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2021년 1월 20일- 어제는 24절기의 마지막 대한이었다. 4×6×15=360. 한 계절에 6개씩 보름마다 드는 24번이 끝난 것이다. 이는 자전하면서 밤낮을 만드는 지구가 해를 한 번 크게 공전했다는 뜻이다. 그 ‘한 해’의 셈법에서 360°는 지극히 온당하다. 물론 대괴의 축이 23.44° 기울어서 1년이 정확하게 365일 5시간 48분 46초인데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두어 맞추게 된다. 이제 새봄 입춘절 마중 채비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 대한에는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의 성도절成道節이 함께 들었다.

‘육합六合’은 사방과 그 상하, 곧 우주를 지칭한다. 여기에 불국에서는 ‘시방삼세十方三世’로 사방을 더 나눈 10개의 방향과, 그것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울러 말한다. 여하튼 35살의 시타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시방삼세의 도道 ‘야뇩다라삼막삼보리無上正等正覺’을 깨쳐 부처佛陀가 된 그날이 바로 성도절이다. 기원전 6세기경인데 그 시기에 공자와 노자, 그리고 100년 뒤 소크라테스가 살았었다. 칼 야스퍼스 식으로 ‘축의 시대’가 열려, 종교와 철학이 시작된 것이다. 한동안 전해지던 당시의 입말은 글말의 문자와 종이로 ‘책’이 되었고, 훗날 새로운 궁리와 사유들이 합쳐져 더욱 풍성해졌다.

우리는 항상 실패했지만 결코 굴복하지는 않았다. 작가와 독자는 한 팀이 되어 실패를 향해 나아간다. 왜냐하면 승리는 항상 죽음에게 있기 때문이다. 가장 오랫동안 죽음에 저항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이다. 멸망한 제국의 이름은 몰라도, 천 년 전 시인들의 작품은 여태껏 남아 있다. 죽음은 망각이며, 특히 단순화이다. 반면 독서는 죽음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거부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복잡성을 회복시킨다. 무덤을 꺾을 유일한 경쟁상대는 결국 도서관인 셈이다. - 샤를 단치,『왜 책을 읽는가』제4부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다,「책, 그리고 독서에 관한 사색」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편집자인 샤를 단치(1961- )는 총 4부에 걸쳐 75개의 명제 아래 ‘책을 읽는 이유’를 석명했다. 가장 짧은 글은 4부의「어떻게 읽을까」인데 “나의 대답은? 체계적으로 읽는다! 열정은 가장 뛰어난 이성이다.” 다음의 단문은 2부의「독서의 쾌락이 끝난 뒤 자부심에 부풀다」로, 브론치노A. Bronzino의 유화「한 청년의 초상」을 내세우고 언표했다. “보라! 이 부푼 자부심을! 책에서 손을 떼자마자 우리의 긍지는 한껏 고양된다.” 아뇰로 브론치노(1503-1572)는 이탈리아의 피렌치파로 초상화의 대가였다.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1540-45). 그의 대표작에는 상징과 비유의 군상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비너스와 큐피트, 소년의 목과 손가락은 비정상적으로 길고, 주변에는 뇌가 없거나, 목이 잘린 두상이 널려 있다. 왼편 아래에는 부리가 노란 새가 한 마리 보인다. 이런 기괴한 초상들 위에 모래시계를 짊어진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오른팔을 한껏 펼쳐 파란색 어둠의 장막을 펼치고 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바로 시간의 신으로 전자가 기계적, 산술적 자체라면 후자는 사람 저마다의 주관적인 그것이다. 문학과 미술의 영원한 주제 ‘사랑’에 대한 그 알레고리는 무궁무진한 해석을 낳고 있다. 유한한 시간 속에 금기시된 에로스를 넘나든 사람들...

