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변호사(전 법무연수원장, 전 대전지·고검장) / 뉴스티앤티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누님의 구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얼마 전 예전에 제가 다녔던 직장 선후배들 모임이 있어 나갔습니다. 한참 후배인 어느 친구가 저에게 올해 나이가 얼마냐고 물어보더군요.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아직 십삼 년 남았어.’ 그 뜻이 무엇일까요. 백 살까지 십삼 년 남았다는 뜻입니다. 아직 정정합니다. 오늘 구순을 맞이하신 우리 누님은 아직도 십 년 남으셨습니다. 모두 백수 합시다. 아니 백이십수 합시다. 이제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형제, 가족 여러분과 함께 누님의 구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며칠 전 어머님 구순 모임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90세까지 사신다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구순을 간소하게 하자는 어머님 뜻에 따라 가족과 친지 14명이 모여 축하연을 하였습니다. 위 말씀은 그 자리에서 어머님의 큰 남동생께서 하신 축하 말씀 중 일부입니다.

“아직 십삼 년 남았어.”라는 말이 뇌리를 울렸습니다. 나이를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100세를 기준으로 몇 년이 남았는지 계산하는 나이 셈법은 저의 사고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어머님께 그저 “오래 사세요”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늘 스테레오 타입으로 어머님은 이렇게 답변하시지요. “너무 오래 살았어.” 이 질문과 답변에는 감동이 없습니다. 늘 하는 의례적 말이지요.

“어머님, 백수까지 이제 10년 남으셨습니다. 건강하게 백수하세요.”라고 덕담하는 것은 목표가 설정되고 힘이 느껴지며 의지가 솟아오릅니다. 말을 하는 저도 듣는 어머님도 같은 심정이실 것입니다. 아마도 어머님이 백수하시면 덕담은 이렇게 바뀔 것입니다. “어머님, 이제 10년 남으셨습니다. 백십 수까지.”

식사 전에 간단한 행사를 하였습니다. 저도 한마디를 하였습니다. “오늘 와주신 큰 외삼촌, 큰 외숙모, 작은 외삼촌, 작은 이모, 이종사촌 큰누나, 작은누나, 작은 매형은 어머님과 수십 년을 함께 해 오신 정말 소중한 분들이십니다. 어머님이 힘든 시기를 보내실 때 옆에 계셨고 어머님이 행복하실 때 같이 즐거워 해주신 분들이십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머님은 지금도 당신이 직접 손수 밥을 해 잡수시고 집안일을 하십니다. 아니, 밥을 해 놓고 아래층에 사는 저희 가족들에게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실 정도로 건강하십니다.

이런 어머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어머님의 옛날이야기를 들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일을 너무나도 잘하지 못합니다. 어머님의 힘든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저의 힘든 시절 이야기를 회상하는 것이라 단 5분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가장 즐거운 일은 그 옛날이야기를 회상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제가 잘 못 하는 이 일을 도와주십시오. 어머님을 위하는 일은 어머님과 시간을 같이하고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어 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오 년 전 어머님이 팔십오 세가 되던 해, 저는 어머님께 자서전 [엄마 김영순]을 만들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자서전을 만들게 된 계기도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일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엄마 김영순]을 출간한 직후 쓴 2012년 10월 22일 자 월요편지에 그 당시 생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저는 어머님이 마음 놓고 옛날이야기를 하게 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하지 못 하는 일을 누군가가 아르바이트하는 셈 치고 어머님의 이야기를 열 시간이고 백 시간이고 들어드리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지 어머님의 이야기만 들어드린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글로 엮으면 어떨까 생각하였습니다. 저의 꿈은 친정엄마라는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고혜정 씨를 만나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제 이야기를 듣더니 자신이 해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와 어머님의 데이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데이트는 올봄에 시작하여 여름에 끝이 났습니다. 전부 열 번. 작가는 그 열 번의 데이트를 감칠맛 나는 글솜씨로 엮어 작은 책자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작은, 정말 작은 출판기념회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념회를 위해 저는 어머님의 일생을 담은 20분짜리 [엄마 김영순을 이야기한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내레이터가 책 내용 일부를 읽는 형식이었지만 어머님의 인터뷰가 중간중간 들어가 저희 가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저는 구순 축하연 말미에 이 동영상을 틀었습니다.

“나는 근호 엄마, 태관이 엄마로 평생을 살았다. 손주들이 태어난 후로는 윤아 할머니, 정민이 할머니, 현재 할머니, 현진이 할머니로 살고 있다. 그러나 내 이름은 김영순. 태어나 결혼하여 큰아들 조근호를 낳기 전까지 나는 김영순이라는 이름의 여자로 살아왔다. 내 나이 여든다섯. 나에게 김영순은 과연 남았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인생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제 나에게 남겨진 것은 죽음을 향한 몇 발자국뿐인가?”

이 동영상은 이런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수십 번도 더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독백을 들을 때마다 어머님의 독백이 아니라, 저의 독백으로 들렸습니다. 어쩌면 모든 이의 독백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인생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아마도 우리가 스스로 던지는 가장 궁금한 질문은 바로 이 질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답을 얻지 못하고 끝날 질문이기도 하지요. 답을 얻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매일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을 어머님은 스스로 던지고 계신 것입니다.

이 동영상은 어머님의 마지막 육성 인터뷰로 끝이 납니다.

“지난 세월 고통도 많았고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희망이 있어 한 번도 좌절하지 않고 버텨냈습니다. 그때 옆에 있어준 친척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모두 어머님의 구순을 축하드리며 밤이 깊어 갔습니다. 어머님은 그날 그 자리에 모인 분들과 남은 인생을 살아가실 것입니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사이좋게 때로는 다투며 살아가실 것입니다.

그 나날이 어머님께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어머님의 마지막 인터뷰처럼, 인생이란 희망을 가지고 좌절하지 않고 버텨내는 것 아닐까요. 늘 감사하고,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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