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의 신축년 설 연휴가 끝났다. 미증유의 사태인 코로나19로 인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일컬어지는 설 연휴가 올해처럼 명절 기분을 만끽하지 못했던 것은 대다수 국민들의 대체적인 느낌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새해 달력에는 매년 1월 1일부터 3일까지 빨간색 공휴일로 ‘신정’이라고 표시되어 있을 뿐 우리의 전통 명절인 설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지 못한 채 검정색 글씨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도 많은 국민들은 정부에서 신정을 지내라는 강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설날이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을 지켜왔다. 특히, 일제 강점기 당시 ‘전통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하여 설날을 지내지 못하도록 탄압했지만, 일제의 총칼로도 굴복시키지 못한 것이 우리 고유의 명절 설날이라는 것에 비추어보면, 이번 설 명절이 유독 허전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외아들이면서 시골 집성촌에서 거주했던 관계로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설날이면 아버지와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한 후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져왔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다행히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는 설날이 겨울방학과 겹치고, 일요일과 겹치면서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4학년에 올라가기 전인 1985년 설날은 겨울방학도 일요일도 겹치지 않게 되면서 학교 등교냐 아니면 학교를 결석하고 지금까지처럼 설날을 지내야 하느냐의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내 생각보다는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야 할 상황이었지만, 아버지께서는 하루 학교를 결석하더라도 설날에는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셨다.

다행히도 전두환 정부에서 1985년 2월 20일 설날을 ‘민속의날’이라는 명칭으로 긴급히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게 되면서 학교를 결석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1895년 을미개혁으로 사실상 폐지되었던 설날을 90년이 지나서야 되찾게 된 당시 국민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때 어르신들이 “이제 구정도 공휴일이 된 것이냐?”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민속의날’이라는 명칭은 이후 1988년까지 지속되다 직선제를 통해 탄생한 6공화국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면서 1989년부터 ‘설날’이라는 명칭을 되찾았고, 3일이라는 기간 동안 공휴일로 지정하게 되면서 온전한 우리의 설날을 찾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과거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모하면서 예전의 설 명절처럼 온 동네가 떠들썩한 풍경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민족 최대의 명절답게 설날이면 아이들 손을 잡고 부모님을 찾아뵙고, 차례를 지내는 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는데, 이번 설날은 정부의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방침에 따라 차례도 늙으신 부모님에게만 맡겨 놓고, 세배도 영상통화를 통해서 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정부가 15일 0시부터 28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하향 조정하면서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를 유지하는 가운데, 비동거 직계가족은 예외라고 발표했다. 벌써부터 이럴 거면 설 연휴에도 비동거 직계가족의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의 예외를 인정해주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고심 끝에 설날 연휴 비동거 직계가족까지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결론을 내렸겠지만, 올해 설 연휴를 마무리하면서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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