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준원 박사 / 뉴스티앤티

서독 초대 수상 아데나워 회고록 서문에 실린 내용을 소개한다. 아데나워가 어느 모임에서 만난 역사학자에게 물었다. 질문은, 동서독 분단 직후인지라, 앞으로 독일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답변은, 역사학자는 과거만 연구하기에 앞으로의 일은 잘 모르겠다. 아데나워의 푸념, 과거를 연구한다면서 현재와 미래를 모른다면 역사학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혹자는 말한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아무튼, 역사는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까지 연결된 상호작용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다하우(Dachau) 포로수용소엔 나치 시기의 각종 문서가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유대인에게 언제까지 떠나지 않으면 신변을 보장할 수 없다는 내용의 행정문서가 많다. 이런 경고성 통보가 수 차례 있었음을 낡은 문서가 입증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쳐서 유대인을 내쫓은 것이 정설로 굳어진 편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있고 기실 이런 기록들이 훗날을 위한 자기변명과 방어에도 도움이 될 터이다.

개인과 공기관의 과거행적은 물론 각종 행정문서의 정리 정돈을 보면, 기록성과 보관성은 독일 못지않게 강한 일본이다. 요즘 들어 친일-반일 프레임이 거세지고 있어 참 안타깝다. 지난 역사가 언제부터 상대를 향한 공격과 비방의 요인으로 작용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일본은 독일법(대륙법) 체계를 수용한 국가다. 자연스럽게 법 인식과 문서 정리 유전자도 독일과 유사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리와 관련된 일본 치하의 문서 공개를 꺼리고 있다.

독일은 공개적, 일본은 외교적 카드로 비공개적-비지속적 공개를 거듭하고 있다. 관련국의 요청에 마지못해 공개와 비공개를 넘나드는 격이다.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역사를 대하는 태도와 인식 자체가 다른 것 같다. 당연히, 과거에 대한 사과와 진정성 표출에서도 독일과 일본은 확연하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날의 서유럽에선 늘 전쟁이 연이어졌다. 30년, 100년 걸린 전쟁도 있었다. 그나마 국제체제가 착근된 2차 대전 이후부터 서유럽은 유럽사에서 유례없는 긴 평화를 누리고 있다. 과거에 대한 원한과 증오를 털어내려는 역사인식의 진정성과 보편적 인본주의에 동의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동북아는 아직 멀었다. 역사에 대한 인식공유와 진정성이 표출되지 않는 한, 언제나 전쟁과 갈등의 두려움 속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여타 학문이 그렇듯이 역사학의 이론도 각양각색이고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절대지선이 없기(?)에 지고지선이라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고 학문 역시 그 범주에 들어있다. 다양한 이론에서 드러난 공통점이 있다면,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사실(fact)에 가깝게 기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증사학의 대부 격인 랑게(Leopold von Ranke)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에 무슨 일이든 “있었던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 서술하려다 보니 문헌자료(historical material/archiv)를 중시했다.

반면에,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카(E. H. Carr)는 견해를 달리한다. 언어와 문자로 구사된 문헌자료의 획득과 평가는 한계가 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역사적-사회적 환경은 물론 사유적 판단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게 카의 주장이다. 랑게와 카, 이 두 사람의 역사에 대한 개념정리가 다른 것 같지만, 기실 ’역사학연구방법론‘을 통해 역사학을 다루는 대상에게 피력한 것이다. 역사학 연구 못지않게 ’역사학 연구방법론‘이 중시되는 이유다.

고대사나 중세시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 현대사의 경우는 비교적 수월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역사기술의 주체와 대상이 생존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요즘은 회고록과 각종 기록보관과 서술기술의 발전으로 이전과 달리 사료획득의 범위가 넓어졌다. 게다가 꼭 연구자가 아니라도 일반인도 역사에 대한 의견피력, 평가와 판단 등을 다양한 채널에서 쏟아내고 있다. 이 때문에, 사실과 다른 오류도 넘쳐나고 있다.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각고의 노력과 연구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변별력을 제고시킬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역사 속의 사실은 아무리 잘 포장해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을 보는 관점과 판단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념과 철학 그리고 개인적 성향과 철학은 물론 감성과 감정까지 반영된 다각적인 분석과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의 주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관용이 요망된다. 나만이 옳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은 역사인식의 틀에서 설득력의 한계를 나타내 줄 뿐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옳고 그름은 상대적이고 신축적인 특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논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역사논쟁은 늘 상존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역사는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분출되는 고난한 논쟁의 경쟁이자 투쟁일 수밖에 없다. 힘들고 불편하지만 그래서, 역사는 늘 새롭게 쓰여지고 손질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학문이 그렇듯이 역사도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사실과 진실에 접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결코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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