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전 법무연수원장, 전 대전지·고검장) / 뉴스티앤티

지난 금요일 낮 12시 저는 김포공항에서 제주도에 같이 갈 특별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명의 조카들과 2명의 이모들입니다. 조카들은 제가 후원하고 있는 상록보육원 401호 아이들이고 이모들은 그 조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입니다. 2011년 12월 24일 체증같은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이 벌써 만 6년이 다 되어 갑니다. 1년에 적게는 서너번, 많게는 예닐곱 번씩 아이들과 만났습니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에버랜드, 롯데월드, 베어트리파크 등 재미있고 아름다운 곳을 당일치기로 놀러 가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그 조카들을 데리고 2박 3일 제주도 나들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조카 10명, 선생님 2명, 우리 식구 4명 등 일행은 총 16명입니다. 이 행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여행사의 문화재단에서 후원해 주었습니다. 그 재단에서는 저소득층 여행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희망여행 프로젝트, 지구별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여행사 박상환 회장께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여행경비를 후원해주신 것입니다.

12시 채 못되어 공항에서 조카들과 이모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설레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이모 말을 들으니 10명의 조카 중 8명은 이번에 비행기를 처음 타본다고 하였습니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조카들을 위해 비행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해주려 하였지만, 미취학 조카 1명과 초등학생 조카 2명만 포즈를 취할 뿐 중학생 조카들은 수줍은지 사진 찍기를 꺼립니다.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40분밖에 안 걸리는 비행이지만 처음 비행기를 탄 조카들에게는 [꿈의 비행]이었을 것입니다. 재잘재잘 수다를 떨다 보니 금방 제주도입니다.

제주공항에는 노련한 여자 가이드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여행 내내 아이들의 심정을 헤아려 자상하게 안내해주었습니다. 비행기가 연발하는 바람에 4시가 다 되어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해녀들이 운영한다는 음식점에서 전복죽으로 제주도 첫 식사를 하였습니다. 밖에 나와보니 하늘도 흐리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 추운 데다가 비까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처음 제주도를 방문하는 조카들에게 좋은 날씨를 선물하시지 이게 뭐란 말인가.'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이런 악조건이 훗날 좋은 추억거리가 될 거야.'

첫 방문지는 제주시에 있는 수목원테마파크입니다. 수목원이라 하여 야외인가 했는데 실내였습니다. 처음 들어간 곳은 아이스뮤지엄입니다. 얼음 조각과 사진 찍는 것도 좋았지만 이곳의 압권은 고무 튜브를 타고 얼음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얼음썰매장입니다. 조카들은 이곳을 떠나기 아쉬워합니다. 이어 3D 착시 아트관에서 사진도 찍고, 360도 5D 영화관에 들어가 입체안경을 쓰고 바닷속 아름다운 광경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한참을 구경하고 나니 배가 고파집니다. 조카들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습니다. 이제는 호텔에 들어갈 시간입니다. 밤새도록 놀고 싶겠지만 내일을 위해 잠을 자두어야 합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호텔 뷔페로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안 좋습니다. 비도 제법 옵니다. 바람도 많이 불어 체감 온도는 영하입니다. 관광하기에는 꽝입니다. 그러면 어떤가요. 조카들과 같이하는 여행인데요. 먼저 어제 둘러 보지 못한 수목원을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늦가을이지만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단풍이 제 빛깔을 폼내고 있습니다. 잠시 산책을 하며 가을을 느껴봅니다. 그러나 조카들은 연신 재잘거리기 바쁩니다. 가을 느끼기에는 아직 어린 친구들입니다.

느긋하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이동하잡니다. 공짜 구경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쇼를 하는 쇼월드 인 포니 밸리에서 어제 정전사고가 있어 오늘은 전공연을 무료 입장하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공연은 조카들이 딱 좋아할 각종 서커스와 몽골리안 마상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공연이 재미있었습니다. 공짜라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공연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먹을 때가 제일 즐겁습니다. 배를 채우고 다음 관광에 나섭니다. 이번에는 말타기입니다. 모두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말타기를 겁내는 가장 어린 조카 1명만을 제외하고 전원이 말을 탔습니다. 처음 타는 말일 텐데 모두 몇 년은 말을 탄 사람들처럼 능숙한 포즈를 취합니다. 세찬 바람과 살을 에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내친김에 성읍랜드에 함께 있는 카트장에 들어섰습니다. 앞에 타는 사람들 때문에 30여 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을 그냥 허비할 우리가 아닙니다. 옆에 보니 드레스 체험장 제인 하우스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손님을 위한 장소인 듯합니다. 드레스를 입어볼 조카들을 구했지만, 중학생 이상들은 모두 손사래를 칩니다. 결국, 어린 두 조카만 드레스를 입어봅니다. 아내는 조카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조금 있으니 중학생 조카들도 들어가 머리에 가발과 화관을 써봅니다. 여자는 여자입니다.

