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을 출신의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지난 7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을 패싱하고 검사장급 4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한 것과 관련하여 문재인 대통령마저도 사후 결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정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대전시는 구 충남도청사 훼손으로 인해 지역 민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소유권도 갖고 있지 않은 이번 대전시의 구 충남도청사 훼손 사건은 졸속행정을 넘어 국민의힘 대전시당의 논평 제목인 ‘불법, 도덕 불감증, 가치관 부재 여실히 드러난 대전시 행태’라는 표현처럼 대전시 행정력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 충남도청사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나 충남도로부터 사전 허가도 득하지 않은 채 담장에 식재된 50년 이상 수령의 향나무 172그루 중 128그루를 벌목하고, 담장과 부속 건물을 정비하는 등 무단으로 공사를 강행해놓고도 문제가 불거지자 “문체부와 네 차례 정도 구두로 협의를 진행했지만, 서면 행정처리가 미흡했다”는 해명을 늘어놓는 담당 국장의 해명은 정말 기가 찰 지경이다. 특히, 이번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시민단체 출신의 담당 과장은 “이번 일로 행정에 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신의를 가지고 기관과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공문서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실책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이번 사태는 대전시 한 공무원의 이야기처럼 행정을 떠나 기본적 상식의 문제다. 해명에 나선 담당 국장이나 과장에게 대한민국 어느 공공기관에서 공적 업무를 처리하면서 구두로 협의를 진행하고, 공문서 처리를 하지 않는 기관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사태는 허태정 시장이 민선 7기 시장으로 당선된 후 시민단체 출신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계선조직에 임명할 때부터 이미 예견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명령복종의 권한 관계로써 계층화된 조직인 계선조직은 행정조직 首長(수장)으로부터 국장-과장-팀장-팀원에 이르기까지 명령과 복종 관계를 가진 수직적인 조직형태를 갖고 있다. 이런 계선조직에 ‘어공’ 한 명이 들어가서 기존의 ‘늘-공(늘 공무원)’들과 화학적 결합을 이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허 시장 이전 4명의 민선 전임 시장들이 ‘어공’을 임명할 경우 계선조직이 아닌 정책목표에 관한 자문·권고·건의를 행하거나, 협의·정보 판단 등을 도와주는 참모조직에 임명했던 것이다.

정치인 출신 시장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지만, 시민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일은 허 시장의 姑息之計(고식지계)와 같은 사후 처리 방법이다. 허 시장은 해당 업무를 추진했던 시민공동체국 업무 전반에 대해 자체 감사에 착수하여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천명했지만, 감사를 지휘하게 될 신임 감사위원장 내정자가 바로 해당 사업이 한창 추진되던 지난해 시민공동체국장을 역임하며 전결권을 행사한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허 시장이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확실하게 바로잡고, 당사자들에게 一罰百戒(일벌백계)할 생각이라면, 이런 식의 사후 처리를 할 것이 아니라 감사원에 감사 청구를 했어야만 한다. 그랬다면 허 시장은 시민들로부터 이번 사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진정성만큼은 최소한 인정받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이 22일 오후 2시 대전지방검찰청에 고발을 예고하면서 검찰로 넘어가게 됐다. 검찰에서 명명백백한 是是非非(시시비비)를 가려주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검찰과 법원의 판단 이전에 시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대전시의회도 즉각 이번 사태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여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만이 자당 소속 시장을 감싸주려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문화유산이 부족한 대전시에 있어서 구 충남도청사는 6.25 전쟁 당시 임시수도로 사용되는 등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근대건축물로 대전의 어제와 오늘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의 상징적인 근대건축물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자행한 해당 과장은 자신의 분명한 실책을 인정한 만큼 즉각 사퇴하고, 대전시는 충남도의 원상회복 요구에 따른 손해배상에 대해 차후에라도 관계된 공무원 모두에게 求償權(구상권)을 행사하는 등 반드시 책임을 물어 시민들이 분통이 터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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