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5일 개최된 ‘10.4 남북정상선언 13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계몽군주’라고 칭하면서 정치권을 넘어 일반 국민들까지 들썩이고 있다. 유 이사장 본인 스스로 ‘진보진영의 어용지식인’을 자처하고, 아무리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있다고 치더라도 두 차례의 국회의원과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한 인사의 발언치고는 度를(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유 이사장의 발언이 나온 시점이 우리나라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소연평도 인근에서 어업지도를 하다 실종된 후 북한에 의해 사살되었고, 북한군에 의해 시체마저 소각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찌를 듯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 같지 않은 통지문과 관련하여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이전과 다르다. 내 느낌에는 계몽군주 같다”라는 망발을 일삼은 사실은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국민 정서와도 매우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啓蒙(계몽)이라는 뜻은 말 그대로 지식수준이 낮거나 의식이 덜 깬 사람들을 깨우쳐 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가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계몽군주 역시 18세기 유럽에서 계몽사상에 따른 개혁 정치를 단행한 왕들을 일컫는 말로 알고 있다. 대표적인 계몽군주로는 유 이사장이 유학한 현재의 독일 당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를 꼽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으로도 칭해지는 프리드리히 2세는 보통교육 확대를 비롯하여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성문헌법 제정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영토 확장을 통해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국으로 등극시키며 분열된 독일 민족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특히, 프리드리히 2세의 혁혁한 업적을 통해 부국강병을 꾀한 프로이센은 후대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인하여 프리드리히 2세는 아직까지도 독일 국민들에게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으며, 유럽 전역에서도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비견되는 지도자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을 향한 유 이사장의 생뚱맞은 ‘계몽군주’라는 평가는 일반적 상식을 갖고 납득하기가 어렵다. 유 이사장에게 김 위원장이 어떤 통치력을 발휘하여 프리드리히 2세처럼 도대체 북한의 부국강병을 이끌었는지 묻고 싶다. 유 이사장이 김 위원장을 ‘계몽군주’라고 평가하려면, 최소한 프리드리히 2세처럼 국민들에게 신망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 강국으로서의 면모라도 과시해야 하는데, 북한의 실상은 전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이며, 불량국가라는 이미지까지 떠안고 있다.

또한 유 이사장에게 지난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3대 세습에 들어간 김 위원장이 집권 2년 만에 자신의 고모부를 총살하고, 6년이 채 안 돼 이복형을 독살한 것이 과연 ‘계몽군주’의 자격에 해당하는지 묻고 싶다.

유 이사장이 이번 사태를 덮기 위해 아무리 김 위원장을 높게 평가하려고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비무장한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었고, 그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소한 일국의 장관까지 지낸 인사라면, 김 위원장과 북한을 향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것이 故人(고인)과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대국 최고지도자를 향해 ‘계몽군주’라고 표현하며, 마치 김 위원장을 찬양하는 듯한 유 이사장의 언사는 惑世誣民(혹세무민)으로 국론 분열을 가중시키고, 북한을 대변하는 것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유 이사장은 끝으로 김 위원장을 향한  ‘계몽군주’ 발언에 대해 처절한 자기반성을 하길 바라며, 한 때 정치적 동지로서 자신과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활동했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김 위원장을 향한 ‘계몽군주’ 발언에 대해 “북한은 계몽군주 남한은 昏君(혼군)”이라고 꼬집은 사실을 반드시 곱씹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