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새로운 과거, 오래된 미래의 은밀하고 위대한 ‘사물들’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새로운 과거, 오래된 미래의 은밀하고 위대한 ‘사물들’
  • 김래호 작가
  • 승인 2020.10.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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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사물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하는 말- 창조주의 ‘만물’과 비슷한 낱말이지만 철학 용어로는 인간과 연관성을 갖는 개념으로 사유의 대상이다. 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열 개의 범주 즉 본질, 질, 양, 관계, 행동, 정열, 장소, 시간, 상황, 존재 방식으로 구분했다. 라이프니츠의 여섯 개의 범주는 한 실체의 양, 질, 관계, 행동, 정열이다. 칸트는 네 개의 큰 범주로 양, 질, 관계, 양태를 제시하고, 하위에 총 12개의 부류를 열거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물’들은 이런 틀에서 파악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물을 흔히 실용적인 것이나 아름다운 것, 필수품이나 헛된 사치품으로 여긴다. 반면 사물을 정서적인 삶의 동반자라든가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제로 생각하는 데는 익숙하지 못하다. 의미 있는 사물evocative object이라는 개념은 이런 두 개의 낯선 접근법을 합한 것으로, 우리와 사물 사이에서 생각과 느낌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물을 통해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 우리는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사물들을 사랑한다. - 셰리 터클 엮음『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프롤로그 

셰리 터클(1948- )은『스크린 위의 삶』,『탈육체성 다중 정체성』,『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외로워지는 사람들』 등의 저서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주도적인 사상가로 각광받는 인물이다. 실재와 가상, 모호한 경계선, 멀티 테스킹, 디지털 흔적, 인터넷 삭제... 그녀가 제시한 용어들은 새로운 학문의 영역으로 연구되고 있다. 현재 미국 메사추세츠공대 과학사회학부 교수와 MIT 기술 자아 운동의 책임자인데 주된 관심 분야는 휴먼 커넥션의 무한 확장과 함께 제기되는 자아의 정체성과 도덕성, 윤리 문제이다. 

사물 인터넷internet of all things으로 집적되는 제4차 산업혁명! 물리학, 생물학, 인지심리학 등 상호 연결된 기술과 다양한 플랫홈을 기반으로 한 사물-제품, 서비스, 장소-과 인간의 관계는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 이는 2천 5백여 년 전 노자의『도덕경』제73장의 경구의 체현인지도 모른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疏而不失: 하늘의 망은 넓고 커서, 빠뜨리는 것이 없다- 유무 그 있고, 없음의 0과 1이 곧 디지털 방식이니 과장된 언사는 아니다. 

몇 년 전 프랭클린 박물관에 갔다. 30년 전,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추가 바뀌었고, 원형방위도 자리에는 배면관이 들어오는 지구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동안 나는 그 박물관에 전시된 진자는 물론이고, 전시대와 동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진자와 역사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자구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게 푸코의 진자는 ‘심오한 사물’이다. 호기심과 끌림을 세련되게 가다듬어 소통과 자발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깊이 있는 사물이다. - 앞의 책 로버트 P. 크리스「푸코의 진자」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에는 하버드와 코넬, MIT 등 세계 유수 대학의 석학 34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들은 각자 사물을 하나씩 선택하고 어디서 얻었는지,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등등 연상되는 내용을 기술했다. 셰리 터클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잃으면 우리 내부에서 그 사람이나 사물을 되찾는 과정을 시작한다.“는 프로이트의 정언을 인용하면서, 사물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역동적인 존재로 자기 창조에 힘을 늘 불어넣는 것“으로 규정했다. 

첼로, 자료보관소, 매듭, 별, 키보드, 불사조 슈퍼 히어로, 할머니의 밀대, 발레 슈즈, 노란 우비, 우울증 치료제, 멜버른 기차, 월드북 백과사전, 라디오, 사과, 지오이드 ...... 이 사물들은 글쓴이들 저마다의 평생을 관통하는 매개물로 연구분야를 심화시키고, 난관을 헤쳐 나가는 근터리가 된다. 그런데 정독해보면 주된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바로 ‘어린 시절과 가족, 자아의 발견’- 이 세 가지다. 그러니까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은 소싯적에, 직계 가족이나 친척들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수립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윌 듀런트는 세기적인 저서『철학 이야기』「칸트에의 길」에서 이렇게 정언했다. ”정치학에 있어서처럼 철학에 있어서도 두 점點 사이를 잇는 직선은 가장 긴 선線이다.“ 칸트는 공간과 시간이 경험의 소산임을 부인하고 오히려 사람의 정신이 감각을 덮는 개념으로서의 범주임을 주창했다. 풀어보면 시공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험적인 소여’일 뿐 단순히 이해의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앙리 배르그송의 생의 철학이 시간에 중요한 위치를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온당하다. ”무엇인가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어디엔가로 열려 있는, 시간이 기록되는 장부가 있다!“ 시간의 물리적인 코로노스가 아닌 주관적인 카이로스의 진정성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 19의 장기화 국면에서 여러 사회학적 담론 속에 ‘집’이 재발견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탈 대도시 바람이 불고, 한국 역시 밀집된 아파트 숲을 떠나기 시작했다는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다. 직장과 주거가 가까운 ‘직주근접’보다 ‘직주일치’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재택근무 그 직장과 주거의 일치성은 이미 제4차 혁명시대의 전개와 함께 예고된 것이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 컴퓨팅과 모바일폰의 인터넷, 사물 인터넷 세상에서는 지리적 공간개념은 갈수록 희박해진다. 밀집과 밀폐된 도심의 사무실로 밀접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 전염성 바이러스로 정주자가 떠난 도심은 ‘공적 공중공원’으로 변모하고, 자연친화적 압축도시의 재건설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한편으로 시간은 여전히 삶의 중대한 축으로 유지되면서 더욱 가치를 높이고 있다.     

