시인 같은 실향의 우여곡절에 적확한 단어가 바로 ‘약상弱喪’이다. 『장자莊子』제2 제물론에 보이는 이 경구는 뜻 그대로는 ‘어려서 상을 당하다’이다. 그런데 전후 글귀를 묶어 보면 ‘어린 시절에 고향을 떠났다’로 새겨진다. 여호호지오사지비약상이부지귀자사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 죽음을 싫어한다는 것이, 어려서 고향을 떠난 채 돌아갈 길을 잃는 자가 아닌지를 내가 어찌 알겠소? 노자와 장자를 잇는 도가의 적장자인 열자의 언술을 살펴보면 이 14자의 알짬이 분명해진다. “죽음이란 길을 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열자』제1편 천서 9) 죽을 곳을 찾지 못하거나,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의 슬픈 운명이여!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이거移居」(한지에 수묵. 70✕70cm)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이거移居」(한지에 수묵. 70✕70cm)

옛날에 남촌에 살고자 했던 것은 / 택지를 점친 때문이 아니었다 / 문다소심인聞多素心人: 소박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고 들어 / 악여삭신석樂輿數晨夕 그들과 아침 저녁으로 자주 만나고 싶어서였다네 / 이 마음을 먹은 지 꽤 여러 해가 되었는데 / 오늘에야 이 일을 해내게 되었구나 / 보잘것없는 집이 어찌 넓을 필요 있겠는가 / 침상과 자리를 가리는 데에서 만족을 취한다 / 이웃들은 때때로 찾아와서 / 소리 높여 옛날 일을 담론한다 / 뛰어난 문장은 함께 감상하고 / 의심나는 뜻은 서로 따져 본다 –도연명 한시「이거移居」제 1수 전문   

고금을 통해 숨어 사는 은일隱逸 시인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도연명(365-427)은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핑계 삼아 10년 동안의 관직생활을 사직하고, 강서성江西省의 채상彩桑으로 귀향했다. 이듬해인 406년에 지은 그 유명한 귀거래사가 바로 총 5수의 「귀원전거歸園田居」이다. “갇힌 새가 옛 숲을 그리워하고, 못의 물고기가 옛 연못을 생각하듯” 작게나마 농사를 지으며 자적하던 오류선생은 4년 뒤 ‘남촌‘으로 이사했다. 두 수의 「이거」는 후세에 ’이사‘의 참뜻을 일러주는 웅숭깊은 시가 아닐 수 없다. 

땅과 바다에서 나는 물산이 상거래의 전부였을 때 모내기는 식량을 얻는 천하제일의 중차대한 농정이었다. 못자리의 모를 쪄서, 논에 이앙하는 그 행위는 ’딴 데로 옮겨갈, 이사할 이移‘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바로 ’이‘가 ’벼 화禾와 많을 다多‘가 결합한 글자인 것이다. 벼들이 꽉 들어찬 논- 이는 고향을 떠나 주체적 존재로 홀로 성장하는 의미를 함의한다. 그렇다. 나는 일찍이 사람 한 살이를 ’편과 판, 평‘으로 함축했다. 풀어보면 혈연과 지연, 학연의 내편들 속에서 체력과 학력을 키우고, 사회라는 이종들의 판으로 나가 고군분투하며 재력을 쌓고 일가를 이루고, 세평과 명성을 얻는 게 사람의 한평생이 아닐런지. 

온화한 최적 그 못자리의 모가 주체적 성장을 위해 척박한 땅으로 홀로 던져지는 것은 곧 서양의 ’디아스포라Diaspora‘와 흡사하다. 이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은 고대 그리스어의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의 ‘스페로spero’가 결합되었다. 팔레스타인을 떠나 타국을 전전하다 마침내 나라를 세운 눈물겨운 유대인의 역사를 상징하는 디아스포라- 영국과 끝나지 않는 전쟁을 벌여온 아일랜드의 이민자를 ‘아이리시 디아스포라’로 부르는데 한민족도 예외가 아니다. 일제강점기나 근·현대화 과정에서 수많은 동포들이 만주벌판이나 하와이, 서독 등지로 떠났으며 러시아의 섬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된 동족들은 아직도 목메인 망향가를 부르고 있다.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이거移居」(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이거移居」(한지에 수묵. 70✕70cm) 부분

7년 전 나는 초등학교 2학년에 떠난 금강수계의 옥천 상류인 영동으로 귀향했다. 50여 년의 ‘디아스포라’를 마감한 셈인데 이태의 여섯 평 농막 생활 끝에, 2016년 여름 본채 어중간을 준공하고 입택했다. 분명 441.7km 경부철도의 한가운데이니 지리적으로 어중간이다. 또한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사는 중간자적 존재이니 매우 합당한 당호라고 여긴다. 그런데 지난 6월 21일에 아흔세 살의 아버지께서 이사하셨다, 어중간으로. 4년 전 88세의 내자 남권사를 온 그곳 본향으로 보내드리고 대전에서 홀로 지내셨던 친부- 달포 전 갑작스레 매수인이 나타나 아파트를 처분하게 되었는데 원룸 얻어 지내시겠다고 선언하셨다. 

63살의 외아들은 하룻밤의 고민 끝에 어중간으로 모시겠다 말씀드렸는데 마지못하신 듯 “그러마...” 승낙하셨다. 그후 층고 높은 서가에 내가 취침할 3평 남짓 다락방과 1층에 중문을 세워 아버지의 독립 공간을 마련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이삿짐을 싸고 보니 의외로 많구나...” 어머니의 세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지내셨을 터 왜 아니 그렇겠는가. 외며느리가 나서서 짐을 줄여 보겠다 의중을 타진해 왔을 때 나는 말렸다. 버려도 고향에서 처분하시도록 보따리들 절대 건드리지 말아라...         

앞으로 나는 도연명의 시구대로 “침상과 자리를 가리는 데 만족할 뿐” 오랜 이웃 같은 아버지와 경주 김 상촌공파의 가족사 그 ‘문장’을 함께 감상하고, 의심나는 ‘뜻’을 서로 견주어 볼 것이다. ‘이사’의 알짬은 그런 것이라 믿는다. 그저 살림 불리는 ‘영끌’의 택지가 아니라 ‘영풀’ 그 황잡한 세상에서 지친 영혼을 함께 풀 사람을 찾는 일이 우선이다. 허접하고 난삽한 이번 글 매조지 하려는데 『도덕경道德經』의 노자가 내 정수리를 쓰담하며 위무한다.  

부물운운夫物芸芸 각복귀기근各復歸其根: 사물들이 무성하지만 마침내 제각기 원래의 뿌리로 되돌아간다(상편 제 16장)  

저만치 혼자서 자라고, 열매 맺은 벼들도 회두리에 뿌리를 배태한 볍씨로 돌아간다. 하여 이듬해 모판에서 다시 만난다. 아버지의 아들 아빠 되고, 엄마의 딸 어머니 되는 외경스런 사람들의 순환- ‘전설바다에 춤추던 밤물결’이 갓밝이에 붉어지면,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이 해변을 걸으리라. 그러다가 문득 약상弱喪-어려서 잃었던 고향을 저마다 떠올릴 것이다, 꿈에서 잠시 잠깐 보았던 되돌아갈 그곳 말이다. 부디 신축년 2021년의 상반기 잘 마무리하시고, 하반기도 활기차게 이어가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2020년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부문에 입선했다. 산문집『문화에게 길을 묻다』,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를 펴냈고, 현재 고향에서 사람책도서관 어중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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