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재천 변호사(신한금융투자) / 뉴스티앤티

임의매매는 증권회사나 증권회사 직원이 투자자로부터 금융투자상품 매매의 청약 또는 주문을 받지 아니하고 투자자의 위탁재산으로 금융투자상품 매매를 하는 것을 말한다.

임의매매가 발생한 경우 거래 상대방 보호 때문에 거래 자체를 무효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투자자가 거래를 추인하지 않는 이상 투자자에게 거래의 결과를 귀속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따라서 투자자는 증권회사에 임의매매가 자신에 대하여는 무효라고 주장하며 위탁재산의 반환을 청구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투자자는 임의매매를 추인하여 거래 결과를 자신에게 귀속시킬 수도 있다. 투자자가 임의매매를 추인하면 임의매매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임의매매는 투자자의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투자업의 근간을 해치는 행위이므로 자본시장법에서는 임의매매를 명문으로 금지하고, 임의매매를 한 증권회사 직원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직원 감독의무를 게을리 한 해당 증권회사도 2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임의매매를 한 증권회사 직원을 자본시장법 위반죄 이외에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배임행위를 하여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자기 또는 제 3자가 재산상 이득을 얻어야 한다. 증권회사 직원이 투자자의 주문을 받지 않고 투자자의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한 경우에는 금융투자상품의 시세변동으로 투자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 있고, 임의매매로 수수료가 발생하여 증권회사나 자기에게 재산상 이익이 발생하므로 증권회사 직원의 임의매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업무상 배임죄도 성립한다. 업무상 배임죄는 형법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되고, 배임행위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때에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 처벌된다.

임의매매는 불법성이 명백하여 임의매매를 저지른 증권회사 직원은 소속 증권회사의 중징계를 피할 수 없음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으므로 임의매매 여부가 문제되면 증권회사 직원은 해당 거래가 임의매매가 아니고 매매와 관련하여 투자자의 포괄적인 위임을 받은 “포괄적 일임매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포괄적 일임매매는 임의매매보다 가벼운 형으로 처벌될 뿐만 아니라 임의매매와 달리 포괄적 일임매매로 발생한 투자자의 손해에 대해 민사상 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괄적 일임매매는 투자자가 증권회사 직원에게 투자대상 금융투자상품의 종류, 종목, 가격, 수량, 매매 방법을 명시하지 않고 자산의 운용을 전적으로 맡기는 투자방식이다. 포괄적 일임매매는 투자자와 증권회사 직원 간 명시적 계약은 물론 묵시적 합의로도 성립할 수 있다.

투자대상 선정 능력과 매매방법 등 투자에 전문성이 부족한 투자자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기 위해 자산운용 전문가처럼 보이는 증권회사 직원에게 자산의 운용을 포괄적으로 일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포괄적 일임매매는 증권회사 직원에게 광범위한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에 투자자와 증권회사 직원 사이에 이해상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예를 들어 증권회사 직원이 매매수수료 수입을 위해 투자자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자의 자산을 대규모로 빈번하게 거래할 수 있고, 심지어 투자자의 계좌를 시세조종 등 불법행위에 이용할 수도 있다.

투자자와 증권회사 직원 사이에 발생하는 이해상충과 불법행위 가능성 때문에 자본시장법에서는 포괄적 일임매매를 증권회사의 불건전한 영업행위로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인정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투자자가 증권회사에게 포괄적 일임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① 증권회사가 투자일임업 수행을 위하여 포괄적 일임을 받은 경우

② 투자자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거래일(하루에 한정)과 총 매매수량이나 총 매매금액을 지정한 경우로서 지정 범위에서 금융투자상품의 수량∙가격 및 시기 관련 투자판단을 투자자에게 일임 받은 경우

③ 투자자가 여행∙질병 등으로 일시적으로 부재하는 중에 금융투자상품의 가격 폭락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로서 투자자에게 약관 등에 따라 미리 금융투자상품의 매도 권한을 일임 받은 경우

④ 투자자가 금융투자상품의 거래에 따른 결제나 증거금의 추가 예탁 또는 신용공여와 관련한 담보비율 유지의무나 상환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로서 투자자에게 약관 등에 따라 금융투자상품의 매도권한을 일임 받은 경우(반대매매)

⑤ 투자자에게 단기금융집합투자기구(MMF)의 집합투자증권 매매와 관련하여 일임 받은 경우

증권회사 직원이 자본시장법에서 금지된 포괄적 일임매매를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되고, 직원 감독의무를 게을리 한 해당 증권회사도 2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이러한 포괄적 일임매매의 법정형은 임의매매의 법정형과 동일하다. 다만, 포괄적 일임매매는 거래 당사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당사자들의 의사에 부합한다는 점 및 포괄적 일임매매 계약의 상대방인 투자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 등이 고려되어 형사절차에서 중요 범죄행위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즉, 검찰은 포괄적 일임매매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나타내지 않고, 법원도 중한 형량을 선고하지 않고 있다. 참고로 포괄적 일임매매 규모가 127억원 상당이고 포괄적 일임매매로 발생한 손해가 23억원 상당인 사건에서 법원은 포괄적 일임매매 금지 규정을 위반한 증권회사 직원에게 벌금 2천만원을 선고하였다.

자본시장법의 포괄적 일임매매 금지 및 처벌규정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일임매매 약정 및 그러한 약정에 따른 매매가 당사자 사이에서 유효한지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이는 포괄적 일임매매를 금지한 자본시장법 규정을 사법상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효력규정으로 보아 당사자 사이에서도 포괄적 일임매매를 무효로 취급할지, 아니면 사법상 행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속규정으로 보아 당사자 사이에서는 포괄적 일임매매를 유효로 취급할지에 관한 문제다. 또한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투자자가 포괄적 일임매매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증권회사나 증권회사 직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지도 논의되고 있다.

​ 법원은 포괄적 일임매매를 금지한 자본시장법 규정을 사법적 효력과는 관계없는 단순한 단속규정으로 해석하여 포괄적 일임매매 계약과 그에 따른 매매는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포괄적 일임매매로 투자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투자자는 증권회사나 증권회사 직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포괄적 일임매매 약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투자자가 모든 거래를 증권회사 직원에게 일임한 것으로는 볼 수 없으므로 포괄적 일임매매 계약에 따라 유효하게 인정되는 거래는 통상적인 거래에 한정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법원도 증권회사 직원이 투자자에게 증권거래에 관한 포괄적인 일임을 받았다 하더라도 별도의 권한을 위임 받지 않고 실행한 주식담보대출은 위법한 것으로 주식담보대출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투자자는 해당 증권회사와 그 직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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