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를 위해 '바르게, 아름답게 살자'

김강중 편집국장
김강중 편집국장

K형, 또다시 가을입니다.
어제 추적추적 내린 가을비 때문인지 제법 날씨가 스산합니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시골집을 찾았습니다. 통창 속 곱게 물든 단풍은 마지막을 앞둔 불안한 환희처럼 느껴집니다.
화단의 매화나무가 와락 쏟아놓은 낙엽  또한 꽃만큼 예쁘더군요.

고즈넉한 앞산은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하기만 합니다.
나무들은 자연의 섭리를 아는 듯 물을 내리고 잎새를 떨꾸고 있네요.
한낱 나무들도 이런 이치를 알고 재생을 준비하는 지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꽃은 꽃을 버릴 때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릴 때 바다에 이른다고 했던가요.
나무와 꽃들도 버림과 비움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탐욕스럽게 천년을 살 것처럼 허상을 쫓는 아귀다툼의 화상들을 보면 연민이 듭니다.

우리네 삶도 이처럼 자연의 이치를 닮을 수는 없을까요.
계절의 순환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이거늘 우매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앞물이 뒷물에 밀려 바다로 나아가듯 인생도 바다로 향하는 여정과 같은 게 아닐까요.

K형, 돌아보면 올해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한 해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세상이 내년 말까지 지속된다고 하니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를 단박 '비대면 원격사회'로 변모시켰습니다.
직장에서는 재택근무, 화상회의, 유연 근무제, 시간 선택제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또 AI와 로봇 등 기계가 대신하면서 노동이 사라지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코로나블루는 우리의 삶을 더욱 피폐하고 삭막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측하기 힘들고 불안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거리두기로 여행가기가 어렵게 됐고 영화나 야구장, 그 흔한 축제도 볼 수가 없습니다.
'밥만 먹고 사냐'고 투덜대던 아내의 말이 실감나는 한 해였습니다.

사람과 동물을 가르는 것은 영혼의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코로나가 일깨워 준 것이지요.
뿐인가요. 기성세대는 그렇다해도 젊은이들은 갑갑증만 아니라 암담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불황에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게 되었지요.
운동장에서 놀아야 할 학생들은 '집콕 인강'으로 때운 수업도 고문이었을 것입니다.

어른들도 지인들과 술 한 잔, 밥 한 끼도 나누지 못하는 별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식당, 술집 등 수백만 자영업자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양속인 애경사도 참석하지 못하는 서글픈 세상이 된 것이지요.
경조비를 계좌번호로 보내고 전화 한 통 건네다보니 서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대면해야 먹고사는 서민들 서비스 업종의 몰락은 20여 년 전 IMF를 방불케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 자제, 일상이 단절되면서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K형, 이런 세상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온 것이지만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이제는 괴로움을 낙엽처럼 날려버리고 혼자 사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생각은 이러하나 어리석음이 많아서 고요함과 시끄러움을 시비하고 있으니 쉽지 않은 일이네요.
이순(耳順)을 넘기고도 '호불호'를 따지고 허깨비에 매달리고 있으니 헛살았다는 생각입니다.

유독 가을을 타는 것일까요. 지난 온 삶을 되새기니 기쁨은 잠시이고 외로움과 괴로움의 연속입니다
또한 바르게 살면 권태이고 재미나게 살려면 변태로 살아야하는지 혼돈스럽기도 합니다.

엊그제 타계한 고(故)이건희 회장, 재수감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인생 월세 아니면 전세인데 왜그리 아등바등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폼새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대박 아니면 쪽박, 양단의 인생이지요.
사람으로 살기, 짐승으로 살기 둘 중 하나란 생각입니다.

불의와 협잡만 난무하고 정의와 대의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후대들이 무엇을 배우고 공의(公義)를 실천할지 심히 걱정입니다.

자본과 권력이 결탁해 더 많은 부를 쌓고 명예에 매달리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그런 나라가 된 것이지요.

우리 사회는 부와 명예를 쌓으려면 그만큼의 추악함을 수반해야하는 구조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됐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새삼 떠오르는 오늘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니어도 취기가 돌면 사람들은 '진실하게, 아름답게 살자'를 외쳐댑니다.

K형, '테스형(兄)'의 말처럼 '바르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참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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