「한 청년의 초상」- 화가 겸 시인이었던 브론치노의 작품답게 젊은이는 길디긴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중지로 책 두 권을 끼었고, 왼손은 가지런히 펴서 허리춤에 대고 있다. 새끼손가락의 반지로 보아 미혼일 성싶고, 자신의 왼편을 응시하는 표정은 야무지다. 의상은 군청색 누비옷이고 목에는 스카프를 둘렀다. 배경은 단조로운데 거실 한편인 듯 직선의 벽과 창문이 굳센 의지를 표상하고 있다. 분명히 샤를 단치는 그 그림을 통해 자신의 책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감을 표출하고 싶었으리라! 살아생전 첫 책을 읽고, 외할머니 서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유년기, 법학도였지만 법전보다 푸르스트M. Proust(1871-1922)의 장편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빠져 청년기를 보내고, 32살에 작가로 데뷔해서 중년에 이른 그의 명제는 이렇다.

「글을 배우려는 욕망이 독서의 문을 열다」/ 「첫사랑의 순진함을 되찾기 위해 읽다」 / 「책의 절반을 넘기려고 읽는다」 / 「나의 어둠을 인식하기 위해 책을 읽다」 /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자랑스럽다」 / 「미치광이처럼 책을 읽던 시절」 / 「소설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찾다」 / 「독서는 뇌리에 새기는 문신이다」 / 「조상들의 어리석은 역사를 읽다」 / 「해변에는 애인 같은 책을 들고 간다」 / 「작가의 진정한 상속인은 독자다」 / 「책을 덮고 작가를 본다」

책과의 교제는 일관성과 용이성이 보장된다. 책은 나의 일상에 늘 함께하며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닌다. 나이가 들고 고독한 나를 위로해준다. 지루하고 게으른 시간의 무게를 덜어준다. 나를 성가시게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적마다 나를 거기서 빼내준다. 극심한 고통의 매서움을 완화시킨다. 귀찮게 들러붙는 공상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책에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책은 아주 손쉽게 내 주의를 끌어서 쓸데없는 공상을 날려버린다. 보다 현실적이고 활기차고 당연한 다른 어떤 재미가 없을 때에만 책을 찾는다고 해서 화를 내지 않는다. 책은 언제나 똑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 몽테뉴,『에세』, 3권 3장「세 가지 교제에 관하여」

아뇰로 브런치보다 꼭 30년 뒤에 태어난 미셸 에켐 드 몽테뉴(1533-1592). 38살이 되던 해 그는 “남아 있는 삶이나마...” 누구의 방해도 없이 지내다 죽겠노라 다짐하며 고향 프랑스 서남부의 페리고르로 귀향한다. 그러고 지름이 16보, 둘레가 50본 정도인 서재에서 칩거하며 1천 권 남짓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죽은 딸애, 테니스공에 맞아 절명한 남동생, 절친 라 보에시에 이어 신장결석증의 아버지마저 잃고... 가혹하고 기막힌 불행이 떠오를수록 읽어 젖히는 책은 쌓여만 갔다. 종당에 그는 천장에 써 놓았던 저 로마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시구를 지우고,『에세』를 쓰기 시작했다.

더 오래 살아도 새롭게 얻을 낙은 없다!

‘내가 나를 쓴 최초의 철학적 서적’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훗날 유럽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몽테뉴의 글 덕분에 세상을 사는 기쁨이 더 커졌다. 만약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와 함께 인생을 느긋하게 즐기고 싶다!” 청년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몽테뉴에 쇼펜하우어(1788-1860)를 더하고, 감격해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세 가지 오락이 있으니, 첫째는 나의 쇼펜하우어, 둘째는 슈만의 음악, 마지막은 혼자만의 산책- 그는 말년에 정신병원으로 끌려갔지만 어머니가 데려와 자애로운 간호를 받게 된다. 모친마저 절명하자 누이동생이 돌보았는데 눈물의 나날이었다. 정신이 얼마간 돌아온 날에는 말을 건넸다. “리스베드! 왜 우느냐?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더냐.” 또한 이런 말도 자주했다. “아! 나도 좋은 책을 몇 권인가 썼었지...”