비단 직물로 짜여진 10억분의 1초들의 영원성을 양모로 이루어진 분分들이 일단 건너가면, 그것들이 쌓아올려져 시간들이 되고, 이는 다시 날日들의 두툼한 옷감으로 짜이고, 차례로 주週들과 달月들로 꿰매진다. 한때는 이랬던 것 아닐까? 빽빽하게 수놓아진 작년들이 계절들의 향기로운 옷장 속에 개켜져, 시대들의 방대한 장롱으로, 역사의 얼레부터 지구에 대한 우리 이야기의 첫 가닥이 자아져 나온 것으로 넘겨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모든 날실과 씨들 속에서 정확히 언제-혹은 어쩌면 어떻게-시간은 보물이 되기를 그치고 대신 통근시간대 운전석에 앉은 이의 안달복달로 바뀌는 것일까? - 퍼트리샤 햄플『블루 아라베스크- 한 점의 그림으로 시작된 영혼의 여행』「독방」

시간은 그 불가역성에 의해서만 공간과 구분된다.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이론적으로 언제나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시간 안에서는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사람들은 이 불가역성을 ‘24시=0’이라는 조잡하지만 매우 합리적인 방정식으로 제거해버렸다. 그러면서 오늘의 패배를 거울삼아 승리의 내일, 1주, 1달, 1년을 꿈꾼다. 이것이 여느 동물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사람만의 반성과 회한, 계획 그 자기 인식성이다. 햄플은 사람들이 이런 ‘보물’의 시간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코앞의 ‘출근 시간’에만 안달복달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네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러했다. 네가 하는 일은 그저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언젠가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다. 모든 것이 이미 내 안에 있다...... 그가 보기에 세상을 알고 사람살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행을 하고 이러저러한 경험을 쌓아야만 할 듯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마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일 뿐이란 말인가? 그는 줄곧 그런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 베르나르 배르베르 단편소설「완전한 은둔자」

울고불고, 사네 못 사네 아우성 속에 2020년도 문득 늦가을에 이르렀다. 우주의 풀무질은 변함없이 사계절을 순환시키는 법. 봄은 남녘 바다부터 오르고, 북쪽 높은 산정부터 가을이 내려온다. 이제 국화꽃 만발하고, 만산홍엽의 산목들 단풍잎 떨구면 백설이 분분할 것이다. 그렇다.「하루는 작은 일생」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정언에 기대면 좀 더 큰 하루인 1년이 그렇게 개인적인 ‘계절과 시대의 장롱’에 개켜질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새로운 과거, 오래된 미래로 여행케 하는 아포리즘을 톺아본다.「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중의 하나인 바로 그 ‘나무와 숲’- 1974년 그러니까 꼭 46년 전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 국어책의「페이터의 산문」에 처음 등장했었다. 여태껏 그 숲의 나무로 몸과 마음 부리며 살아낸다, 나는. 

인간은 나뭇잎과 흡사한 것, / 가을 바람이 낙엽을 휘몰아 가면, / 봄은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이 모든 것들의 본질은 끊임없이 변하여 흐르는 물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겁의 시간 속에서 너의 생명이 미소微小함을 알라. 무한을 생각해보고 그 속에 네가 차지한 몫을 생각해 보라.  

이녁들이여! 그대의 ‘장소와 시간, 상황’ 등과 관련된 의미가 깊은 사물들을 몇 개나 갖고 있는가? 있다면 그 ‘실체’를 언제쯤, 누구와 어떻게 만났고,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곱씹어 보았는가?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그 ‘관계’를 복원하는 시간여행 해보시길 권면하면서, 진정 아름다운 대니얼 샤모비츠『은밀하고 위대한 식물의 감각법』의 마지막 문단으로 매조지 한다. 

공원을 산책할 때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풀밭의 민들레는 무엇을 볼까? 잔디는 무슨 냄새를 맡을까? 나무가 기억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떡갈나무 잎을 만져보자. 떡갈나무가 당신이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 특별한 나무를 기억하고 나무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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