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주한미군 소방관의 딸이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담은 사진 보내와
1964~65년 함께 일했던 한국인 소방관 동료들 만나고 싶지만 찾을 수 없어
1964년 주한 미군 소방관으로 대구에서 2년 동안 근무했던 페이 쉘라(Fay Shalla, 2020년 작고, 남) 씨의 당시 근무 사진 10장이 공개됐다.
올해 초 작고한 페이 쉘라 씨의 딸인 크리스티 쉘라(Kristi Shalla, 여, 45세)가 보내준 사진들이다.
크리스티 쉘라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한국과 당시에 함께 근무했던 한국인 동료들을 만나 볼 수 있기를 원해 수소문을 했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소방청에서는 이 사진들을 공개하고 당시의 소방대 동료나 어린이 친구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당시의 한국인 동료들이 80대 이상의 고령이 되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은 생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언론은 물론 미8군 소방대의 협조를 얻어 사진 속의 사람들을 찾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인 페이 쉘라 씨는 네브래스카주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다가 미 육군에 입대한 다음 1964년 대구 미군기지에 배치되어 소방관으로 일했으며 1965년 네브래스카로 돌아가 다시 소방관으로 일을 했다.
페이 쉘라 씨는 제대군인원호(GI Bill) 사업으로 군 제대 후 대학에 입학해 역사학을 전공하고 1971년에 학위를 받았다. 1966년 허리가 아파 소방관을 퇴직한 후에 농무부(USDA) 식품영양국에서 푸드 스탬프(Food Stamp) 지급을 승인하는 업무 등을 했다. 2000년까지 공무원으로 일을 하다가 퇴직했으며 올해 초 별세했다.
이 사진들은 크리스티 쉘라 씨가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소방관으로 일했던 당시의 사진을 발견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이다.
크리스티 쉘라 씨에 따르면 아버지는 대구에서 한국인 동료들과 현장에 출동해 화재를 진압했던 경험을 비롯해 2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늘 그리워했다. 특히 한국 어린이들과의 즐거웠던 추억을 가족들에게 자주 들려줬다고 한다. 당시 미군기지 주변에 살던 어린이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어린이들이 말했던 아이스께끼(ice-cakie)라는 단어를 가족들이 기억하고 있을 만큼 어린이들 이야기를 자주 했으며 좋아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