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을 1년 정도 남겨 놓은 시점에서 대한민국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2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입장문을 통해 전격 사퇴 입장을 표명한 이후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윤 전 총장의 공격에 올인하고, 제1야당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은 윤 전 총장의 사퇴에 환호하며, 윤 전 총장의 행동에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윤 전 총장처럼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검찰총장은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3권 분립을 기초로 하는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초대 대법원장이 佳人(가인) 김병로 선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지만, 초대 검찰총장이 권승렬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이처럼 초대 검찰총장의 이름조차도 법조계 인사들 정도만 알고 있을 정도로 생소한데, 윤 전 총장은 법조계 인사를 넘어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기현상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검찰총장 재직 시에도 유력 대권주자로 이름을 올리는 현상은 대한민국 역사상 찾아볼 수 없다.

윤 전 총장이 검사이면서도 대한민국 정치권을 강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검사 임용 이후 검찰총장에 오르기까지 겪은 기구하고도 굴곡진 상황과 현 정부에 의해 검찰총장에 전격적으로 지명되고 난 이후 특히, ‘살아있는 권력’인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족 수사를 단행한 이후부터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심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신념 때문인지 몰라도 윤 전 총장은 헌정사에 유래 없는 사상 초유의 일들을 만들어낸 제조기로 통한다. 윤 전 총장은 헌정사 최초로 검찰 인사에서 배제된 총장으로 남게 되었고, 최초의 직무 배제와 징계를 받은 총장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물론 법원이 두 차례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윤 전 총장 손을 들어주어 오뚝이처럼 기사회생했지만, 死地(사지)에서 극적으로 生還(생환)하는 동안의 윤 전 총장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윤 전 총장에게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더욱 커져만 갔고, 국민들의 그러한 기대는 그대로 윤 전 총장의 지지율로 이어졌다.

현 집권세력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검찰 기수를 파괴하면서까지 대전고검 검사였던 윤 전 총장을 검찰 내 최고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했으며, 꽃가마에 태워 검찰총장에 앉힌 사실은 분명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의 윤 전 총장 옹호 발언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면서 윤 전 총장을 향해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부르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던 사실은 많은 국민들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집권세력이 윤 전 총장을 향해 이제는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이며 국무총리까지 나서 “국민을 선동하는 발언과 행태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이제 윤 전 총장은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20대 대선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됐다. 윤 전 총장이 직접 20대 대선 주자로 뛰지 않더라도 현 정권과 맞서 싸운 윤 전 총장이 손을 들어주는 진영이 승리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검찰총장에서 퇴임한지 이제 나흘밖에 되지 않는 윤 전 총장에게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퇴임 시 짧은 입장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다짐만은 꼭 지켜주었으면 한다. 특히, 윤 전 총장이 지난 3일 대구고검·대구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수사청에 대해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는 촌철살인으로 이슈 파이팅에 강한 면모를 보인 것에 비추어 볼 때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선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의 될 것임에 틀림 없다. 충청인의 한 사람으로서 윤 전 총장이 영·호남 패권에 예속된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고, 무너진 정의와 상식을 바로 세우는 정치의 선봉에 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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