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 문선정 시인

시의 사계

욕의 칼 / 이가을

몸에 욕이 자라요 나물처럼 쑥쑥 자랐어요

강하고 독하게 자랐어요 아버지
부드러운 혀는 독보다 피보다 진해요 
눈빛보다 강한 무기, 힘세고 강하게 살아남죠
무엇이든 욕으로 견디고
마음을 찌르는 칼
e 씨발의 도시 미친 욕을 하거나 욕을 먹거나
밥 한술에도 욕을 얹고
아이들도 욕을 하고 욕을 부르는 전염

욕을 하지 않으면 하루도 숨 쉴 수 없는 세상
누가 만들었나요

나쁜 아버지, 욕하지 마세요
착한 당신, 욕에 물들지 마세요

영혼을 죽인 살인언어
당신이 내게 먹여준 욕 먹고 자란 나를 보세요
욕하고 싶은가요?
욕으로 싸우는 세상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에게서 
욕을 배웠나요

누가 욕하나요
당신도 나도 아픈 욕 내려놓으세요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욕을 이기는 법, 욕보다 강한 사랑은 없나요
나쁜 당신, 쉿! 욕하지 마세요

이가을 시집 『슈퍼로 간 늑대들』(2015/책 만드는 집) 중에서

 

문선정 시인
문선정 시인

 [시 평설 - 문선정] 시 속 화자의 아버지는 욕의 국가 군주다. 욕 잘하는 빌런이다. 국밥집 구수한 욕쟁이할머니를 말하는 게 아니다. 뉴스에 나타난 사건 사고 기저엔 독한 욕과 술이 오갔다. 밥보다 욕을 먹고 자란 화자는 맛없고 독한 욕에 병들었다. 욕하는 이의 영혼도 깊게 병들었을 것이다.

욕의 기원이 궁금하다. 석기 시대에도 욕을 했을까. 욕은 싸움의 무기다. 배설이다. 상대를 제압하는 수단으로도 쓰이는 큰 무기다. 잘 벼린 칼처럼 욕으로 영혼을 베인 사람들은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법람하는 사건 사고는 술과 욕에서 기인한다. 아무래도 칼 들기보다 가슴과 입으로부터 장착되어 있는 욕이 쉽기 때문이다. 
 
시는 ‘영혼을 죽인 살인언어’ ‘내 몸에 욕이 자란다’ 욕의 전염성과 살인적 위협, 욕으로 병든 사회를 증언하며 동시에 ‘욕하지 마세요’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호소한다. 
욕으로 병든 사회에 연민을 느끼고 욕은 마약처럼 해롭다는 것을 일깨워주면서 시인은 따뜻한 말을 나누며 진심으로 공감 소통하고 싶어 한다. 시를 쓰는 건 그 때문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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