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위선....신랄한 비판 겸허히 받아들여야

김강중 편집국장
김강중 편집국장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유입 6개월이 지났으나 언제 잦아들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런 사이 국민들은 감염의 두려움, 경제에 대한 불안감에 지쳐있다. 남녀노소 막론 생활의 리듬이 깨지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약속했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이것인가 하는 자조가 비등하다.

어찌됐든 코로나로 개인이나 기업은 물론 각 나라도 사고와 행동 패러다임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인강', 재택근무, 텅빈 도심과 공항, 비대면의 원격사회는 세상을 동결시켰다. 일상의 소소함이 새삼 행복임을 일깨워 준 코로나다.

고단한 국민들의 삶은 스스로 견뎌낸다고 하자. 철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우리의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소주성'과 재정확장 외에 별다른 정책이 없어 보인다. 모름지기 경제 살리기는 산업과 금융정책이 병행돼야 가능한 일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확대로 돈줄이 풀리면서 주식과 부동산 광기가 춤을 추고 있다.
정부나 개인이나 빚내서 벌이는 선심성사업은 한계가 있다. 그것이 기사회생이 될지, 회광반조(回光返照) 로 끝날 지 곧 판가름 날 것이다.

복합불황, 코로나, 정챽부재로 자영업자의 몰락, 실업대란, 부동산 폭락, 세대 갈등이 심화될 거란 비관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는 심리적 거리까지 번지고 있다. 머잖아 극단의 진영논리는 혐오사회로 치닫을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내년 봄 단체장 '보선', 2022년 대통령과 지방선거를 놓고 사활은 건 이전투구때문이다. 그에 앞서 올 정기국회가 열리면 정치적 포퓰리즘이 다시 난무할 것이다.

오늘의 시국을 봐도 그럴 공산이 크다. 코로나 원군을 만나 지난 총선에서 대승 거둔 여당은 일방의 전체주의를 연상케 하고 있다. 협치는 말뿐이다.
한쪽에서는 전염병보다 무서운 '사회적 전염병'이 스멀스멀 번지는 것을 경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일까. 환갑이 지난 친구들은 종종 술자리에서 취기가 돌면 열변을 토한다. 어느 친구는 아무 때 죽어도 '호상'이란 농담은 제법 비장하다.

백세 인생인데 무슨 막말이냐하니 인생 한 바퀴 돌았으니 미련도 없다한다. 그렇지만 그의 눈빛에는 원칙과 상식이 실종되고 가치관 붕괴에 대한 울분과 노기가 묻어난다.

뿐인가.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고 '피해 호소자'란 궤변에 이르면 어이가 없다. 물론 그들의 염치 없음을 개탄하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저 권력이라면 강등(降等)의 자리도 사족을 못쓰니 그럴만하다.

또한 반대편 쓴소리에 귀 기울기보다 메신저를 공격하는 '적반하장'의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그러니 요즘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자신이 없다.

예컨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백선엽 장군의 죽음을 놓고 벌이는 진영논리는 실로 가관이다.

조선 현종 때 자의대비 장례 시 서인과 남인이 상복 문제를 놓고 벌인 정치적 분쟁과 다를 게 무엇인가.
고인의 공과와 원칙을 따져 장례를 치르면 될 일이다. 21세기에 케케묵은 '예송논쟁'의 당리(黨利)가 민생보다 우선할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정부도 그렇거니와 이제는 국가나 정부에 대한 기대나 바람도 없다.
또한 4년 전, 한겨울에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광장에 나선 촛불혁명의 댓가가 이것인가 하니 낙담이 크다.

과연 무엇이 보수이고 누가 진보일까. 남루하기 짝이 없는 ‘보·혁’의 거대 양당이 권력만 탐닉했을 뿐이다. 

역대 정권은 하나같이 개혁을 외쳤으나 한낱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부패 수구와 위선을 가장한 진보가 개혁한 사례는 없으니 변명의 여지도 없을 터이다.

하나같이 정권을 잡으면 개혁 명분으로 반대세력을 구축(驅逐)했을 뿐이다. 뒷켠에서는 권력과 명예, 돈과 여자에 빠져 부패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이들은 선거만 끝나면 이내 대의를 말살시키며 권력에 취해 '껍데기 대한민국'을 주도한 장본인들이다.  

우리의 현대사를 돌아보자. 반세기 전 신동엽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고 권력의 부조리를 일갈했다. 권력 이면에 진실을 가장한 음모와 위선을 고발한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났을 즈음, 가수 신신애도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로 기만당한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노랫말 중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는 가사는 지금 들어도 명쾌하다.

급기야 27년이 지난 오늘, 민중가수 안치환은 '아이러니'란 곡을 통해 진보진영의 민낯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몹쓸 DNA는 우리 지역에서도 차고 넘친다. 요즘 대전시 국장들이 아파트 인허가 관련 수뢰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시의회 의장 선출 감투싸움, 대전에 본사를 둔 어느 공기업 사장의 뻘짓도 그런 범주가 될 것이다.

중앙이든 지방정부든 소통과 협치를 내세워 국민들의 현혹하고 있다. 말의 성찬보다 진정성으로 공약을 이행하면 되는 것이다.

잿밥에만 몰두하다 '친노', '친박' 폐족(廢族)의 전철을 밟는다면 역사와 국민에게 빚을 지는 일이다. 그것은 촛불 민심에 대한 예의도, 도리도 아니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