시간이 되어 카트를 탑니다. 추위 때문에 방한복을 든든히 입어 추위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문제는 운전실력입니다. 조카들은 아마도 자동차를 처음 몰아볼 것입니다. 그러니 트랙을 도는 시간보다 멈춰 서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가요. 이 모두가 추억인데요. 그래도 마치고 나니 모두가 카레이서 같습니다. 다음은 레일바이크입니다. 카트에 비하면 시시하지만 그래도 경치를 보는 재미가 쏠쏠히 있습니다. 비닐 커버를 씌워 춥지는 않습니다. 오랜만에 조카들 덕분에 이것저것 다 해봅니다.

그나저나 조카들이 즐거워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가만히 눈치를 살피니 모두가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말을 안 탄 조카, 카트를 안 탄 조카, 사진 찍으려 하면 도망치는 조카. 즐기는 조카들보다 즐기지 못하는 조카들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환하게 웃지 못하는 조카도 있어 마음이 짠합니다. 그러나 전체 분위기는 즐기는 분위기입니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해녀박물관을 들렀습니다. 해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던 조카들이 이번에 제대로 공부를 합니다. 해녀를 공부하고 나니 바닷가를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모래사장이 예쁜 월정리 해변을 찾았습니다. 쌀쌀하기는 하지만 백사장에서 사진을 찍고 모래를 밟아보기에는 충분합니다. 저녁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작품입니다. 아마도 조카들은 마음의 눈으로 월정리 바다를 찍어 가슴에 간직하였을 것입니다.

저녁은 제가 사기로 하였습니다. 제주도에 왔으니 회를 먹어보아야지요. 그래도 몰라 회를 먹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1명 빼고 모두 먹는다고 하여 횟집을 찾았습니다. 가이드가 안내한 집은 회를 비롯하여 모든 음식이 맛이 있었습니다. 체중이 걱정되었지만, 오늘만큼은 허리띠를 풀고 조카들과 마음껏 먹기로 하였습니다. 희망여행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불과 2박 3일 밖에 되지 않는 일정이지만 모두의 가슴속에 남는 특별한 여행이 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마지막 날은 비행기 표가 없어 이른 시각인 12시 25분 제주 출발 비행기입니다. 아쉽지만 어떡합니까? 가이드는 우리의 이런 마음을 읽고 비행장 근처에 있는 도두봉으로 안내를 합니다. 제주바다, 구제주, 신제주 그리고 제주공항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오른 아이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신나합니다. 제각각 셀카를 찍으며 즐기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서둘러 내려가 마지막 관광지인 용두암에 들렀습니다. 용두암에서도 증명사진만 찍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기념품을 사고 싶어 면세점으로 달려간 조카들을 바라보며 가족들에게 가슴속에 품고 있던 한마디를 하였습니다. "과연 아빠가 하고 있는 일이 잘하는 일일까? 아이들이 모두 잘 즐겼을까? 중학생 일부는 말도 안 하고 소극적이고 어울리기도 싫어하는 것 같은데 아빠가 하는 일이 혹시 그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 아닐까? 이런 일을 더 하는 것이 맞을까?"

해외 봉사활동을 오래도록 많이 한 딸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빠 참 대단하신 거예요. 대부분 1년 만에 그만두세요. 의욕적으로 시작하였다가 상처를 입고 그만두는 분들이 많아요. 6년을 계속하신 것은 박수받을 일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셔야 해요. 사춘기이기도 하고 상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방탄 소년단 이야기를 하였더니 모두 갑자기 관심을 보였어요. 그리고 모두 제 핸드폰 번호를 가져갔어요. 아이들이 마음 설레서 여행 전날 밤에 잠을 설쳤대요. 제가 아빠에게 마음을 여는 데도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아이들이 쉽게 마음을 열겠어요. 좀 이러다가 그만하겠지 하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있어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 계속하세요."

딸아이의 응원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아이들과도 소통이 힘든데 조카들과의 소통은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또 소통이 안되면 어떤가요. 저는 그저 키다리 아저씨 역할만 하면 그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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