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진인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다시 한 번 구설에 휘말렸다. 박 의원은 지난 5일 개최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심사 전체회의에서 법원의 판례 모음인 ‘법고을LX’ 사업의 예산이 지난해 3천만원에서 0원으로 삭감된 것과 관련하여 대법관인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법고을LX 사업 예산을 살려야 하지 않겠냐”면서 “의원님들 살려주십시오 한 번 하세요. 아니, ‘살려주십시오’ 한마디 하시면 끝날 일을 참내 답답하시네”라고 표현하며 물의를 일으켰다. 박 의원이 즉시 “예산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에 법원행정처장님께 예산을 살려달라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 그러한 표현으로 질의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을 했지만, 박 의원의 해명이 국민들의 피부에 쉽게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판사 출신의 박 의원이 친정인 대법원의 ‘법고을LX’ 예산 삭감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면, 법원행정의 최고책임자이자 대법관인 조 처장을 향해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사가 아니라 먼저 법사위 동료 의원들을 설득했어야만 한다. 박 의원이 법사위 동료 의원들 한명 한명을 상대로 ‘법고을 LX’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법고을 LX’가 판례와 논문 등 정보검색에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법원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예산이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득했다면, 친정인 대법원에서도 매우 고마워했을 것이고, 박 의원의 眞價(진가) 또한 올라갔을 것이다.

오죽하면 부장판사 출신의 장동혁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이 박 의원을 향해 “대통령에게 ‘대전을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라고 한마디 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섰을까? 3선 중진 의원으로서 자신의 지역구에 위치한 중소벤처기업부의 세종시 이전을 누구보다도 먼저 몸으로 막아야 할 입장인 박 의원이 이런 구설에나 휘말리고 있으니 지역구민들과 대전시민들은 답답한 노릇이다.

특히, 장 위원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회는 필요성과 타당성을 따지지 않고 ‘의원님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라고 애걸하면 국민의 세금을 쌈짓돈처럼 던져주는 곳인가? 국회의원들은 대법관이나 장차관이 ‘의원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굳이 깎지 않아도 되는 예산을 깎고 있는 것인가?”라고 비판한 내용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는 비단 박 의원 뿐만 아니라 많은 국회의원들에게서 눈살을 찌푸릴만한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행동을 자주 목도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임은 분명하다. 즉,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민의 심부름꾼이어야 하는데, 실제는 국민의 대표라는 점을 내세워 행정부나 사법부를 향해 큰소리를 치고 호통만 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달 끝난 2020 국정감사에서도 호통만 난무했지 대안 제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문제는 예산심의 권한이라는 막강한 국회의원의 권한 앞에 장차관도 심지어 대법관조차도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현실에서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우리의 심부름꾼이라고 여기지 않는 점이다.

선거 전 당선을 위해 고개를 숙이며 지역 발전과 국가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처럼 떠벌리지만, 당선된 뒤 목에 힘이 들어가고, 선거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정치인을 불신하게 되었고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더 이상 국민들이 정치인을 불신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상황이 지속되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국회의원들 스스로 자신의 특권의식을 내려놓을 때만이 대한민국의 정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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