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전 법무연수원장, 전 대전지·고검장) / 뉴스티앤티

지난 얘기지만 한가위에 많은 분들이 고향에 다녀오셨을 것입니다. 또 많은 분들은 해외를 방문하신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후자에 속했습니다. 고전 공부 팀과 함께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여행하였습니다. 이번 학기 고전 공부의 주제가 '게르만 정신 탐구'였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는 자주 해외를 나가게 되어 이번 여행은 원래 포기할 생각이었는데 한 달 전쯤 생각을 바꾸어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게 결정하는 바람에 일행들 비행기와는 다른 비행기 티켓을 구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비행기 티켓은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저의 비행 코스는 김포 - 북경 - 베를린 - 비엔나였고, 대한항공, 하이난 항공, 에어베를린을 이용하는 매우 복잡한 코스였습니다.

김포공항에서 트렁크 한 개를 부치고 기내에서 쓸 간단한 짐을 넣은 백팩은 비행기에 가지고 탔습니다. 저는 예정대로 북경, 베를린을 거쳐 9월 29일 금요일 비엔나에 도착하였습니다. 짐을 찾는 곳에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짐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안내 데스크를 찾았습니다. 그 직원은 조회를 하더니 짐이 베를린에 도착해 있고 내일 비엔나에 도착할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 발생했나 보네.' 이렇게 생각하고 다소 불편하지만 하룻밤을 지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여행 가이드를 맡은 김세연 과장을 만나 사정 이야기를 하였더니 잘 조치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비엔나 공항에 다시 가면 뒤늦게 다음 비행기로 도착한 제 트렁크가 저를 반겨 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김 과장이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으러 갔다가 와서 전하는 소식은 예상 밖의 소식이었습니다. 비행기 화물 추적 시스템상에 제 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비엔나 공항 직원이 한 '짐이 베를린에 도착해 있다'는 말은 통상의 경우를 예상하여 지레짐작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비엔나에 머무는 이틀 동안 짐이 도착할 것이라는 김 과장의 말을 믿고 하루하루를 지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팬티와 양말 등 기초적인 생필품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하필 비엔나에 머무는 이틀은 토요일과 일요일이었는데 오스트리아의 법령상 토요일과 일요일은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딱한 사정을 간파한 김상근 교수님이 저에게 '상표도 떼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팬티를 하나 주었습니다. 졸지에 이재민이 된 것입니다.

내일이면 오겠지 하는 짐은 일요일 저녁까지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우선 짐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초조해하고 짜증을 내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점잖은 분들과 같이하는 여행 초반부터 제 짐 문제로 다른 분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었습니다.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마치 고매한 인격자인 양 연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0월 2일 일행을 태운 버스는 비엔나를 떠나 잘츠부르크로 향했습니다. 이제 짐이 비엔나로 와도 문제였습니다. 저희 여행 코스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독일의 뮌헨으로 가게 되어 있어 비엔나로 가서 짐을 픽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선은 짐의 행방을 아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잘츠부르크를 가는 도중 김세연 과장이 다가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제 트렁크가 김포에서 북경까지는 왔는데 북경에서 하이난 항공 비행기에 싣지 않아 현재 북경 공항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짐을 찾은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김 과장은 하이난 항공 측에 짐을 베를린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일정상 10월 4일 뮌헨에서 비행기로 베를린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짐이 베를린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더 편하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비상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저는 우선 트렁크에 실려 있던 짐을 하나하나 체크해 보았습니다.

그중에 꼭 필요한 것은 잘츠부르크에서 사기로 하였습니다. 잘츠부르크 가는 길에 할슈타트라는 아름다운 마을을 구경하기도 하고, 잘츠부르크에서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장소였던 미라벨 정원을 둘러보기도 하였지만 머릿속은 온통 이 비상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겉으로는 최대한 표정을 밝게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초조한 속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다른 분들은 속도 모르고 저희 침착함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조 변호사, 참 대단해요. 이런 상황에서도 짜증 한 번 안내고 태연하니 말이에요." 상황이 이러니 더 불편한 기색을 보일 수 없었습니다.

가이드는 잘츠부르크에서 저를 위해 쇼핑시간을 1시간 반 주었습니다. 저는 광속 쇼핑을 하였습니다. 저가 브랜드인 [자라]에 들어가 양말과 팬티를 사고 점퍼, 바지, 티셔츠, 스웨터 등을 사게 되었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라 천천히 고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간단한 컨셉 하나를 생각해 냈습니다. "무조건 검정색과 흰색 중에서 고르자." 이렇게 색을 단순화시키자 이제는 디자인만 고르면 되었습니다. 1시간 만에 새롭게 변신하였습니다. 다들 젊어졌다고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오늘이 10월 2일이니 이틀만 버티면 트렁크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옷을 장만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뮌헨에서 옥토버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베를린에 도착하였습니다. 베를린 공항에서는 당연히 제 트렁크를 만날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이 기대는 저만의 기대가 아니었고 일행 모두의 기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 과장의 얼굴이 하얘져서 다가왔습니다. "조 변호사님, 죄송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베를린에 도착한 짐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다시 북경으로 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지요."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성질이 폭발할 상황이었습니다.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성질을 낸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들 저를 위로하기에 바빴습니다. 저는 끝까지 고매한 인격자 모드로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것이 모두를 위해 아니 저를 위해 좋은 결정이었습니다. 늘 짐을 많이 가지고 다녀 문제였는데 이번에 짐을 줄이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고 넉살을 떨었습니다.

김 과장이 북경에 있는 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베를린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짐이 없다 보니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녔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10월 9일까지라 10월 5일 짐이 도착하여도 며칠은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그 다음날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10월 5일 아침 김 과장은 한 장의 사진을 가지고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변호사님, 어떻게 하지요. 짐이 인천으로 갔답니다." 이제는 화도 안 나고 그저 너털웃음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가방이 저보다 먼저 귀국을 한 것이었습니다.

다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한마디씩들 하였습니다. 짐이 하루 이틀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 일은 왕왕 있지만 이번처럼 아예 출발지로 돌아가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예 짐이 없는 상황에서 여행을 하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 것입니다. 이러는 사이에 여행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화도 나고 불편하였지만 이제는 이 상황에 적응하는 것에서 나아가 마음속으로 즐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여행 끝 무렵 저에게 건배사를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이 불편한 상황을 [신이 주신 은총]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짐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기회와 극도로 화가 나는 상황에서 인내를 훈련하는 기회를 동시에 주신 은총 말입니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배운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불행을 확인하고 이 불행과 떳떳이 대결하고 이 불행을 침착하고 냉정하고 자유롭게 꿰뚫어 봄으로써, 이 불행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는 것이 사나이다운 용기이다. 불행은 그것을 모른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으며, 그것을 안다고 해서 늘어나지도 않는다. 그것을 인식함으로써만 극복할 수 있다.”

여행 가방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을 불행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불편한 상황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많이 불편한 상황 말입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하는 저에게 피히테의 말은 필요하고도 적절한 교훈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교훈을 곱씹은 덕택에 트렁크 없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행 말미에 여행 지도 교수이신 김상근 교수님이 이런 덕담을 해 주셨습니다. “앎을 실천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짐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 저에게 전화위복이 되어 제가 고전을 통해 배운 것을 실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이 실감 나는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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