족자 하나가 겨우 완성됐네. 머리는 대머리이고 이는 빠져서 만사를 물리치는 처지이니 손끝을 탓할 수 있겠나? 그 가운데 가장 안쓰러운 것은, 노년의 소일거리가 오로지 책을 보는 일 뿐인데 요즘은 책장을 덮으면 바로 잊어버린다는 것일세.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들려주겠네. 한 노인네가 늘 같은 책만 보고, 다른 책으로 바꿔 읽지 않자 누가 그 까닭을 물었지. 그 노인 대답이 이러했다네. “나는 날마다 보지 못한 새 책을 보고, 읽는데 어째서 매양 같은 책이라 하는 거요!” 소담집에나 들어갈 이야기인데 요즘 내 모습을 잘도 비유했더군. - 조희룡,『수경재해외척독壽鏡齋海外尺牘』

조선 후기의 서화가 조희룡(1789-1866)은 1851년 ‘왕실전례’에 연루되어 임자도에 2년간 유배되었다. 추사 김정희의 조아爪牙- 손톱과 어금니처럼 부리는 심복이라 불릴만큼 서체와 화풍을 전수받았는데 특히 매화와 난이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절해고도에 감금되었지만 일상을 즐기며, 뭍의 친구들에게 수시로 편지를 썼다. 짧지만 인간미 넘치는 척독을 받은 문우들이 어찌 외면하겠는가? 새 서적을 구하지 못하는 신세라 매일 같은 책만 뒤적인다는 애먼 노인의 하소연을... 훗날 제주도의 서귀포 대정리에 위리안치된 완당선생 역시 제자들을 통해 청나라 서책을 읽었다. 그 수고와 고마움의 증표가 바로「세한도」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에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터. 이를 따뜻한 봄볕에 말린 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 번 단련한 금침으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으로 축을 만들어 가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 이덕무,『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조선의 책 바보 이덕무(1741-1793). 가장 조선적이자 실학적이고, 독창적인 시문을 쓴 아정은 서자 신분이었지만 정조대왕의 배려로 규장각의 사검서로 특채된 인물이다. 평생 찌든 가난에『논어』를 병품 삼고,『한서』를 이불로 엄동설한을 나고, 책을 살 돈이 없어 남의 책을 승두세서蠅頭細書- 파리 대가리처럼 잔글씨로 베껴가며 읽었지만 불평 한마디 없는 책벌레였다. 그저 친구 같은 책, 책 같은 친구들과 교류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연암 박지원은 그의 글들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옛날로 말미암아 지금 것을 보면 지금 것이 진실로 낮다. 그렇지만 옛사람이 스스로를 보면서 반드시 스스로 예스럽다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보던 자도 또한 하나의 지금으로 여겼을 뿐이리라. 그런 까닭에 세월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변하니,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엔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으로부터가 옛날인 법이다. 시경 3백 편은 새나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 아닌 것이 없고, 뒷골목 남녀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성인이 환생해 이덕무의『영처고』를 읽는다면 강원도 사내와 제주도 아낙의 성정을 비롯해 조선의 여러 미물을 알게 되리라. - 박지원,『영처고서嬰處稿序』

영처는 영아와 처녀를 가르키는 말이니,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스러운 생각을 담은 글이고, 처녀처럼 남에게 보여주기에 수줍고 부끄럽다는 뜻에서 제목으로 삼았다. 그 문집의 서문을 쓴 연암이 단언한다. “지금으로부터가 옛날인 법이니 그대의 시문이 새로운 ‘옛날’이 되리라!”

「뱀의 다리와 토끼의 뿔」: ‘밑줄 이야기’는 뉴스티앤티newstnt.com에 연재하는 격주 칼럼입니다. 저의 주창이나 이즘보다 감명 깊게 읽고, 새기는 ‘책’을 공유하자는 뜻이 더 큽니다. 글빚 인양 여기지 마시고 그냥, 그저 읽어 보시면서 작디작은 가시 정도로 치부하시기 바랍니다. 2021년의 새해 나날이 건승, 건필하시길 비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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